HOME  >  인터뷰  >  미션

[우먼 칸타타] “예수님의 상처처럼 거친 십자가를 빚어요”

기독도예가 윤석경 권사가 지난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도자골 달뫼 작업실에서 십자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윤 권사는 “십자가를 흙으로 빚으면서 ‘매 순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주=신현가 인턴기자
 
윤석경 권사의 작품 ‘고난의 십자가’(왼쪽)와 ‘부활의 주님’.


그의 ‘흙 작업’은 미명에 시작된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해 만든 작업실은 요즘 같은 겨울엔 난방을 해도 서늘하다. 찬양을 틀어놓자 어느새 온기가 느껴진다. 아삭아삭. 초벌구이한 흙을 살살 긁을 때 나는 소리가 찬양과 어우러지면 그는 나직히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나이에도 이런 작업을 하게 하시고, 이런 느낌을 갖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독도예가 윤석경(67·양평 청란교회) 권사는 이렇게 하루를 연다. 지난 13일 그가 대표로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도자골 달뫼’를 찾았다.

1만5000여㎡에 이르는 도자골 달뫼엔 작업실을 비롯해 갤러리, 가마실, 전시장, 체험장 등이 들어서 있다. 지난달 ‘달뫼 3인전’을 했던 조예조형작가 황예숙, 조형작가 서길헌 선생의 작업공간도 마련돼 있다.

윤 권사는 이곳에서 십자가를 빚는다. 1250도 가마에서 초벌로 구워낸 십자가에 유약을 바르고 한 번 더 가마에 넣어 굽는다. 십자가를 빚을 땐 조합토를 사용한다. 그 흙은 꽤 거칠다.

“제 작품들은 모두 거칠어요. 왜 그런가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도 분명 그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형적으로 메마른 이스라엘 땅에서 자란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거칠겠어요. 갈보리 언덕까지 그 십자가를 끌고 가신 예수님의 몸은 또 얼마나 상처투성이였을까요. 그러니 제 십자가는 고울 수 없어요. 흙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거칠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보혈의 십자가’ ‘세상 속의 십자가’ ‘고난의 십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금보다 귀한 주님’ 등 그의 십자가 작품들은 울퉁불퉁하고 예쁘지 않다. 당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마주한 십자가도 있다. ‘보혈의 십자가’는 원래 ‘세 개의 십자가’로 표현하려고 했다. 중심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크게 새기고 양 밑쪽에 구원받은 강도와 그렇지 못한 강도의 십자가를 조그마하게 넣었다. 그런데 1250도를 훌쩍 넘긴 가마에서 마침내 꺼내본 작품은 희한하게도 예수님 십자가 부분만 유약이 너무 녹아내려 진한 갈색 빛을 띄고 있었다. 마치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처럼 말이다.

“십자가 작업을 하다 보면 이처럼 제가 의도치 않은 묘한 뭔가가 있어요. 딱히 ‘이거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신다, 그런 느낌을 매순간 경험하고 있습니다.”

파킨슨병으로 13년간 투병하다 2007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돌아가시기 1년 전쯤, 며칠 동안 변을 보지 못한 시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관장한 시아버지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 바닥에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버님을 변기에 앉혀드리고 주변을 청소하는데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저도 모르게 ‘주여!’라는 탄식이 나온 거죠. 그런데 그 순간 바닥에 있던 오물들이 호박죽처럼 보이는 겁니다. 냄새도 전혀 안 나고요. 제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시는 아버님께 그랬어요. ‘전혀 더럽지 않고 호박죽 같아요’라고요. 그랬더니 ‘우리 며느리가 착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셨나보다’고 그러시는 겁니다. 아버님 말씀이 정답입니다.”

윤 권사는 5대째 신앙의 가문을 이루고 있지만 십자가 도예가로 활동한 지는 10여년밖에 안 됐다. 경희대 도예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공예품 전문 갤러리를 크게 운영했던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모든 걸 정리하고 남편과 지금의 도자골 달뫼로 들어왔다. 지역 어린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도예 수업을 열었고, 장애인이나 치매노인들에게 미술치료 상담을 해주는 등 도자골 달뫼에서 지역을 섬겼다. 또 케냐 지라니어린이합창단원들이 도자기 체험을 하러 오기도 했다.

“연로한 부모님들을 모시고 가까운 지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따라 허전한 교회 벽이 눈에 들어왔어요. 문득 ‘십자가를 걸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지요. 그때부터 십자가를 빚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첫 개인전을 열면서 십자가 도예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경기도 양평 ‘주기도문 산책길’에 설치한 높이 5m, 폭 3m의 초대형 ‘송영의 십자가’도 윤 권사 작품이다.

그는 흙 작업을 하면서 늘 묵상하는 말씀이 있다. ‘토기장이의 비유’(렘 18:6)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다. 흙으로 그릇을 빚는 토기장이는 불 속에서 그릇에 금이 가고 잘 못 나오면 깨뜨려 버린다. 하지만 때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의외의 작품, 그릇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뜻대로 우리를 만들기도, 때로는 부서뜨리기도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살면서 가끔 행운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그때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해요. 지금 온 행운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우린 내일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의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해도 그게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지금의 어려움이 발판이 되어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할 수 있거든요. 하나님을 믿고 그때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게 정답입니다.”

남양주=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