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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암 4기≠말기 “포기하지 마세요”… 항암치료 ‘편견과 진실’

아주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현우 교수(오른쪽)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1회 항암치료의 날 선포 행사에 참여해 폐암 극복 환자와 SNS 공유 이벤트를 하고 있다. 대한종양내과학회는 항암치료의 올바른 인식 확산을 위해 매년 11월 26일을 항암치료의 날로 정했다.민태원 기자
 
여성 암 환자가 병원 측이 마련한 암 통증 바로 알기 행사를 살펴보고 있다.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제공








부작용 줄인 표적·면역 항암제
잘 몰라 치료 포기하는 환자 많아
항암 신약 사용 시기 놓치기 일쑤

항암제 건강보험 안돼 큰 부담
‘先 보험등재 後 평가’ 도입 등
보장성 높일 제도 보완 시급


서울 성북구에 사는 이태석(72)씨는 2002년 날벼락 같은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폐암 4기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항암치료에 들어갔지만 힘들어 '이러다 암세포보다 먼저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럭저럭 항암치료를 견뎌냈는데, 암이 전혀 줄지 않아 절망감은 더 컸다.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의사에게 "공기 좋은 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겠다"고 통보했다.

그때 담당 의사가 표적 항암제가 새로 나왔다며 임상시험 참여를 권했다. 이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푸라기를 잡았다. 표적 항암제는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치료제다. 구토나 탈모 같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몇 년 후 암이 CT 영상에서 사라진 걸 확인했다. 이씨는 이후 직장생활과 봉사·종교 활동을 하며 15년째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2005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A씨(38·여)는 5년 뒤 검진에서 폐와 간까지 암이 퍼진 4기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의사로부터 항암치료를 권유받았으나 ‘말기’라며 낙담해 이를 거부했다.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배에 복수가 차는 증상으로 병원에 다시 왔다. 암은 다른 장기로 심하게 번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주치의는 A씨를 설득했다. A씨는 6개월간 항암치료를 진행했고 종양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재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정상생활하고 있다.

이씨와 A씨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대한종양내과학회 주최로 열린 1회 항암치료의 날(매년 11월 26일) 선포 행사에서 절망적 상황에서도 암을 성공적으로 이겨낸 사례로 소개됐다. 이씨는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려는 긍정적 마음이 아니었다면 아마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슷한 처지의 암 환자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과 의료진, 암환자 등 100여명은 아낌없는 박수로 격려했다.

A씨 사례를 소개한 종양내과학회 임영혁(삼성서울병원 교수) 이사장은 “암 4기는 말기(末期)가 아니라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단계”라면서 “남은 수명이 3∼6개월 이내로 예측돼 수술·항암 등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임종을 준비하는 말기와는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암 4기 판정을 받으면 치료를 포기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이현우 교수는 4년 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거부했던 B씨를 사례로 들었다. 암이 간까지 퍼졌지만 의료진은 B씨에게 항암치료를 권유했다. 표적 치료제로 암이 작아지면 간 절제 수술로 완치까지도 가능하다고 설득했지만 B씨는 공기 좋은 산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 이 교수는 “B씨는 체중이 줄고 식사를 하지 못해 결국 8개월 만에 다시 찾아왔지만 그땐 이미 폐와 복강 등 다른 장기까지 암이 번져 손쓸 수 없었다. 얼마 안 있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암 생존자 증가… 항암치료 불안·편견 여전

27일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전국 단위 암 통계가 시작된 1999년부터 2015년 1월 1일까지 생존하고 있는 암 경험자는 146만4935명에 달한다. 국민 35명 가운데 1명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치료 후 살고 있다. 암 환자 5년 생존율은 70%를 넘었다. 3명 가운데 2명 이상이 5년 넘게 생존할 것으로 추정됐다.

암 생존율이 높아지는 건 국가 암검진 제도 등을 통한 조기 발견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 표적 항암제나 면역 항암제(암세포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몸 속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과 싸우게 하는 치료제) 등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뛰어난 최신 항암치료법이 속속 등장해 완치에 이르는 환자들이 늘고 치료 과정에 삶의 질도 예전보다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항암치료에 대한 대중의 올바른 인식과 이해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항암치료가 효과적인 생명연장 수단임에도 여전히 불안과 편견으로 치료를 기피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의존하기도 한다. 종양내과학회가 최근 20∼59세 남녀 500명을 조사한 결과 80.6%가 항암(화학)요법에 대해 들어본 적 없거나 들어봤어도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고 답했다. 또 항암치료 시 우려되는 점으로 64.6%가 ‘부작용’을 꼽았다. 7.2%는 “자연치유나 민간요법을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반 항암제의 경우도 식욕부진이나 구토, 통증 등 견디기 힘든 부작용을 90% 조절 가능한 약제가 나와 있어 고통을 덜 수 있다고 말한다. 이현우 교수는 “많은 환자들이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걸로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암 치료 과정에서 상태가 나빠지는 건 암이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많이 개발되는 표적 항암제의 경우 구토나 탈모에 대한 염려가 없다. 다만 얼굴 피부에 가벼운 트러블이 생길 수 있으나 이 또한 조절 가능하다.

이 교수는 아울러 “항암치료를 마다하고 자연요법이나 산삼약침, 한방치료 등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매달리다 상태가 나빠져 후회하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면서 “자연요법을 받더라도 항암치료를 병행 해야지 아예 포기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개발 중인 항암 신약들은 암 성장을 촉진시키는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 또는 조직 환경을 표적(타깃)으로 한다. 이런 표적 항암제의 경우 효과는 더욱 향상되고 독성은 낮아 환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암 치료 후 생존 가능성도 높여준다. 모든 암 종에서 표적 치료제 1∼2종이 개발돼 있다.

최근 주목받는 면역 항암제는 폐암과 흑색종(피부암) 치료에 쓰이고 있으며 신장암 방광암 대장암 위암 등에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신속한 건강보험 적용 필요

항암 신약에 암 환자들의 접근성이 현저히 낮은 점은 해결 과제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암 환자의 82%는 항암 신약을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답했다.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이 지난해 암 환자 및 보호자 18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암 환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점은 경제적 요인(37.3%)이었고 정신적(31.9%) 육체적(27.6%) 사회적(2.7%) 어려움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암을 진단받은 과거와 치료받는 현재의 어려움을 비교했더니 다른 요인들은 시간이 지나며 줄어드는 반면 경제적 요인은 유일하게 증가했다(3.96점→4.14점, 최고 5점). 평균 암 치료 비용은 2877만원이었고 71.6%(2061만원)가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암제 값으로 지출됐다. 암환자 10명 가운데 9명(95%)은 항암제 가격이 비싸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항암제 등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는 경제성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보통 2년 넘게 거린다. 지난 10년간 등재된 307개 신약 중 항암제의 32%만이 2년 내 건강보험 급여권에 진입했다. 서울아산병원 이대호 교수는 “항암제 급여화(건강보험 적용)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지금보다 더 발생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암 환자들이 메디컬 푸어(의료 빈곤층)로 전락할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발표된 문재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에는 ‘기준 비급여 약제에 대한 선별 급여’(건강보험에 등재됐으나 투여 대상, 사용량 등 적용 범위에 제한이 있어 본인부담 발생) 방안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미 비급여로 쓰이고 있는 고가 항암제나 국내에 새로 들어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는 치료제 등에 대한 보장성 강화 방안은 빠져 있다.

이 교수는 “정부가 2022년까지 고가 신약의 신속한 건강보험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정부 5년차여서 암 환자 메디컬 푸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항암 신약의 국내 허가와 동시에 보험을 적용해 환자 부담을 줄여주고 나중에 가격을 평가해 결정하는 ‘선(先)보험 등재, 후(後)평가’ 등 보장성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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