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1996년 그 해의 낯선 충격에 관하여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개봉 당시 포스터. 괴이한 영화 제목은 미국 소설가 존 치버의 동명 단편 소설을 상기시키지만 역시나 소설과 영화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필자 제공
 
술자리에서 술 권하는 효섭. 효섭 역을 맡은 김의성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당시 단역으로 출연했던 신인배우 송강호(왼쪽 두 번째)도 보인다. 필자 제공
 
영화의 마지막 장면. 보경(이응경)은 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베란다로 나간 것일까. 오래도록 풀리지 않을 미궁의 질문 중 하나다. 필자 제공
 
홍상수 감독


1996년은 한국영화의 기념비적 해로 손꼽힌다. 이 해에 헌법재판소는 영화에 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검열의 사슬을 끊어내는 법적 기틀을 마련했다. 정책뿐 아니라 영화 문화의 외양도 넓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했고 예상을 뛰어 넘는 관심과 수익을 올리며 영화제 시대를 열었다. 새로운 화제를 몰고 온 영화들도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비디오 ‘환상속의 그대’를 연출했던 김용태의 데뷔작 ‘미지왕’은 당시 유행어 미지왕(미친 놈 지가 왕자인 줄 알아)을 제목으로 삼은 B급 코미디였는데 흥행에서는 부진했어도 암암리에 한국 컬트영화의 전설로 군림했다. ‘컬트’가 최신 문화의 강력한 유행어로 떠돌던 때다. 한편 박재호의 데뷔작 ‘내일로 흐르는 강’은 동성애를 중심 소재로 한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퀴어 영화로 관심과 논쟁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이 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게 되는 걸출한 두 감독의 등장이다. 훗날에는 거장의 일원이 되었으나 당시엔 극소수 전문가들만 주목한 김기덕, 그의 문제적 데뷔작 ‘악어’는 조용히 개봉됐고 시간이 지나서야 점점 더 말해졌다.

또 다른 데뷔작인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달랐다. 영화의 언론 시사가 있기 전 누구도 홍상수라는 신인감독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데뷔작이겠거니 하며 시사실에 들어섰던 영화 평론가 및 언론 종사자들은 문화적 충격에 휩싸여 멍한 기분으로 문을 나서야만 했다. 말 그대로 한국영화사는 이 순간 홍상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 효섭(김의성), 효섭을 좋아하는 극장 매표소 여직원 민재(조은숙), 효섭이 사랑하는 여인 보경(이응경), 보경의 남편 동우(박진성)가 영화의 주인공들이며 영화는 이들의 일상과 관계를 들여다본다. 원작은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이지만 훗날 원작자 스스로 왜 비싼 원작료를 내게 지불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할 정도로 원작과 영화의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사 거장들의 이름이 몇몇 불려나오기는 했지만 그 계보도 순순히 작성되진 않았다. 그렇게 전제도 계보도 찾을 수 없는 이 영화는 한없이 낯설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관객은 더 이상 안전하고 객관적인 감상의 주체가 아니었다. 보경 역할을 맡은 배우 이응경은 “마치 내 자신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은 친밀감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당시에 밝혔는데 그건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일상의 사소한 표정과 행동을 세심하게 모은 것처럼 보일 뿐인데 저 스크린의 인물과 바깥의 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감정이 휘청거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각에선 ‘일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동원하여 사태를 설명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미덥진 못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들은 전부 주위에 널린 것들이었는데 그것들이 완전히 낯설어져서 전부 처음 보는 것들로 변해 있었다. 어떤 ‘최초’의 것들이 이 안에서 일렁였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상황과 인물에 관하여 이렇게 생생한 묘사력을 지닌 한국영화는 처음 보았다. 예컨대 간단하지만 강력한 인상의 장면을 하나 보자. 효섭이 문인들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앞자리의 상대에게 술을 권하고 있다. 상대가 거절하자, 한 번 더 권하고, 또 거절하자 또 권한다. 강권은 멈추지 않고 민폐에 가까운 애원이 된다. 이유를 찾기 어려운 얼마간의 집착, 혹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주장이라면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쓸데없는 아집,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 유능한 누군가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그 무리의 말석에 앉은 자로서의 괜한 오기와 심술, 하지만 술 한 잔의 승낙으로나마 친해지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엿보이는 애절하지만 유치한 매달림과 같은 효섭의 그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이 장면은 괴상한 웃음과 씁쓸함을 일거에 일으킨다.

저 생생한 묘사는 효섭에게만 특화된 것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나머지 세 인물 또한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복잡한 감정의 순간들을 지녔으며 영화가 비범하게 그걸 묘사해낸다. 관객 누군가는 민재의 작은 거짓말에, 동우의 결벽증에, 보경의 토라짐에 자신들을 비추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홍상수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일상의 순간들을 단지 모은 것이 아니라 때론 정지시키고 때론 확대하고 때론 연장하면서 능동적으로 배열한다. 이 배열의 힘으로 삶의 속성을 솔직하게 응시하는 것에 이 영화의 무언의 목적이 있었고 그 속성이 얼마간 드러나자 나의 숨겨진 삶의 전모가 발각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린 당황했던 것이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인물들은 고정되거나 일관되어 있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삶에서 우리들의 시시각각 대응이라는 게 바로 그런 일관성 없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시 효섭을 보자. 끝내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구류를 살게 되기까지 하는 걸 보면 이 사람은 문제가 많은 부류이기는 하지만 이때 그의 순순한 선의에 대해서 우린 또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 누군가 구류를 면하기 위해 벌금 2만원만 빌려달라고 하자 효섭은 자기 처지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주머니를 뒤적거려 선뜻 그 돈을 내어준다. 아마도 민재가 쥐어 준 돈이었을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우러난 선의를 베푼 것인지 아니면 민재의 선의를 허투루 흘려버린 것인지, 그것에 관하여 우린 쉽게 말할 수 없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아무리 해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이 영화에는 너무도 많았다. 적어도 당대까지의 관객은 대체로 주제와 주체의 선형적 서사의 시간에 익숙해 있었는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그걸 모조리 깨뜨렸다. 이 영화에서 주제는 희미했고 주체는 희박했다. 그리고 시간은 서로 상대적이었다. 효섭이 죽은 줄도 모르고 그를 기다리며 여기저기를 배회하는 보경의 시간과 언제 죽음에 이른 것인지 그 상태로 얼마나 있었던 것인지조차 확인되지 않는 효섭과 민재의 생과 사의 시간은 같은 층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어쩌면 시간은 각자의 상대적 시간으로만 흘러가는 것이므로 말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는 걸 우린 이 영화를 통해 또한 새삼 알게 되었다.

불가해한 장면들 역시 곳곳에 배정되어 있다. 효섭이 참석했던 술자리, 그 자리의 주인공인 이제 막 당선된 문인은 술자리에 들어서기 전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집어 쓴다. 왜 그런 것일까. 주인공으로서 조금이라도 별나게 보이고 싶은 허세였을까. 효섭이 경찰서에 끌려간 뒤 한 문인이 돌연 바리케이드를 뛰어 넘은 건 또 왜였을까. 그리고 민재가 일하는 극장에서 나오던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옷깃을 화가 난 듯 잡아챈 것은 또 왜일까. 그들은 영화의 다른 장면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아닌가.

지금 다시 보아도 이 장면들은 불가해하지만 그 불가해한 활동이야말로 홍상수 영화의 풀리지 않는 신비의 요체 중 하나라는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주목을 받았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영화의 후반부에 배치된 보경의 꿈과 라스트 신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말하는 자리에서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됐다. 그 꿈의 장면은 꿈과 현실이 서로 다르지 않은 질감으로 접속될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 깨닫게 해준 예였고, 그 라스트 신에 관해서는 여태껏 누구도 맞는 해석을 내놓지 못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여기엔 원천적으로 맞고 틀림의 논리적 판단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이해보다 느낌에 기반한 불가사의의 추구 그 자체였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기존의 한국영화를 부정하고 그 부정으로 한국영화를 가격했다. 이 영화의 출현으로 인해 한국영화에는 새로운 감각학과 감정학이 요구되었다. 기존의 해설과 해석으로는 온전한 감상이 불가능한 예술 체험을 이 영화가 선사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문화적 사건이었다. 한국영화 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전에 어느 영화도 이렇게 만들어진 적이 없고 이후에는 어느 누구의 영화도 이렇게 데뷔하지 못했으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전무후무한 최초였다.

■ 홍상수 감독
美서 영화 공부… 佛 평단 매료시키며 세계적 거장 반열에


홍상수(사진) 감독은 1960년 10월 25일에 태어났다. 아버지 홍의선, 어머니 전옥숙은 이만희의 ‘휴일’ 등과 같은 작품을 제작한 당대의 실력 있는 영화 제작자였다. 유년시절의 그는 타고난 예민함 탓에 적잖이 방황했고 그 방황은 10대 후반까지도 이어졌다. 오태석 선생의 권유로 연출에 뜻을 두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지만 곧 자퇴하고 미국행 유학을 선택한다. 이 미국 유학 시기가 훗날 영화감독 홍상수의 터전이 됐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시카고 예술대학을 거치며 영화를 공부하고 안목을 넓힌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외주 제작사 프로듀서 생활을 한 뒤 장편영화 연출에 곧장 착수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다. 그는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면 독립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이며 자신만의 영화 세계에 대한 입장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한국 비평계의 전적인 지지뿐 아니라 해외영화제에서도 수상을 거듭하며 홍상수 감독의 이름을 알렸다. 밴쿠버 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두 번째 장편영화 ‘강원도의 힘’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면서 감독 홍상수는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다. 특히 프랑스의 관객과 평단은 그의 영화에 완전히 매료된다. 이후 칸 베니스 베를린 로카르노 등 걸출한 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영화가 초청받거나 수상하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닐 정도로 그의 위상은 높다. 영화 ‘밤과 낮’을 계기로 제작 연출 배급을 겸하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매년 1편 이상의 영화를 연출하는 전무후무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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