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터뷰  >  미션

[우먼 칸타타] 의사가 꿈이었던 소녀, 평생을 걸은 봉사의 길

문용자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사장이 16일 경기도 김포의 한 공원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을 간증하고 있다.
 
김포 보리수요양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진찰 중인 문용자 이사장.


걸핏하면 병원 신세를 지는 소녀가 있었다. ‘어른이 되면 나처럼 몸이 아픈 사람을 돌봐 주리라’고 생각한 소녀는 매일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웠다. 그리고 사회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어려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믿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 꿈을 견고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유수한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가 됐다. 일부러 의료사각지대를 찾아다녔다. 사재를 털어 의료교육재단도 만들었다. 재단을 통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와 탈북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50년 넘게 의사 가운을 벗지 않고 있는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이사장 문용자(80·서울 강남구 소망교회) 권사의 이야기다.

그는 의료계에서 ‘북한통’으로 꼽힌다. 북한 주민의 열악한 삶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3년여간 (재)그린닥터스 상임공동대표와 개성공단 개성남북협력 병원장을 맡아 개성을 드나들었다. 의료장비 및 회충약, 독감주사 등 의약품을 전달했다. 북한 보건의료 인도적 지원에 대한 세미나도 열고 있다.

“개성협력병원은 남북 의사들이 함께 진료하는 유일한 병원이었어요. 모두 120평이었는데 남쪽 40평, 북쪽 40평, 나머지 40평은 공동 공간으로 활용했죠. 각종 검사시설과 수술실을 두었는데, 북한 의사들은 남한 의사들에게 상담하고 치료가 어려운 케이스는 의뢰도 하고 그랬어요.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요. 150베드 규모의 종합병원도 건립하려 했는데 갑자기 개성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무산됐죠. 안타까워요….”

16일 경기도 김포 보리수요양병원에서 만난 그는 8세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했다. 한번은 어머니를 따라 부흥회에 갔는데 예배당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시 아이들은 예배당 안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던 그는 몰래 숨어들어가 부흥사 목사님이 서는 강단 뒤에서 부흥회를 지켜봤다.

기도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그만 목사님의 눈에 띄고 말았다.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러나 근엄한 얼굴 대신 자상한 모습으로 다가온 목사님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수기도를 해 주었다.

그때 감격과 감동을 고이 간직했고, 십자가 사랑을 널리 드러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의사의 꿈을 갖게 된 사연도 들려줬다. 14세 때 수영을 즐겨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 염증이 생겼다. 대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료하는 여의사를 봤다. 순간 그 모습에 매료됐다.

‘아, 바로 저거다. 커서 저 직업을 해야겠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의료인의 꿈을 품게 된 것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시절, 주위에선 여자의 몸으로 의사가 되는 것은 무리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결심은 단호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의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한미장학재단 장학금으로 대학 6년을 마쳤다. 이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동남아, 아프리카 등 180여개 국가를 돌며 의료선교·봉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해 왔다.

문 권사의 선교활동에는 지난해 9월 작고한 남편이자 외과전문의 신요철 장로가 함께했다. 또 출석교회 후원 등으로 나진·선봉 등 북한 전역의 고아원과 탁아소 어린이들에게 감자와 옥수수, 밀가루 등 식량을 전달했다. 탈북 의료인을 재교육해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반경을 넓혀주는 일도 그의 사역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자랑스러운 이화의인(醫人) 박에스더상’을 수상했다. 상은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선생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문 권사는 이화여대, 서울대 등에서 공부했다. 국립의료원 내과 전문의 과정을 거쳐 서울 현대병원, 지성 종합병원 등을 운영했다. 현재 대한의사협회 고문, ㈔북아해사랑단 대표,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대외협력위원장, (재)통일과나눔 공동대표 등도 맡고 있다.

김포=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