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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결정장애

로버트 라우센버그 ‘블랙 마켓’


“결정장애의 원인은 뭔가요?”라는 질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선택의 패러독스를 첫 번째로 꼽는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장자 리처드 틸러의 책 ‘넛지’에 언급된 것처럼,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사람들은 결정을 유보하거나, 진정으로 원하는 게 아닌 남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여질 만한 것을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 결정할 때 고려할 것이 많아질수록 이런 경향성은 더 크게 나타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머뭇거리는 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럴 때 A나 B를 선택했을 때의 이익과 손실을 종이 위에 나란히 적어 놓고 비교해보라고 조언하는데, 막상 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성적으로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장애에 시달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 욕망에 대한 확신의 결여에 있는데, 선택지를 펼쳐두고 장단점을 아무리 적어 본들 답이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된 건 자기 결정의 옳고 그름을 외부의 판단에 맡겨온 탓이 크다.

학창시절 성적은 ‘내가 쓴 답이 문제집 맨 끝에 있는 것과 일치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나의 직무 능력은 면접관이 결정해주고, 내 삶이 행복한지는 SNS의 ‘좋아요’ 숫자가 말해준다고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광고는 하나같이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한시도 쉬지 않고 거짓 욕망을 주입하고 있으니 ‘나의 욕망이 진정 내 것이 맞나?’하는 의심에 빠져드니 결정을 앞두고 혼란에 빠지고 만다.

정보를 아무리 긁어모아도 자기 욕망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결정장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직관의 힘을 길러야 하는데, 직관이라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라는 확신에서 솟아나는 법. 직관을 따르면 선택이 편해지고 결정 후의 마음도 홀가분하다. 그렇지 못 하면 의심하고 회의하며 멈칫거리다 시간만 흐른다. 어떤 선택을 해도 찜찜함이 남는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기죽지 않고 가뿐해지려면 ‘진정으로 내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감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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