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8>] 믿음을 강화하는 예전,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본질 회복을

독일 바덴바덴에 위치한 브람스 하우스 정문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이 집에서 10년간 머물면서 그의 대표적인 곡들을 썼다. 박양규 목사 제공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앙묘지 음악가 묘역의 브람스 묘비. 박양규 목사 제공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왼쪽)과 요하네스 브람스. 국민일보DB
 
박양규 목사


제59문: 이 모든 내용을 믿을 때 당신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답: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게 됩니다.

제65문: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데 이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답:
복음을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이 믿음을 주시고, 성례를 통해 그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십니다.

제78문: 떡과 포도주가 실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됩니까?

답:
아닙니다. 세례의 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변하거나 죄 자체를 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명하신 표시이며 보증인 것처럼, 성만찬의 떡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성례의 본질과 용례를 설명할 뿐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전반부를 돌아봤다. 이제 반환점을 돌면서 오늘은 교리문답 59∼79문을 아우르며 기독교의 본질과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루터는 루터교 신자가 아니었고, 칼뱅은 칼뱅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 종교개혁을 주장했으나 그 교리와 체계, 즉 도그마는 추종자들에 의해 나중에 형성됐다. 당시 루터가 외쳤던 주장과 오늘날 루터교회의 도그마에도 차이가 있다. 칼뱅의 대표적인 교리인 예정설도 마찬가지다. 주창자들은 본질을 외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본질보다 형식이 더 크게 남았다. 형식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영성을 강조하는 경건주의가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믿음과 예전(禮典)의 관계

루터가 종교개혁에서 외쳤던 ‘믿음’은 성경을 ‘들음’에서 생긴다. 그 믿음을 보존시켜 주는 수단으로서 다양한 예전(禮典)이 존재한다. 예배, 성찬, 세례 같은 성례(聖禮)가 그것이다. 이런 예전들은 기독교 초기부터 시행돼 왔으나 중세시대 구원의 ‘수단’으로 남용됐다. 믿음의 본질은 사라지고 교회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사례는 중세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톨스토이나 마크 트웨인의 펜에서 표현되는 교회의 예전들,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의 눈에 비친 교회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독교의 예전은 귀중한 유산이다. 예전은 본래 믿음을 강화하고 확증하는 유익한 의식(儀式)이다. 그러나 믿음의 본질이 희석될 때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로 전락할 수 있다. 성례(聖禮)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는 히스클리프 같은 약자를 배척하는 수단으로, 토머스 하디의 ‘테스’에서는 테스가 아들을 ‘슬픔’이라고 이름 짓게 만든 장벽이었다.

초기 기독교나 종교개혁 시대에 예전은 유익한 의식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인들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날마다 모여 떡을 떼는 성찬에 힘썼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강조된 예전은 문맹자들에게 믿음을 제시하는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경험하는 예전은 어떤 것에 더 가까울까. 지루하고 불필요한 것이라고 기억된다면 우리의 예전은 초기 기독교인보다 오히려 위에 말한 문학가들의 눈에 비친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것이 공감된다면, 아니 그것이 ‘중론(衆論)’이라면, 현대 기독교는 생명력을 잃고 ‘도그마’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막스 뮐러가 말하는 믿음의 본질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59∼79문은 아주 세세하게 기독교의 예전들을 소개한다. 그 핵심은 본질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다.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와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1823∼1900)는 저마다 작품을 통해 본질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를 했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은 병약한 여주인공 마리아를 사랑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한국 작가 황순원의 ‘소나기’와 비슷하다. 뮐러는 이 작품을 통해 형식에 치우쳐 가는 독일 교회를 향해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독일인의 사랑’에서는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의 참된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가 나타나기도 전에 기독교가 먼저 계시를 가지고 다가오기 때문인 것 같아. 종교의 진실성과 신성함이 의심스러워 불안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전해준 신앙을 내 것이라고 하는 게 옳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살거나 죽을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믿어줄 수는 없는 거잖아.”

“물론이야. 대신 믿어줄 수는 없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사도들과 초기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서서히, 그러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사로잡아야 하는데, 요즘은 절대적이고 강력한 교회 율법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소위 ‘신앙’이라는 것에 복종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여러 격렬한 갈등과 심각한 싸움들이 벌어지는 것 같아.”

뮐러의 펜 끝에서 묘사되는 표현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의 표현처럼 ‘사랑과 이해’ 없이 형식을 강요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는 예전들은 뮐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앙이라는 것에의 복종’이다. 뮐러의 글 속에서 우리가 시급히 회복해야 할 것이 보인다.

독일 레퀴엠,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브람스는 작품들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브람스는 청렴하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는 삶을 살았다. 시리아 난민에 대한 독일인의 반감이 고조되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브람스도 겪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침공했을 때, 독일로 유입되는 헝가리 난민들에 대해 독일인들은 반감을 품었다. 브람스는 오히려 헝가리 민속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헝가리 무곡’을 만들었다. 이것이 그를 대표하는 음악이 되었다. ‘헝가리 무곡’은 결코 그의 삶과 관계없이 ‘음악성’으로만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브람스의 삶과 음악은 드보르자크에게 ‘슬라브 무곡’을 만들게 했다.

브람스의 또 다른 대표작은 성악곡 ‘독일 레퀴엠’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레퀴엠’은 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가톨릭교회의 예전(禮典) 음악의 한 장르다. 그러나 브람스는 레퀴엠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1856년 그의 스승 슈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유가족들의 고통을 목격했다. 9년 뒤 1865년 자신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빠진 브람스는 이 곡을 작곡했다. 브람스에게 망자를 위로하는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기독교의 본질적 정신이었다. 슈만을 잃은 클라라, 어머니를 잃은 브람스 자신, 그리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레퀴엠’을 새롭게 창조한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교회의 예전들을 경험한다. 여러 형식보다 ‘사랑’을 회복할 때 예전이 그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 형식에 치우친 한국교회에도 ‘독일 레퀴엠’이 되살아나기를 소망한다. ‘독일 레퀴엠’ 중 제5곡,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의 가사처럼, 예전을 통해 위로를 발견하게 되기를 꿈꾼다.

“지금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라.”

▶나눔과 적용을 위해서 생각해 볼 것은
☞교회에서 거행되는 예전, 즉 예배와 성찬, 세례를 대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이것들을 특별하게 느낀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였나요?
☞예전을 더 의미있게 대하기 위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글=박양규 목사
△서울 삼일교회 교육디렉터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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