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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인의를 찾아서-세브란스병원 뇌신경센터 바클로펜/모르핀 펌프 클리닉] 중증 통증 완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뇌신경센터 바클로펜/모르핀 펌프 클리닉 다학제 협진 의료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경외과 장원석 교수와 유범석 전공의,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최혜진, 신경외과 정나영 교수, 뇌신경센터 박선영 간호사, 재활의학과 조성래, 신경과 신하영 교수, 뇌신경센터 박상금 코디네이터,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박지영, 뇌신경센터 김혜인 간호사, 권은정 코디네이터.세브란스병원 제공


박하진(47·가명)씨는 3년 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암보다 무서운 게 암성 통증임을 깨달았다. 폐암 치료 과정도 힘들었지만 그 사이 예고도 없이 엄습하는 통증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박씨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바클로펜/모르핀 펌프 클리닉을 찾아 모르핀펌프 삽입 시술을 받았다. 이후 산책이 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완화된 박씨는 폐암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국내 유일 특수클리닉

바클로펜/모르핀 펌프 이식술은 한마디로 근육이완제 ‘바클로펜’ 또는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장치(펌프)를 몸속에 심어 난치성 강직 및 통증을 완화시키는 치료법이다.

뇌성마비뿐 아니라 뇌졸중 외상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한 뇌손상이나 척수손상, 경직성 하지마비로 인한 근육강직 증상을 풀고 어떤 진통제로도 제어가 안 되는 중증 통증을 경감시킬 목적으로 사용된다.

해외에선 198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선 2008년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 재활의학과 조성래 교수팀이 첫 시술에 성공했다. 10월 현재 총 시술건수는 56건이다. 2014년 7월 건강보험이 재료대(펌프 값)의 50%를 지원하면서 최근 3년간 연평균 16건씩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생각보다 이용자 수가 많지 않은 것은 건강보험 부분급여 지원에도 불구 1대당 약 750만원에 이르는 펌프 값을 포함해 시술비용이 1000만여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뇌신경센터 바클로펜/모르핀 펌프 클리닉은 이런 환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 운영되는 특수클리닉이다.

현재 신경외과 장원석 교수와 재활의학과 조성래 교수를 중심으로 신경과 신하영 교수, 종양내과 최혜진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난치성 강직 증상과 암성 통증 등을 다루는 진료 특성상 관련 진료과목의 전문 교수들간의 협력진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원석 교수는 30일 “건강보험이 내년부터 재료대를 100% 지원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의 부담이 총 300만 원대로 낮아져 더 많은 뇌성마비 환자와 만성 통증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 막에 직접 약물 뿌려줘

뇌와 척수 신경계는 인체에서 매우 중요하며 가장 예민한 부위다. 미량이라도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 심각한 손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뇌·척수 신경계에는 뇌혈관장벽이라는 보호막이 있어 외부 물질이 쉽게 흘러들지 못하게 돼 있다. 혹시 잘못된 것을 먹었을 때 그 속의 독물이 혈액 속으로 못 들어가게 차단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렇듯 철저한 보호막으로 인해 강직 또는 통증 해소용 치료약도 차단돼 치료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뇌혈관 장벽을 지나 뇌 및 척수 신경에 치료약을 주입하기 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됐다. 하지만 의학계는 아직도 뚜렷한 방법을 못 찾고 있는 상태다. 뇌혈관 장벽을 쉽게 통과하게 하려고 약물의 크기를 작게 만들면 약효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아예 뇌혈관 장벽을 허물어버리는 방법은 혈액 속의 독성 물질을 뇌 및 척수 신경계에 그대로 직송해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개발된 게 뇌 및 척수 신경에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바클로펜/모르핀 펌프 삽입술이다. 연구결과 모르핀의 경우 같은 용량을 먹었을 때와 비교해 진통 효과가 약 300배나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구(經口)약으로는 실제 신경에 도달하는 성분이 적어 치료 효과를 충분히 보지 못하는 강직 및 통증 환자들에게 펌프삽입술이 도움이 되는 이유다.

고가 재료 부담 낮출 방법 필요

시술 과정도 비교적 안전하다. 뇌나 신경을 직접 바늘로 찌르는 게 아니라 허리의 척수를 싸고 있는 막 안에 있는 뇌척수액 도관을 통해 약을 뿌려주는 방식이다. 기존의 강직 치료가 주로 신경이나 인대를 절단하는 방식이었다면 바클로펜/모르핀 펌프 삽입술은 주위 정상 조직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도 이 치료법이 외국과 달리 그동안 국내에서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던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건강보험 부분급여로 인해 환자가 1대당 펌프 값만 약 75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펌프 삽입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만성 중증 강직 및 통증을 유발한 난치성 질환 또는 암 치료를 위해 이미 적잖은 의료비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 부담이 더욱 크다. 다행히 이 문제가 해결돼 내년부터는 환자들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다른 이유는 이 치료가 병의 뿌리를 그대로 놔두고 겉으로 드러난 강직 증상 또는 통증만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의 일종이라는 데 있다.

고통 없는 삶의 질 향상 중요

세브란스병원 바클로펜/모르핀 펌프클리닉은 이 같은 걸림돌을 각 진료과 교수들의 협력진료(협진)로 극복해나가고 있다.

조성래 교수는 “강직으로 인해 보행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어려운 경우 이 치료법을 쓰면 움직이는 게 이전보다 훨씬 더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강직이 진행됐지만 어느 정도 보행이 가능한 경우에도 펌프 삽입술을 받으면 보행운동이 좋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세브란스병원 바클로펜/모르핀 펌프클리닉은 현재 펌프 삽입술이 강직 증상 완화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신경과 신하영 교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펌프 삽입술 전후 전기생리검사 연구가 대표적이다. 신 교수팀은 바클로펜 펌프 삽입술 시술이 강직 환자의 신경기능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전기생리검사를 통해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암성 통증 치료도 마찬가지다. 지독한 통증이 암 치료를 방해할 때 모르핀펌프 삽입술을 시행하면 통증을 제어하고 암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종양내과 최혜진 교수는 “기존 치료방법으로 통증이 해소되지 않거나 부작용이 심해 치료가 쉽지 않을 때 모르핀펌프 삽입술이 활로를 열어주곤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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