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예수 믿어도 별 수 없더라?



시편 119편 71절

‘지선아 사랑해’란 책과 간증으로 희망을 주는 이지선 자매를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2000년 7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수차례 피부이식 수술과 힘든 재활 치료를 했습니다. 그 후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따고 올해엔 한동대 교수로 학생들에게 사회복지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뉴욕마라톤 대회에 나가 42.195㎞를 다 뛰었고, 그때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라톤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죽을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죽을 것 같은 것이지 죽는 게 아니었습니다. 죽을 것 같이 무섭게 생각되는 것이지 실제 그 고통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비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고통 가운데 있으면 “예수 믿어도 어쩔 수 없네”라고 반응합니다. “교회 다녀도 망하는구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 믿으면 다 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으면 힘들지 않게 되고 행복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힘들어하고 있는 기독교인을 보면 믿음이 안 좋다고 판단합니다. 일부 기독교인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세상의 복을 찾아 다른 종교로 갑니다.

고난의 뜻을 알지 못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어도 별수 없고 교회 다니나 안 다니나 똑같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고난의 뜻을 깨닫게 되면 달라집니다. 고난은 일반적입니다. 욥은 “사람은 고생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목사도 암에 걸립니다. 믿음이 좋은 사업가도 망합니다. 예수 믿는 집의 자녀도 삶의 방향을 몰라 헤맬 수 있습니다.

문제는 힘든 것,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숨은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깨닫는 순간 힘들고 아픈 것이 변해 행복이 됩니다. 시편에서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했습니다. 힘든 것을 통해서 알아가고 나니 “힘든 것이 유익이다”고 말합니다.

예수 믿어도 어쩔 수 없다고요? 아닙니다. 톨스토이는 “고통은 깨달음을, 괴로움과 번뇌는 기쁨을 준다”고 했습니다. 고통 속에 하나님 뜻이 있습니다. 그 힘든 것이 변하여 복이 됩니다. 그래서 힘든 것은 인생의 보물창고입니다. 다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힘들어서 평생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 믿어도 어쩔 수 없네” 하다가 죽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힘들지 않았을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동안도 많은 문제와 힘든 것을 넘으며 살아왔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당하는 힘들고 아픈 것에도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것이 별것이 됩니다.

유봉호 목사 부산 연산성서침례교회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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