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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백 “도배와 벽지에 삶 바친 분들 위한 공동 전시회죠”



도배·벽지와 연관된 삶을 사는 세 사람. 한때 문학도였고, 직장생활을 했으나 결국엔 도배공으로 살며 시인의 꿈을 이룬 ‘노동 시인’ 50대 중반 강병길씨, 70대 후반의 장순용 건축가, 그리고 평생 도배공으로 살아온 50대 후반의 ‘도배 명장’ 신호현씨. 이들의 삶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도배 작가’ 연기백(43·사진)의 개인전 ‘마주하는 막’은 이들과의 협업에서 탄생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아마도예술공간’에서 15일 작가를 만났다. 연 작가가 “작품을 하는 과정에서 3~4년 만나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한 이들 세 명이 벽지에 바친 열정과 편린이 설치 작품 속에 녹아 있었다.

아마도예술공간은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다. 부엌 안방 작은방 거실 등 옛 집의 허름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옛 주방은 강씨의 공간이 됐다. 시인에게 자투리 도배지에 버리고 싶은 단어를 써서 보내 달라고 주문한 연 작가. 그렇게 해서 받은 도배지 속 글씨는 오려지고 도배지는 천자락처럼 내걸렸다. ‘줄타기’ ‘투기’ ‘농단’ 등 글씨 파편이 바닥에 수북하다.

안방 자리엔 장 건축가가 수집한 궁중 벽지와 개인사가 아카이브처럼 전시되고 있다. 한양대 건축과를 나온 장씨는 옛 궁궐 보수 과정에서 버려지던 벽지를 모았다. 애지중지하던 그 벽지의 일부가 궁궐 복원공사 때 빌려줬다가 통째 분실된 적도 있었다. 그때의 안타까운 심정이 함께 전시된 일기에 오롯하다.

작고 어두컴컴한 방은 ‘도배 명장’ 신씨가 평생 사용해 온 도구들이 박물관 보물 마냥 뽐을 낸다. 롤러 칼 솔 등 100가지가 넘는다. 그가 고안한 공구도 있다. 신씨는 ‘지편전’ ‘도배통전’ 등 도배 관련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인 연 작가는 2011년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방 도배지를 재료로 사용하다 매료됐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덧바르고 덧발라진 도배지는 겹겹이 개인의 기억이자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중첩된 흔적 사이에 우리가 읽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고고학 유적을 보듯 흥미롭더군요.”

연 작가는 “개인전이라기보다 도배와 벽지에 삶을 바친 이들과 함께한 공동 전시”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들과 마주하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전시제목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작가는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전시 등을 거쳤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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