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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명절이 즐거우려면

노먼 록웰 '추수감사절'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던 주부들은 “차라리 추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남자도 명절에 힘들거든!”이라는 푸념도 늘었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며느리가 시어머니 눈치 보듯 남편도 아내 눈치 보는 게 힘들다는 거였다. “입시생이 있어서 시댁 가지 않아도 되니 좋아요”라는 며느리의 고백을 종종 들었는데 이제는 아예 “추석 연휴는 가을 휴가다”라고 한다. 추석 휴일에 연차 붙여서 해외여행 가고 싶은데 눈치 보인다는 직장인 고민도 올해는 나라에서 연휴로 만들어줘서 쉽게 해결됐다.

명절에 사이 나쁜 친척들 얼굴 봐야 하는 게 너무 괴롭다며 상담하러 왔던 직장인에게 “차례만 지내고 영화 보고 친구 만나러 나가라”고 답해줬던 적이 있다. 꼴도 보기 싫은 친척인데 즐거운 추석이라며 표정 관리하고 앉아 있으려면 없던 스트레스도 쌓이니 적절한 예의만 갖추고 적당히 거리를 두라고 했다. 친척이라고 가족의 정을 나눠야 한다며 억지로 애쓰다 보면 오히려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사이좋은 친척도 연휴 기간 내내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있어야 한다면, 이것도 스트레스다. 명절에 말조심해야 한다, 라고 아무리 조언해도 가족끼리 긴 시간 붙어 있다 보면 “너를 아끼는 마음에서 해주는 말인데…”라며 듣기에 예민한 결혼 이야기, 취직 이야기를 툭하고 꺼내놓게 된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거다.

명절이 즐거우려면 가족 문화가 민주적으로 변해야 된다. 손윗사람이라고 큰 권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굴지 않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사생활을 물을 수 있다는 생각도 사라져야 한다. 그래도 “아직도 애인이 없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고 묻는 친척 어른이 있다면 속으로야 ‘애인 만들어줄 것도 아니면서 왜 쓸데없는 말을 하지’라며 발끈하겠지만, 겉으로는 “제 결혼 문제로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슬쩍 받아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도저히 못 참겠다면 “저 나름대로 사정이 다 있는데 명절마다 결혼을 재촉하시니까 제가 무척 괴롭습니다”라며 ‘그런 질문이 명절 스트레스를 만든다’는 걸 은근히 보여줘도 되고.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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