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2>] ‘실존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신의 은총에 이르는 길

헤르만 헤세. 국민일보DB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브에서는 그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니콜라우스 다리 위에 칼브 시내를 배경으로 헤세 동상이 서 있다. 박양규 목사 제공
 
헤르만 헤세 박물관의 내부 모습. 박양규 목사 제공
 
박양규 목사


제2문 : 당신이 위로의 기쁨 속에서 살고 죽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나의 죄가 얼마나 비참한지, 둘째 내가 어떻게 그 비참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는지, 셋째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2문부터 11문까지는 전체 문답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1문은 인생의 위로를 제시하고, 2문부터 위로의 주체인 예수께로 나아갈 필요성을 제시한다. 인간의 비참한 현실, 죄로 얼룩진 상태를 먼저 소개하는데, 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신의 은총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 경험상 이 대목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대다수 사람은 인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동의하지만, 굳이 예수께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성까지 인정하진 않는다. 지금도 쉴 새 없이 교회 강단에서, 거리에서 ‘예수 믿으라’는 메시지가 전해지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비참함, 그 끝없는 고뇌

독일과 스위스 경계의 운터 호수(Untersee)를 중심으로 두 인물의 흔적이 교차한다. 한 명은 1415년 이곳에서 순교한 종교개혁자 얀 후스이고, 다른 한 명은 그로부터 500년 뒤 활동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준 후스는 호수 동편 콘스탄츠(Konstanz)에서 화형을 당했다. 헤세는 1906년 호수 서편 가이엔호펜(Gaienhofen)에서 ‘수레바퀴 밑에서’를 썼다. 후스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고 자신의 신앙을 철회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반면 경건주의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헤세는 부모로부터 신앙을 ‘강요’받았다. 헤세는 신앙 외에도 명문 학교 진학을 위해 학업의 강요도 받았다. 헤세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경건한 가문에서 자랐다. 그러나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의 신앙은 자신들에게는 숭고하다 할지라도 내 기억 속에는 미심쩍으며, 분파적이고 위선적인,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것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은 자전적(自傳的) 소설들에서 엿볼 수 있다. 헤세의 단편 ‘나비’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친은 아들을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강요한다.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와 교회는 그를 불안과 죄책감에서 건져주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고민하며 몸부림치는 에밀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 인물은 친구 데미안의 메시지였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그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알을 뚫고 나온 새는 신(神)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Abraxas)다.” 새가 알에서 빠져나오려는 투쟁, 그것은 삶 속에서 겪는 실존의 투쟁이다. 공허, 불안,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새처럼 알을 깬다. 결국 헤세는 기독교가 아닌 동양종교의 상징인 아프락사스로 결론을 내렸다. 헤세는 실제로 인도에서 동양종교로 귀의했다.

사실 헤세는 하이델베크르 교리문답 2∼11문이 다루는 것처럼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인식했다. 이런 고통은 신에게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인간은 죄로 인한 비참한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그 무게를 덜어내는 길은 오로지 예수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선언한다(마 11:28, 요 14:6).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율법을 주셨다. 이를 통해 ‘신 앞에 단독자’가 될 때 참된 위로를 얻게 된다. 율법을 통해 신 앞에 서게 하는 역할이 교회의 몫이며, 이는 ‘이웃 사랑’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신앙으로 나아가는 동기는 강요가 아니라 공감과 사랑

하지만 헤세는 예수께 나아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주변의 사람들, 이를테면 아버지와 교장 선생, 교구 목사는 한스에게 신앙과 학업을 강요하며, 그의 성취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가 명문 학교에 진학했을 때 극진히 환대했던 것과 달리, 한스가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퇴하자 환대는 냉대로 바뀐다. 오히려 한스의 죄책감과 외로움을 공감해 준 인물은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 시계공장에서 일하는 친구 아우구스트 같은 인물이었다.

콘스탄츠와 가이엔호펜의 역설적인 교차는 우리에게 과제를 던진다. 1415년 가톨릭의 압박을 피하려했던 후스의 종교는, 500년 후 헤세를 강요하는 역설이 됐다. 작품에서 “지치면 안 돼.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라고 고백한 헤세처럼, 우리도 ‘실존’이라는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투쟁한다. 새벽 출근길, 곤한 몸을 버스나 지하철 차창에 기대는 직장인들과 가방을 부둥켜안은 젊은이들은 또 다른 한스, 혹은 에밀 싱클레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는 인정하지만 신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정답을 배제하는 이유는 헤세의 인생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사랑과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헤세가 갈망했던 것은 플라이크와 아우구스트가 보여줬던 타인의 공감과 사랑이었지, 신앙의 강요나 일장연설처럼 들리는 설교가 아니었다.

학벌, 경쟁, 생존과 같은 단어는 ‘헬조선’에서 들리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헬독일’을 살아가던 헤세의 이야기다. 헤세가 명문학교에서 자퇴한 후 서점의 점원이 되면서 독실한 신앙을 가진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엄마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관심 없어요. 엄마의 그런 강요와 설교로 제가 엄마의 신앙처럼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허무주의자 헤세로부터.”

우리가 대중을 강요와 설교로 개종시킬 수 있다는 오만에 사로잡힌다면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헤세’들을 수레바퀴 아래로 밀어 넣는 것이다. 헤세의 삶과 작품을 통해 한 인간이 신앙으로 나아가는 동기는 설교와 강요가 아닌 공감과 사랑임을 깨닫는다. 이것을 가슴 깊이 새길 때, 비로소 교회는 누군가를 비참한 상태로부터 신의 은총으로 인도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그리고 변화시켜야만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곧 우리의 성급함, 이기주의, 쉽게 배반하는 것, 사랑과 관용의 결여 등이다.”(헤르만 헤세)

나눔과 적용을 위해 생각해 볼 것은

☞ 당신이 경험한 것들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 고통과 불안에서 당신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 위로를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글=박양규 목사

△서울 삼일교회 교육디렉터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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