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그렇습니까? 사랑입니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이 소설에서 비현실적인 스펙터클로 묘사된다. 그것은 한 시대의 장엄한 몰락의 광경이었다. 국민일보DB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당시 대학 1학년이던 강경대가 사망했고 그의 죽음을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다(위 사진). 1991년 5월 투쟁은 ‘해체 민자당, 퇴진 노태우’ 구호 아래 대규모 시위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작가는 소설에서 우리는 그 누구라도 그 어느 곳에서든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건 우연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필자 제공
 
작가 김연수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고 90년 독일이 통일됐다. 91년 4월 쇠파이프를 동원한 백골단의 폭력진압으로 대학생 강경대가 살해됐고 그해 5월 숱한 이들이 자기 몸을 불살라 독재에 항거했다. 90년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세계사적 대격변의 충격이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민주화운동의 불꽃이 장렬하게 연소해가던 시절이었다.

김연수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하 ‘네가 누구든’)은 그 시절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뜨거웠던 정치적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의 방식은 그러나 지극히 사적(私的)이다. (황지우의 시에서 따온)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대뇌(大腦)와 성기(性器) 사이”의 언어로 씌었다.

운동권 대학생 ‘나’가 있다. ‘나’는 정민과 연애를 시작했고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방황하다 입북 예비대표에 자원해 독일 베를린으로 떠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시대의 “거대한 우울”을 외롭게 떠안기로 한다. 베를린에서 지도부의 결정을 초조히 기다리던 ‘나’는 우연히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닌’이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한 사내가 그 안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떠돌이 일용노동자였던 그가 광주에서 분신한 한기복의 옆에 있다 체포돼 풀려난 뒤 사기와 엽색 행각을 벌이다 다시 안기부에 포섭돼 강시우라는 이름으로 신분 세탁을 한 후 프락치로 활동하게 됐다는 이야기. 그 뒤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강시우를 실제로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의 만남을 중심으로 다시 여러 갈래로 떠오르고 분기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

큰 가닥만 추렸지만 ‘네가 누구든’은 사실 줄거리를 쉽게 요약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아니, 그런 식의 줄거리 요약이 그다지 의미 없는 소설이다. 오히려 소설은 하나로 모이거나 추려지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연을 매개로 느슨하게 결합돼 있다. 징용에서 돌아와 간척사업을 구상하다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는 ‘나’의 할아버지, 촉망받는 인재였으나 어느 날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미래를 망치고 몽상에 잠겨 살다 결국 자살하는 정민의 삼촌, 히로뽕 제조와 밀수출에 뛰어들어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는 강시우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조선의 불이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강시우의 연인인) 레이의 아버지 사토 사부로.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헬무트 베르크에서 심지어 브레히트와 벤야민까지. 이 다기한 곁다리 이야기들이 중간중간 끝도 없이 분기하고 가지를 쳐나간다. 이 소설은 그 무수한 이야기들의 성좌다(평론가 김형중은 이 소설이 별자리 그리기의 원리에 따라 씌어졌다고 지적했다).

1904년에서 92년에 이르는 시간과 한국 일본 네덜란드와 독일을 아우르는 공간 속에 아무 연관 없이 흩어져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어디선가 우연히 만나고 연결된다. 나의 삶이 누군가의 삶과 겹쳐지며 모두의 삶은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다. 때론 입체 누드사진이, 때론 ‘히로뽕’이, 그들을 연결시킨다. 그 모두의 삶을 이어주는 것은 ‘우연’이다. 삶은 불가항력적인 우연의 연속이다. 그 우연과 우연이 만나고 나의 삶이 다른 삶과 겹쳐지며 그것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김연수에 따르면, 그것이 역사다. 역사란 필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런 우연한 겹침과 마주침이 만들어낸 우연의 집적이다. 삶의 진실은 공적 역사 속에 있지 않고 점점이 흩어진 우연 속에, 예측할 수 없는 그 우연의 겹침 속에만 존재한다.

‘네가 누구든’이 들려주는 길고 긴 이야기의 시작에 놓인 ‘나’의 할아버지의 삶도 그렇다. 학병으로 징집돼 태평양제도의 어느 섬까지 내려갔다 가까스로 돌아왔으나 간첩조작 사건에 휘말려 출소한 뒤 곧 세상을 버린 할아버지. 그는 죽기 전, “한국현대사의 모든 격동기를 온몸으로 지나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208행의 대서사시”를 비장하게 써내려갔다. 그 시엔 기미년에 태어나 “태평양전쟁,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테타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삶이 4·4조 운율에 실려”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할아버지의 진짜 일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간 할아버지가 흘린 눈물이 몇 방울이었는지, 얼마나 기나긴 길을 혼자서 걸어야 했는지, 한 남자의 일생에 몇 켤레의 신발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았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일생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가 죽기 전 불태워버린 산문 형식의 글에, 그리고 그가 남긴 불에 그을린 입체 누드 사진 속에.

왜 할아버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뻔해서 오히려 거짓말에 가까운 대서사시를 우리에게 남겨두고,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토로한 그 글은 몰래 불태워버린 것일까? 그 글은 함께 불태워버리려고 했던 입체 누드사진처럼 너무나 개인적인 경험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리라. 할아버지의 일생은 바로 거기에 있었으리라. 그러니까 단 하나의 실낱같지만 확실한 그 무엇에.

“단 하나의 실낱같지만 확실한” 그 삶의 진실을 기억하는 건 불타기 전 살아남은 여인의 누드사진이다. 그것은 은밀하고 사사로운 사물이다. 김연수의 소설에서 그 사물은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자살한 여자친구가 죽기 전에 읽은 ‘왕오천축국전’(‘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기도 하고, 실종된 아버지의 연기를 담은 기록필름(‘달로 간 코미디언’)이기도 하며, 인물만 찍던 죽은 사진작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기념사진(‘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기도 하다. 그 사물들만이 저들의 진실을 기억한다. 거기 깃들어 있는 건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진실”이다. ‘네가 누구든’에서 할아버지가 남긴 입체 누드 사진이 그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입체 누드사진 같은 사물들뿐이다.”

두 눈을 멀리 떼어놓고 눈의 초점을 흐리면 환영처럼 여인의 나체가 떠오르는 입체 누드 사진. ‘네가 누구든’은 그 입체 누드사진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나’의 말처럼 “모든 일들은 그 입체 누드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으니까.” ‘나’와 정민의 사랑도 그 입체 누드사진을 보러 가자는 정민의 제의에서 시작됐고 ‘나’와 강시우와 그들 각자 선친들의 운명을 기묘하게 하나로 이어주는 것도 바로 그 사진이니까. “더 중요한 건 그 입체 누드사진이에요.” ‘나’가 강시우에게 말한다. “당신의 아버지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놓지 않았던 그 입체 누드 사진, 그리고 제 할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불태우려고 했던 그 입체 누드 사진 말이에요.” 그 입체 누드사진의 진실은 무엇인가? 실은 그것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중요한 건 이런 것이다.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 사사롭고 하찮은 사물에 깃든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은 남아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그 진실을 알고 난 뒤엔 이미 모든 게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남겨진 사물들이 보내는 알 수 없는 신호의 의미에 가닿고자 하는 안간힘이 우리를 하나로 이어준다. 그 신호들은 그렇게 서로 연결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마치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소망으로 어두운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처럼.

하늘에는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별들로 가득했다. …할아버지의 입체 누드사진을 들여다볼 때처럼, 무의미한 듯 밤하늘에 흩어져 있던 별들이 하나들 서로 연결되면서 손에 잡힐 듯한 생생한 형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별들은 오직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소망의 힘으로, 우주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밤하늘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외롭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도” 저 신호들은 존재한다. 그것은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소망”으로 가득한, 그렇게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온 세상을 가득 메운 목소리들”이다. ‘네가 누구든’은 점점이 명멸하는 그 신호를 읽어내 수많은 목소리들을 하나로 이어주려는 서사적 노력이다. 그것은 또한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놓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둘은 하나다. 왜 그렇게 이어야 하는가? 그럼으로써 사랑의 기적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네가 누구든’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세상의 저 모든 것들에 가닿고자 하는 마음의 기록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르나 포기할 수는 없는, 보이지 않는 그 가능성을 최선을 다해 상상하는 소설이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가능을 소망하는 불가능한 연애의 기록이다.

김연수… ‘굳빠이, 이상’부터 한국소설 대표 젊은 작가로…

김연수(47)는 성균관대에 다니던 1993년 계간 ‘작가세계’ 여름호에 ‘강화에 대하여’외 네 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하고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초기 장편소설 ‘7번국도’(1997) ‘사랑이라니, 선영아’(2003)와 단편집 ‘스무살’(2000)은 “7번국도”로 상징되는 세대의 정체성을 감각적인 언어로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그는 ‘굳빠이, 이상’(2001)에서부터 문헌학적 상상력에서 출발해 시적 현실에 도달하는 독특한 방법론을 펼치며 한국소설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에게 역사는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심연이자 진지하게 탐구되어야 할 문학적 주제다. 김연수 소설에서 역사와 문학의 거리는 그렇게 짧으면서도 깊다.

따라서 진실은 “뿌넝쉬(不能說)”, 즉 “말로 표현될 수 없다.” 그리고 김연수 소설은 바로 그 표현 불가능한 진실의 세계에 가 닿으려는 불가능한 시도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감각적 언어와 삶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풍부한 문화적 경험을 담은 김연수의 소설은 많은 젊은 독자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굳빠이, 이상’으로 동서문학상, 단편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2003)로 동인문학상, 단편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로 대산문학상,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2007)으로 황순원문학상,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2009)으로 이상문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그 외에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 ‘밤은 노래한다’(2008) ‘원더보이’(2012)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2012)과 단편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2009) ‘사월의 솔, 칠월의 미’(2013)가 있다.

<김영찬 문학평론가>

마지막 회입니다. 그동안 ‘명작은 시대다’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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