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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장애인들 위한 삶… 조금 힘들어도 괜찮아

빛된소리글로벌예술협회 배은주 이사장이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밝게 웃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배 이사장(앞줄 왼쪽 두 번째)이 장애인 인권개선 뮤지컬 ‘더 라스트 콘서트’ 리허설을 마친 뒤 단원들과 함께한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빛된소리글로벌예술협회 배은주(서울 경향교회 집사) 이사장은 ‘장애인의 대모(代母)’로 불린다. 배 이사장은 노래나 연기 등에 소질 있는 장애인을 발굴해 예술인으로 양성하는 사역에 10년째 헌신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뿌듯한 변화는 장애인들이 살아갈 이유와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노래와 춤, 연기 등을 통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고 삶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 없다.

그는 협회 이사장 외에도 가수와 방송인, 작가, 때로는 엄마와 아내로 1인 다역을 하면서 휠체어에 꿈을 싣고 국내외를 돌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의 카페에서 만난 배 이사장은 밝고 꾸밈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서 장애인의 그림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간증했다. 장애를 통해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그는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고백했다.

“우리 모두 이 땅에 잠시 왔다 가는 나그네잖아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니 조금 힘들어도 괜찮아요.”

배 이사장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 살 때 열병을 앓고 하반신이 마비됐다. 척추와 다리를 여덟 군데 수술하면서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였다. “온종일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보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였어요.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요.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밖에서 뛰어노는데 매일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제가 마치 형벌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13살 때 동네 친구가 업고 데려간 교회에 다니면서 새 삶이 시작됐다. 십자가가 눈에 쏙 들어왔다. 목사님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고 찬송을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혼자 한글을 깨우쳤다. 검정고시 3년 만에 초·중·고 과정을 통과했다. 원하는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도 진학했다.

20대 초반 목발에 의지해 걷게 됐을 때 또다시 역경이 찾아왔다. 공장에 다니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후유증이 심각했다. 척추가 휘어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척추에 금속성 인공 뼈를 넣었다. 병원에서는 평생 누워 지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세 살 연상의 남자친구(남편 이영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정성스레 간호했다. 1년여 재활훈련 끝에 근력이 많이 회복됐다.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았다. 몇 차례 수술을 받고 꿈을 견고하게 지켜 낼 수 있었다.

결혼 후엔 출산의 자유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용감하게 두 딸을 낳았다. 그는 이제 희망을 부르며 바쁘게 살고 있다. 1996년 KBS 장애인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으며 시작한 가수활동은 2009년 SBS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2주 연속 우승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당시 7살이던 딸 예슬양과 함께 출연, 뭉클한 감동을 전해줬다.

“저처럼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노래를 부르게 됐습니다. 감사해요.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해요.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장애인 전문매체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와 KBS 3라디오 ‘소리로 보는 세상’ ‘참 좋은 당신’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공저로 ‘엄마 나 낳을 때 아팠어’라는 육아책도 출간했다. 2008년 옴니버스 음반 ‘세상의 빛이 되는 노래’를 기획·제작해 ‘찾아가는 드림 콘서트 희망 코리아’를 주제로 협회 단원들과 함께 전국 7대 도시 순회공연을 했다.

2010년 자랑스러운 한국장애인상위원회가 주는 ‘자랑스러운 한국장애인상’을 받았다. 14일 서울 광화문광장 특설무대에 장애인 인식개선 뮤지컬 ‘더 라스트 콘서트(THE LAST CONCERT)’라는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노래와 찬양 ‘네 바퀴의 꿈’ ‘우리가 꿈꾸는 세상’ ‘주님이 계시죠’ ‘멈춰버린 시계’ 등은 제법 알려져 있다.

그의 꿈은 소박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도 더 열심히 노래하며 살아갈 것이고 어디든 휠체어를 타고 달려가 노래를 통해 희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 재능 있는 장애인 예술인들이 있는데 공연 기회가 없어서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며 관심을 요청했다.

그는 “장애는 육체적인 장애보다 정신적인 것”이라며 “협회 사무실 임차료를 내지 못하고 직원 월급이 밀리는 등 재정적으로 어렵지만 제 인생에 포기란 없다”고 했다. 자신을 보고 많은 사람이 더 큰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늘 웃음을 잃지 않느냐고 묻곤 합니다. 저는 살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참고 인내하고 열심히 노력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 하나님이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을요. 앞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세찬 바람조차도 삶의 소중한 일부로 여기며 살고 싶습니다(웃음).”

글=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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