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그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신약성서 제1권 마태복음 제1장은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 42대에 걸친 족보를 소개한다. 그 한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2∼6).

유대인의 족보는 남성 중심적이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이스라엘의 족장과 왕이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몇몇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들이 과연 누구이기에 여성으로서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있을까.

그녀들의 삶엔 공통점이 있다.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다말은 남편을 잃었고, 라합은 여리고성의 매춘부였으며, 룻은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 이주한 이방여인이었다. 밧세바 또한 다윗의 아내가 아니라 다윗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였다. 예수님의 계보에서 그녀들을 만나는 것은 그 시대 사람은 물론이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6)라는 말씀처럼, 당당하게 이름이 올라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하여 불명예스럽고 천시를 받던 그들의 이름이 이스라엘 왕들의 이름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하는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간단히 답한다면 ‘그것이 바로 기독교 정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이해하신다. 우리는 받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은 라합과 룻을 받아주신다. 천시 받는 사람도, 이방인도, 불행한 사람도 하나님은 이해하시고 받아주시고 용서하신다. 그리하여 생명을 이어가게 하시고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신다.

기독교 정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들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올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들의 이름이 오른 건 곧 사회적 낙인과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만이 아닌, 속박과 굴레에 눌려 있는 모든 이들의 자유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이 우리 역사 속에도 있다. 선교사가 세운 제중원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는 설립된 지 22년 만인 1908년 제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면허증을 발급했다. 정부 고위 관리들과 미국, 일본의 인사 등 900여명이 참석한 이 졸업식에서 선교사였던 게일 목사가 사회를 맡았다. 에비슨 교장이 졸업생들에게 휘장을 주고 스크랜턴의 강연에 이어 축사가 이어졌다. 교적부에 오른 영예로운 제1회 졸업생들 가운데 박서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백정의 아들이었다.

100여년 전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백정은 ‘칠천반(七賤班)’이라 불리던 일곱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신분이었다. 상투를 올릴 수도 없고 갓을 쓰거나 도포를 입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름을 올릴 호적조차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 해도 백정의 아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그 학교의 교수가 되다니. 동시대인들에겐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교육의 기회를 꿈꿀 수조차 없었던 백정의 아들이 뼛속까지 스며든 굴레를 벗고 자유인이 된 것이다.

그 후 의사 박서양은 자신의 자유에 만족하지 않고, 자유를 낳는 사람이 된다. 1917년 간도로 이주해 동포들을 위한 병원을 세우고 민족교육기관을 설립해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북간도 최대의 독립운동 조직인 대한국민회의 유일한 군의관으로 활약하면서 많은 독립군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기도 했다. 그것은 민족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등 후배들을 연희전문대로 인도하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예수의 말씀이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입춘(立春)은 겨울 한복판에 봄이 와 서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온 겨레에 진리가 서고 자유의 찬가가 울려 퍼지기를 오늘도 소망한다.

박노훈(신촌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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