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2000년대식 정신승리법


 
지금 한국사회는 ‘1인용 삶’의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규모가 작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편의점은 개인주의적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하다.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세만으로 도심지에서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주거공간이다. 김애란은 이들 공간을 배경으로 2000년대 한국사회의 민낯을 그려냈다. 한 편의점 내부 모습(위 사진). 아래 사진은 고시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 일대.국민일보DB
 
김애란


김애란은 2000년대에 가장 핫한 젊은 작가 중 하나였다.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통해 그는 2000년대 소설의 새로움과 젊은 감수성의 선두주자로 각광받았다. 평론가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문단 안팎의 불문율임을 지적했고,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만화적 명랑성, 가난하고 고된 일상 속에서 발휘되는 동화적 천진난만함, 거짓 상상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를 긍정하는 어른스러운 대범함. 김애란 소설 속의 '어린'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들은 이 세계의 비참과 우울을 그대로 떠안고 있으면서도 결코 아프다고 엄살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긍정의 주술을 통해 명랑하고 코믹한 태도로 맞선다. 아울러 자기가 떠안은 고통과 슬픔을 "거대한 관대"로 되돌려준다. '달려라, 아비'는 이를 통해 그 제목만큼이나 경쾌하고 명랑한 김애란 특유의 감각과 감수성을 2000년대식으로 보여준다.

‘2000년대식’이란 무엇인가? 일단 사회경제적 조건의 차원에서, 비참한 어린 개인주의자들의 내면 풍경이 있다. 그들의 내면을 잠식한 것은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계급 고착화와 빈부격차의 확대, 전반적인 소득 수준의 하락이 불러온 빈곤에 홀로 맞닥뜨린 자의 불안이다.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열악한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절망감은 이 세계 전체에 대한 공포로까지 확장된다. 특히 어떤 사회경제적 토대도 마련하지 못한, 아직 사회에 입문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이런 현실은 단기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것이어서 더욱 심각한 실존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2000년대의 비참한 개인주의자들에게서 지금의 삼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자기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이다. 이들이 바로 김애란 소설의 인물들이다.

그들이 처한 누추한 현실은 스스로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리시키게 만든다. 지난 시절, 가난은 계급적 동질감과 연대감의 동기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가난은 이들을 세상에서 격리된 한 칸 방에 고립시킨다. 이때 ‘방’은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우선 그것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실제적 권리로부터 ‘박탈된’ 상태를 의미한다.

김애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고시원과 원룸이 그렇다. 등단작인 ‘노크하지 않는 집’을 보자. 이 소설에서 ‘나’는 “여관식 자취방”에 사는 다섯 여자 중 하나로 1번방 아가씨로 불린다. ‘나’는 두 번의 도난사건을 겪은 뒤, 열쇠가게 주인의 도움으로 나머지 네 여자의 방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목격하고야 만다. 내 방과 가구에서부터 옷, 장신구, 책, 그리고 방바닥에 난 담배빵 자국까지 하나의 오차도 없이 징그럽게 똑같은 네 여자의 방을.”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나’는 방의 구조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조차도 사실은 자본주의적으로 견고하게 디자인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한 칸 방에서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자기가 사실은 숫자로만 존재하는 무명(無名)의 존재이자 누추한 익명적 타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김애란 소설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공간이 대개가 그렇다. 편의점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 그곳에서 나는 깨끗한나라 화장지를, 이오요구르트를, 동대문구청에서 발매한 10리터용 쓰레기봉투를, 좋은느낌 생리대를, 도브 비누를 산다.

김애란 소설은 편의점을 한국소설의 의미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편입시켰다. 그곳은 24시간 개방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지만 서로에 대해 “묻지 않는” 공간이다. 김애란이 그리는 편의점은 ‘혼밥’과 ‘혼술’로 상징되는 개인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기 시작한 2000년대 한국사회의 일상적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궁핍한 자취생”이자 “그 무엇도 아닌” 존재에게 편의점에서의 소비는 잠시나마 자신의 남루를 잊고 ‘나’ 자신을 평범한 서울시민이자 소비자가 되게 한다. 그러면서도 편의점은 ‘나’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물, 휴지, 면도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편의점의 “거대한 관대”는 사실상 거대한 무관심에 다름 아니다. 상품의 교환관계만 있을 뿐 개인에게는 무관심한 공간, 다른 존재와의 유의미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 따라서 개개인의 개별성은 삭제되는 공간이다. 김애란 소설에서 ‘편의점’은 개방된 원룸 혹은 확장된 고시원이다. 김애란 소설 속의 고시원과 편의점은 그렇게 남루한 개인주의자들의 2000년대식 일상을 요약한다.

그러나 김애란은 우울하거나 비참한 일인용 삶을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이런 비참과 절망을 그리는 데서 그친다면 그것은 김애란의 소설일 수 없다. 김애란의 인물들은 자기가 처한 남루한 현실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비참한 현실에 절망하기보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 방식이란 바로 농담과 상상, 혹은 거짓말의 전략이다. 그것은 자기의 상처와 아픔조차 가볍게 허구화하는 방법론이다. 그 방법론은 자기 존재의 기원에 관한 상상적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가족극에서 특히 그 위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를 보자. ‘나’는 택시운전을 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소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섹스를 위해 단 한 번 성실하게 뛰었지만 뒷감당이 무서워 가족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나’는 결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으로 전 세계를 뛰어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나’를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는 상상 속에서 그렇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러너(runner)로 재탄생한다. 또 다른 소설 ‘사랑의 인사’ 속의 아버지는 또 어떤가. 그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세계의 불가사의’라는 책을 쥐어준 채 유원지에 ‘나’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러나 ‘나’는 자기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실종되었다”고 상상한다. 그렇게 “나는 자라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는 사라져 미스터리가 되었다.” 그러니 이 아버지들에게 어떻게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김애란 소설에서 아버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은 이런 방식으로 순화된다. 무책임한 아버지를 철모르는 아버지로 전도(顚倒)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아버지 없는 비참한 현실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과연 이런 주관적 상상만으로 현실의 모순들이 극복될 수 있을까? 혹 이런 방법이 자기의 모든 무능과 잘못을 IMF 탓으로 돌리는 ‘나쁜’ 아버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

이것은 비참한 개인주의자들이 남루한 삶의 결핍을 견디는 허구화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한 자기위안의 제스처로서의 정신승리법인가? 그렇지 않다. 루쉰의 ‘아큐정전’에서 아큐의 정신승리가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도 맺지 못한 채 오직 망상과 환상 속에서만 작동하는 자기도취적 기제였다면, 김애란의 인물들은 그와 다르다. 김애란의 소설에서 정신승리는 자기가 처한 비참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 위에서 작동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적이다. 거꾸로 현실 또한 허구를 통과한 다음에야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 ‘종이 물고기’는 이러한 현실과 허구 사이의 긴장 관계를 소설 장르에 대한 탐색과 결합시킨 소설이다.

“보증금 100에 월 10”을 주고 구한 옥탑방에서 소설가지망생인 ‘나’는 자신을 둘러싼 “창백한 벽면”을 글자들로 채운 포스트잇으로 붙이기 시작한다. 그 작업은 천장을 포함한 다섯 개의 면을 대상으로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 ‘자기가 읽은 책의 구절→자기 이야기→세상의 소음→한 편의 소설’ 순서로 진행된 이 소설 창작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순간,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 다니는 상상”을 하게 된다. 게다가 “방바닥 여기저기 모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종이 물고기가 ‘진짜’라고 믿게 된다.

그러나 방바닥의 모래는 진짜 바닷모래가 아니라 사실은 금 간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면서 생긴 시멘트 가루였을 뿐이다. 결국 “실금이 논바닥처럼 쫙쫙 갔”던 방은 무너진다. 포스트잇은 사실 벽의 균열을 가렸던 은폐용 가림막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말 그것뿐인가? 진실은 정반대다. 왜냐하면 소설에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종이 물고기’라는 허구를 통과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렇게 참혹한 잔해 위에서야 비로소 종이 물고기는 “가쁘게, 그러나 팔딱팔딱” 생명의 긍정을 표출하면서 숨 쉴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결핍을 통해서만 작동되는 허구의 힘이다.

김애란 소설에서 긍정과 이해의 미덕은 그래서 상투적이지 않다. 절망과 비애를 감싸 안는 성숙한 농담과 상상의 세계. 이것이 김애란의 2000년대식 정신승리법이다.

■김애란은 평단서 '감수성의 혁명'이란 명예로운 수식어 부여

김애란(37·사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4학년이던 2003년에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2005년에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내고 이 책으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애란은 수상 당시 25세로 역대 한국일보 문학상 최연소 수상자였다.

간결하면서도 경쾌한 문장 호흡, 완결적 서사 구조,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 비참한 현실을 농담과 웃음으로 담아내는 발칙한 문장력 등으로 이미 등단 초기부터 문단 안팎의 많은 관심을 받은 작가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비참한 개인주의자들의 일상을 명랑만화적·동화적 상상력과 감각으로 발랄하고 경쾌하게 다루었다. 전통소설의 문법을 갱신하며 새롭게 쓰인 이들 소설에 대해 평단에서는 김승옥에 헌사되었던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를 부여하기도 했다.

작품집으로는 '달려라, 아비'(2005) '침이 고인다'(2007) '비행운'(2012) '바깥은 여름'(2017)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두근두근 내 인생'(2011)이 있다. 단편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비평가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달려라, 아비' 프랑스어판은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안타깝게)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받았다.

<심진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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