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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말씀 배우는 어린이들 귀가 쫑긋·눈은 반짝

여영숙 전도사가 지난 18일 서울 은평제일교회 유치부 예배실에서 설교를 위해 직접 제작한 예수님과 에스더 인형을 양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여영숙 전도사가 주일 유치부 예배에서 어린이들과 만날 인형을 정리하는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지난 18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3로 은평제일교회(심하보 목사) 유치부 예배실. 설교 강대상이 있어야 할 자리엔 대여섯살 어린아이 키 정도의 가림막과 스펀지로 만든 대형 성경책, 나무인형이 놓여 있었다. 성경책 옆엔 어른 키 정도의 예수님 인형이, 가림막 뒤엔 동물 인형들과 에스더, 사마리아 여인, 나아만 장군 등 성경 속 인물 인형이 있었다.

“까르르르.” 유치부 담당 여영숙(65) 전도사가 남자아이처럼 보이는 인형을 한 손에 든 채 귀엽고 발랄한 목소리로 웃으며 인사했다. “친구들 안녕. 나는 짱이라고 해. 만나서 너무 기뻐. 오늘은 전도사님이 어떤 말씀을 들려주실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자.” 짱이와 함께 여 전도사가 대형 성경책을 펴 다니엘 6장 23절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놀이동산에서 인형극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여 전도사는 이날 ‘다니엘과 세 친구’를 제목으로 주일예배 때 설교한 내용 일부를 보여줬다. 은평제일교회 5∼7세 유치부 어린이들은 이렇게 매주일 인형극으로 하나님 말씀을 배운다.

여 전도사는 현대인형극회아카데미 원장, 인형극 연출가·작가, 인형극 지도자 육성강사, 실버인형극 전문지도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1970·80년대 TV에서 어린이용 인형극으로 인기를 끌었던 ‘부리부리박사’를 연기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74년 아르바이트로 처음 인형 탈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인형과 함께하고 있다.

그는 독실하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그러나 부리부리박사로 유명해지면서 그나마 있던 믿음도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 언니가 찾아왔다.

“제가 교회도 안 나가고 하니 보기에 안타까워 언니가 계속 찾아왔어요. 아무리 바빠도 교회엔 꼭 나가야 한다면서 말이죠. 인형극을 하면서 만난 남편은 믿음이 없었는데, 제가 교회 나가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어요. 초라한 모습의 언니를 본 순간 행여 남편이 볼까 너무 창피했죠.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며 문전박대를 했어요.”

그렇게 언니를 쫓아내고 얼마 뒤 여름휴가를 떠난 자리에서 네 살 딸이 급성이질에 걸리고 말았다.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복통 설사 등으로 응급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의료진은 딸의 몸에 제대로 주삿바늘 하나 꽂지 못했다. “열을 내리려고 얼음 위에 올려놓은 딸을 보며 제가 한 말이 뭔지 아세요. ‘하나님 우리 딸 살려주시면 뭐든 다 할게요’ 였습니다.”

81년 그는 하나님께 돌아왔다. ‘불신자 남편’이 뭐라 하든 외롭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남편 눈치를 보느라 드리지 못했던 십일조도 제대로 바쳤다. 90년부턴 주일학교에서 봉사도 시작했다.

“남자 전도사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더라고요. 설교가 재미없으니 그런거죠. 그래서 제가 인형을 갖고 ‘말씀 도우미’로 나섰어요. 15년쯤 도우미 생활을 하니 인형극 대본도 쓸 수 있겠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하고 싶어 서울장신대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지요.”

여 전도사는 인형극 설교를 위해 평일엔 대본을 쓰고 인형도 직접 만든다. 그가 작업실이라고 부르는 교회 옥탑방엔 스티로폼이나 솜 등으로 만든 인형이 40개 정도 있었다. 인형을 만들고 나면 주일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말씀 도우미’를 뽑는다. 2∼3명의 도우미가 결정되면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모여 설교 인형극을 연습한다.

그는 이 과정을 ‘말씀으로 몸부림치는 시간’이라 표현했다. “요즘엔 자료들이 다양해 어린이 설교를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설교는 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씨름하면서 준비한 말씀이어야 내 것이 되고,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겁니다. 인형이 나오는 여러 신들 중에서 단 한 신이라도 아이들 마음에 제대로 심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설교 대본을 쓰고 인형을 만듭니다.”

어린이가 아니면 그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복지관에서 노인들에게 인형극을 가르칠 때 보람을 느낀다. 15년 전, 서울 방화동의 한 노인복지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앉아계신 어르신들을 보는 데 마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같았습니다. 순간 마음이 짠했어요. 70·80대 어르신들의 첫마디가 뭔지 아세요. ‘여 선생, 힘 빼지마’ 였어요.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서 말이죠. 그분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어요. 매일 인형들 데리고 가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간식을 나누고 했어요. 3개월쯤 지나니 미안해서라도 저를 따라오시더라고요.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목격했답니다.”

지금은 동대문노인복지관과 경기도 시흥의 복지관에서 실버인형극단을 지도하고 있다. 노인인권이나 노인인식 개선을 주제로 인형극을 만들어 노인들이 직접 공연한다.

여 전도사는 올해 큰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불신자 남편이 1월 세례를 받고 교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무슨 일이든 밀어주는 남편과 꼭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40년 넘게 인형극을 만들며 살아왔잖아요.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1만점의 인형이 창고에 가득 있어요. 인형박물관을 세워 어린이들에겐 예수님의 비전을, 어른들에겐 추억을, 어르신들에겐 소망을 선물하고 싶어요.” 남편 조용석(70) 전 현대인형극회 대표가 아내의 인형 제작을 도우며 미소를 지었다.

글=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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