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카드, 장수? 단명?… ‘네이밍’에 물어봐

브랜드 네이밍은 카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KB국민카드는 10대 '내꿈대로'부터 50대 이상 '골든대로'까지 주력 카드 체계를 새로 정비했다. 가온 누리 등 우리말을 이용한 통합형 카드와 KB금융지주 차원의 그룹 시너지 카드, 모바일 앱 겸용인 핀테크 접목 알파원 카드도 있다(위). 오른쪽 아래는 현대카드의 알파벳 M과 X를 이용한 챕터2 시리즈. 왼쪽 아래는 삼성카드의 숫자카드 2∼7 V2 실물이다.


처음엔 그냥 '버스사업자 유류구매 지원카드'였다. 국토교통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버스 운송사업자를 대상으로 유가보조금 지원을 위해 발급하는 유류 거래 카드다. 기름값을 깎아주는 혜택이 강조된 것으로 카드업계 주력 상품도 아니다. 발급자도 보조금 지원 대상 운송업자로 한정된다.

그럼에도 KB국민카드는 이를 '스타버스 카드'라고 이름 붙였다. '별다방'으로 불리는 '스타벅스'가 아니고 '스타버스'다. 젊은층 카드에 필수로 따라붙는 스타벅스 할인 혜택도 없다. KB가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스타(*)'에 '버스'를 덧붙인 것이다. KB국민카드는 앞서 화물차 운전자 유류구매 지원 카드에도 '스타트럭'이라고 네이밍했다. 역시 디자인이 강조된 공상과학(SF)물 '스타트렉'과 헷갈리면 곤란하다. 오현아 국민카드 브랜드디자인팀장은 9일 "이름 짓기인 네이밍은 카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네이밍은 카드업계 마케팅의 핵심을 차지한다.

알파벳·숫자·한글로 브랜드 체계화

“변화를 숭배한다 말하지만 사실 인간의 본성상 그렇지도 않았다. 10년간 만들어 온 카드 체계를 버린다니. 하지만 지난 1년간 스스로 다투었고 현대카드의 또 다른 10년을 위해 놓고 간다.”

트렌드 리더로 불리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2013년 6월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현대카드는 2003년 업계 최초로 브랜드에 알파벳 체계를 도입한 ‘현대카드M’을 내놓았다. 10년 후엔 브랜드 알파벳 체계를 고수하면서도 포인트와 할인을 M과 X 양대 축으로 단순화한 브랜드 재정립 작업을 벌였다.

‘챕터2’로 명명된 브랜드 네이밍 작업에 대해 정 부회장은 “①구조를 직관적으로 할 것. 우리도 이해 안 되는 상품은 고객에게 권하지 않는다. ②복잡함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고객이 보면 심심할 정도로”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네이밍 작업을 위해 910만명 고객의 카드 이용 패턴을 분석하고, 4만2000시간 동안 태스크포스팀(TFT) 인력을 투입했으며, 160차례 이상 경영진 회의에서 토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현대카드가 알파벳으로 브랜드 체계를 다듬었다면 삼성카드는 숫자로 확장성을 지닌 브랜드 네이밍을 선보였다. 2011년 11월 11일 소위 ‘젓가락데이’에 맞춰 삼성카드는 숫자카드 진수식을 열었다. 삼성카드 1은 프리미엄 고객층, 2는 젊은이, 5는 엄마, 6은 아빠 등 1∼7까지 구분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카드를 권하는 식이다. 2014년엔 혜택 등이 업그레이드된 버전인 V2 상품으로 리뉴얼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고객이 수많은 혜택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워 대표 혜택 2개, 적립 1개를 카드에 표기했다”고 말했다.

KB국민카드는 ‘대로 시리즈’로 명명된 브랜드 체계화 작업을 마치고 본격 마케팅 작업의 시동을 걸고 있다. 560개 이상 흩어져 있던 카드 상품 가운데 제휴나 프리미엄 등을 제외하고 대표 주력 품목을 ‘청춘대로’ ‘탄탄대로’ ‘골든대로’로 재정립한 것이다. 여기서 ‘대로’는 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와 같이 ‘As you want’ 의미와 함께 중국의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처럼 ‘큰 길’의 대로(大路)란 뜻도 담겨 있다.

2030 젊은층에겐 감각적 혜택이 모여 있는 청춘대로, 3040 중장년층엔 경제적 굳건함을 의미하는 탄탄대로, 50대 이상은 편안한 노후를 상징하는 골든대로에 해당된다. 주력 품목은 아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는 10대를 위한 체크카드 ‘내꿈대로’도 있다. 오현아 팀장은 “은행 창구 등에서 카드 모집을 할 때 굳이 브랜드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이와 경제력에 맞춰 직관적으로 상품을 추천할 수 있게 고안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의 가슴에 남으려면

카드도 라이프사이클이 정해져 있다. 밤하늘 별과 같이 계속 탄생하고 명멸하는 탓에 새로 나온 카드 상품이 3년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이라도 고객들 마음에 남으려면 브랜드 네이밍의 체계화가 필수다.

신한카드 임영진 사장은 지난 3월 취임 이후 “카드 상품 종류만 400개가 넘는다”고 지적하며 카드 구조조정과 브랜드 재정립을 지시한 바 있다. 옛 LG카드가 합쳐진 신한카드는 2200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 고객수를 자랑한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브랜드 네이밍과 재정립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연내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드사마다 연간 70∼80개 상품이 새로 출시되고 사라지는 등 교체가 빠르다보니 잊혀지기엔 아까운 걸작도 많다. KB국민카드의 훈민정음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국민카드는 2013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뜻에서 모티브를 얻어 교육비에 특화된 ‘훈’, 생활 밀착형인 ‘민’, 매력을 뽐내는 ‘정’, 식음료 혜택이 많은 ‘음’ 등의 카드를 야심차게 출시했다. 유생들이 갓을 쓰고 정자에 앉아 테이크아웃 커피를 받아든 뒤 ‘음’ 카드를 내밀고, 젊은 여성이 예쁜 한복을 입고 구두 가게에서 하이힐을 고른 뒤 ‘정’ 카드를 보여주는 광고도 특이했다.

하지만 이후 불거진 2014년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로 이 시리즈는 주목받지 못했다. 현재 KB국민카드에는 세상의 중심이란 뜻의 순우리말 ‘가온누리’ 상품이 남아 한글 이름 명맥을 지키고 있다. 국민카드는 서울 광화문 일대 기업 사옥으로는 드물게 출입구가 공원과 맞닿아 있으며 이 공원은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에게 헌정된 ‘주시경 마당’이다. 옛 배재학당이 있던 인접도로 이름은 ‘한글가온길’이다.

한글을 브랜드로 체계화한 카드로는 우리카드의 ‘가나다’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훈민정음 시리즈보다 더 쉽고 직관적인데, ‘∼타파하’ 혹은 ‘거너더∼’ 등으로 무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실제 자유로운 여행을 돕는 ‘자’ 카드와 ‘LG유플러스’라서 즐거운 ‘라’ 카드로 확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출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올해 초 신규 발급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우리은행과의 시너지를 위해 주력 카드가 위비 브랜드로 전면 교체됐다”며 “신규 발급만 제한될 뿐 기존 고객은 계속 카드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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