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옥자가 우리집 식탁에?… 유전자조작 연구 어디까지 왔나

새로운 품종의 ‘슈퍼돼지’를 둘러싼 얘기를 담은 영화 ‘옥자’의 한 장면. 배경 사진은 영화 포스터.




첫 인상은 하마였다. 익숙한 들창코의 돼지 모습과는 동떨어져 보였다. 나중엔 ‘돼지가 왜 이렇게 클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식량과 경제 문제를 생각하니 자연스레 답이 나왔다. 가상의 글로벌 농화학 업체인 ‘미란도코퍼레이션’이 10년에 걸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크고 맛있으면서도 사료를 덜 먹는 새로운 돼지 품종 개발이 목표였다. 내세운 의도는 좋았지만 소비자를 의식해 ‘친환경’이라는 거짓말을 덧붙인 게 패착이었다. 소비자들이 기피하는 유전자 조작(GM·Genetically Modified) 돼지라는 사실을 숨긴 것이다. 190개국에서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이렇게 현실에서 있을 법한 문제를 곱씹게 만든다.

현재까지는 가상의 얘기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돼지를 포함해 GM 동물을 식용으로 판매할 수 없다. 해외에서도 GM 동물의 공식적인 판매 허용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GM 동물을 먹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구까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돼지를 포함한 동물의 GM 연구는 의학적 면에선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 GM 농산물이 식량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된 지는 이미 오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세계 인구는 이 대안을 무시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과도한 인구가 부르는 ‘식탐’

유엔 인구국(UNPD) 통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 세계 인구는 75억5026만명이다. 67년 전인 1950년만 해도 25억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반세기를 조금 넘는 동안 3배 정도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 인구 증가세는 여전히 정점에 이르지 못했다. 추세는 둔화되고 있지만 2050년이면 97억7182만명까지 늘어난다는 게 UNPD의 전망이다. 매년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6732만명씩 늘어나는 셈이다. 2100년에는 112억여명 정도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장기 전망도 덧붙였다.

인구 증가는 그만큼의 식량 소비를 늘린다. 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농업 전망’ 2016년판에 따르면 전 세계 밀 소비량은 올해 기준 연간 7억3340만t에서 2025년이면 7억8959만t으로 소폭 늘어날 것으로 추계됐다. 한국인들의 주식인 쌀은 증가세가 조금 더 높은 편이다. 올해 연간 5억1211만t에서 2025년 5억6317만t으로 상승이 예고됐다. 비율로 보면 8년 사이 각각 7.7%, 10.0% 증가한다.

농산물과 비교했을 때 육류 소비 증가세는 좀 더 가파르다. 송아지를 포함한 전 세계 소고기 소비량은 올해 6972만t으로 추산된다. 8년 후인 2025년에는 연간 7746만t으로 늘어난다. 돼지고기 소비량은 올해 1억1974만t에서 2025년에는 1억3080만t으로 증가한다. 비율로는 12.5%, 10.5%씩 늘어나는 셈이다. 한국의 육류 소비 증가세는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2025년까지 소비량이 점점 줄어드는 쌀에 비해 소고기와 돼지고기 소비는 꾸준히 상승세를 그린다.

소비량이 늘어난다는 전망에는 그만큼 생산량이 동반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살아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자신의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을 얘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활발해지는 GM 연구

현실 속 ‘옥자’ 연구가 멈추지 않는 이유 역시 인구 문제가 근원이다. 여기에 경제라는 이슈가 더해졌다. 캐나다 겔프대 연구진은 이 문제에 가장 발 빠르게 접근했던 곳 중 하나다. 겔프대에서 개발한 GM 돼지는 대소변의 ‘인’ 함량을 65%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인은 한국 4대강에서 매년 발생하는 녹조를 유발하는 물질이다. GM 돼지를 키우는 축사의 고질적 병폐를 해결해 환경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게 개발 목적이었다. 연구를 주도한 세실 포스버그 박사는 “8세대까지 후손을 얻는 과정에서 유전자 구조 변화가 없었다”며 성공을 자신했다.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윤희준 중국 옌볜대 교수 공동 연구진은 식용이라는 목적에 더 충실했다. 돼지의 근육 성장을 막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해당 유전자를 제거한 세포를 돼지 난자에 이식해 새끼돼지를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다. 일반 돼지와 달리 근육량이 더 많은 GM 돼지다.

연구는 돼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15년 11월 세계 최초로 판매를 승인한 GM 연어가 대표적이다. GM 연어는 미국과 캐나다 합작 법인 ‘아쿠아바운티 테크놀로지’에서 개발했다. 대서양 연어에 태평양 치누크 연어 유전자를 주입해 일반 연어보다 생장 속도를 2배 빠르게 만들었다. 한국도 식용 목적은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가 나온 바 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2015년 11월 연어의 사촌격인 무지개송어 줄기세포를 한국의 산천어 암컷과 수컷에 집어넣어 치어를 생산했다. 태어난 치어는 유전적으로 무지개송어다. 무지개송어는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등 북미 지역에만 서식한다.

심리적 문제가 관건

연구 속도는 빠르지만 우리 식탁에 올라도 될지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캐나다에서 개발한 GM 돼지도 시민사회의 반대 문턱에 걸려 폐기됐다. 글로벌 농업 기업인 몬산토에서 1990년대에 개발한 GM 콩과 옥수수는 상용화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 문제를 심리적 요인에서 찾는다. 노벨상 수상자 108명은 지난해 6월 성명을 통해 “생명공학으로 개선한 작물·식량에 대한 세계 농업인과 소비자들의 경험을 재평가하라”며 “권위 있는 과학 기관의 연구 결과를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세계 3대 환경단체 중 하나인 그린피스의 GM 농산물 반대 캠페인을 의식한 주장이다.

하지만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 논리도 무시하기 힘들다. 심리적 요인은 차치하고라도 인위적으로 만든 GM 농산물이 기존 작물 재배지를 차지했을 때가 문제다. 특정 GM 농산물이나 동물에게만 작용하는 바이러스가 발생한다면 대체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식탁에서 옥자를 만날 것이냐의 문제는 이 논란이 그친 이후 문제다. 그 중간에도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한 경고도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저서 ‘호모 심비우스’에서 “이기적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