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믿음과 용기로 비천한 신분 뛰어넘어 하나님의 도구로

기생 라합이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주는 장면. 여리고 왕이 부하들을 시켜 정탐꾼을 찾으러 왔지만 라합은 거짓말로 왕의 부하들을 돌려보낸다. The Art Archive at Art Resource
 
라합(왼쪽)이 여리고 성벽 창문에 줄을 매달아 정탐꾼의 피신을 돕고 있다. 오른쪽 아래엔 정탐꾼을 찾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여리고 왕의 부하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The Art Archive at Art Resource
 
라합이 머물던 성벽 위 집 창문 아래로 내려진 붉은 줄.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라합과 그 가족을 구해주기 위해 사전에 라합과 약속한 신호다. 성벽 위에는 라합과 그 가족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고, 성벽 아래엔 이스라엘 군사들이 여리고 성문을 부수고 있다. The Art Archive at Art Resource
 
현길언


예수의 족보에 등장한 여인들

예수의 집안 내력이 기록된 마태복음(1장)과 누가복음(3:21∼38)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인간의 족보엔 주로 남자를 중심으로 한 집안의 대(代)가 순차적으로 나열된다. 그런데 예수의 족보에선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3절)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5절)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6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16절)

예수의 족보도 인간의 족보처럼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기록되다가 유다와 살몬, 보아스와 다윗의 경우엔 그 부인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이들 여인은 다소 특별한 인물이다. 즉 정상적인 남녀 관계, 또는 부부의 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이 가운데 살몬의 아내인 라합은 사회적으로 비천한 여성이었다. 성경에선 그녀를 ‘기생’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은 이들 여성의 신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나아가 더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 이들을 다룬다.

적군의 목숨을 구해 준 라합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면서 가나안 정복의 큰 일을 수행한다. 그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싯딤 광야에 진을 치고, 여리고 성으로 정탐꾼을 보낸다. 여리고는 가나안의 중심 도시이자 견고한 요새였다.

2명의 정탐꾼은 여호수아의 지시를 따라 여리고 성 초입에 있는 기생 라합의 집으로 들어갔다. 라합은 사실상 적군인 정탐꾼들을 숨겨줬다. 라합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애굽을 탈출하고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리고 왕은 이스라엘 정탐꾼이 여리고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어 정탐꾼을 잡아오도록 라합의 집에 병사를 보낸다. 그러나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왔다가 도망갔다며 그들의 행로까지 거짓으로 꾸며서 말했다. 정탐꾼들을 살려 준 것이다.

라합은 자신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정탐꾼들을 돌려보내면서 한가지 부탁을 했다. 이스라엘군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 자기와 식구들을 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정탐꾼들은 이 모든 사실을 여호수아에게 보고했고, 이스라엘군이 여리고 성을 정복했을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 식구들은 목숨을 건졌다.

훗날 라합은 이스라엘 사람 살몬과 결혼해 보아스를 낳는다. 그는 룻의 남편이 되는데,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으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까지 이르는 족보에 이 모든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비천함을 뛰어넘는 라합의 담대한 믿음

기생 라합은 사회적으로 비천한 신분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됐다. 여리고 성 초입에서 거했던 라합은 많은 사람들과 대하면서 세상 형편에 밝았을 것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가나안을 정복할 것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세울 것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었고, 여리고 성이 함락되는 상황까지 내다보면서 그 때를 대비한 신변 보장을 약속받았던 것이다.

라합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주도하셨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를 그대로 이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利害) 관계와 위험 부담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사회·역사적 상황을 끌어안고 판단하고 처신하는 일은 일반인조차 쉽지 않다. 기생 출신의 라합이 감당하기에도 분명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합은 이해 관계를 떠나 세상과 역사를 보는 안목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

라합의 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역사는 영웅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라합과 같은 비천한 신분의 여성까지도 역사의 한복판에 불러들여 큰 일을 맡기신다. 그 사역에 당당하게 참여하는 라합의 담대함과 현명함은 기생이라는 비천한 신분을 뛰어넘는다.

라합은 세상 물정에 밝았을 것이다. 그녀가 살던 곳엔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싯딤 지역에 이스라엘 민족이 집결해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또 그들이 여리고를 공격할 것과 더불어 그들의 최종 목적지가 가나안 땅이었으므로 여리고의 점령이 작전상 중요하다는 것도 모르진 않았을 법하다. 이스라엘 정탐꾼이 손님을 가장해 불쑥 들어왔을 때에도 그 정체를 간파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능동적으로 정탐꾼을 도왔다. 정탐꾼의 협박이나 자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이해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기에 보통 사람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적군인 여호수아의 정탐꾼들을 도와준다는 건 모험이자 반역행위이기도 했다. 여리고의 병사들이 라합의 말을 믿지 않고, 그녀의 집안을 수색할 수도 있다. 위험한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정탐꾼을 숨겨준 것이다. 믿음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행위였다.

나약한 여성이 하나님의 도구로

남성이라면 어땠을까. 과연 라합과 같은 행동을 했을까.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가나안 군대들은 강했다. 여리고 성을 지키는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이곳을 탐색한 정탐꾼들의 보고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상대가 될 수 없을 만큼 약했다.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본성이 강한 남성이었다면 아마 정탐꾼을 붙잡아 여리고 왕으로부터 큰 대가를 받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약하고 비천한 여성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다. 더구나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 여인 가나안 족속이었다. 이 같은 사실에서 하나님이 라합을 통해 여러 민족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이스라엘 남자 살몬과 결혼해 보아스를 낳았다는 성경 기록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종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여러 작전을 구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섭리를 이루셨다. 비천한 기생 출신의 라합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라합은 눈앞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를 의식했고 순종했다. 인간의 눈엔 비천한 여인 라합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고귀한 믿음을 간직한 여성이었다.

글=현길언 작가
계간 ‘본질과 현상’ 발행·편집인
서울 충신교회 은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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