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그 길에 서니 ‘영성의 시인’이요 순례자 되다

서울 ‘시인의 언덕’
 
서울 ‘천상병 산길’
 
경기도 양평 ‘소나기 마을’
 
광주 호남신대 ‘고난의 길’
 
전남 해남 ‘송정 소나무숲 길’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자.

크리스천에게 휴가는 ‘마음의 쉼표’를 찍고 영성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여행의 시간이다.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을 취재하며 발견한 ‘쉼과 영성’의 장소를 소개한다.

서울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인이 산책을 즐겼던 수성동 계곡을 끝까지 올라가면 인왕산 스카이웨이와 만난다. 큰길 하나를 건너면 인왕산 등산로와 연결되고, 스카이웨이를 따라 걷다보면 정자를 하나 지나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이어진다. 이곳에 서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시대의 아픔을 성찰하며 정직하게 자신을 응시했던 시인을 기념하는 ‘윤동주 문학관’은 덤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무 울타리에 적힌 서시를 읽으며 걷다보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서울 상계동 천상병 산길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천상병 테마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엔 순진무구한 웃음을 짓는 천상병의 팔에 아이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의 동상이 있고, ‘귀천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도 있다. 등산로 초입의 ‘천상병 산책로’에 들어서면 입구에 ‘아름다운 소풍 천상병 산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계곡을 따라 천상병 시인의 시를 새긴 목판들이 쭉 늘어서 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시를 감상하다 보면 잊었던 순수한 감성이 되살아난다.

경기도 양평 소나기 마을

‘소나기마을’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이 소녀를 등에 업고 도랑을 건너던 ‘너와 나만의 길’,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수숫단 오솔길’이 있다. 그 길들을 걸으며 쓸쓸한 빛이 감도는 소녀의 까만 눈동자, 양산처럼 생긴 노란 마타리꽃을 들고 웃는 소녀의 보조개, 소녀를 업고 불어난 도랑물을 건너는 소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곳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인공 소나기가 내린다. 방문객들은 수숫단과 원두막으로 피하면 된다. 마치 ‘소나기’ 속의 소년과 소녀가 된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후 문단에서 인간의 구원문제를 다룬 황순원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학관이 있다.

광주 호남신대 고난의 길

광주 호남신학대학 캠퍼스에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로 시작하는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시비가 있다. 김 시인은 양림산을 자주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학교 뒷산에 있는 선교사 묘원으로 가는 길목엔 ‘시인의 길’이 조성돼 있다. 선교사 묘원으로 오르는 길엔 65개 디딤돌로 이루어진 ‘고난의 길’을 걸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곳에 묻힌 선교사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걷는 길이다. 선교사 묘원엔 배유지, 우일선, 오웬을 비롯해 호남 지역에서 선교하다 숨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묘 22기가 안장돼 있다.

전남 해남 송정 소나무숲 길

전남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259번지. 고정희 시인의 생가 뒤편에 자그마한 동산이 있다. 동산에 오르기 전, 구릉 전체가 키 큰 해송들이 군락을 이루는 ‘송정 소나무숲 길’을 만날 수 있다. 피톤치드 향을 만끽하며 삼림욕을 할 수 있다. 자유를 향한 시심을 불태운 고 시인은 이 숲길을 걸으며 많은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동산에 오르면 저수지와 사방의 넓은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에 앉아 시인은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을 것 같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썼다가 이 세상에서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고정희 ‘지울 수 없는 얼굴’ 중에서)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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