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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나운서 박사 1호 전영우씨 “말은 품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유쾌한 응접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영우 전 아나운서. 사진은 그가 동아방송 부국장 겸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던 모습. 소명출판사 제공




“입(口)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말하는 겁니다. 페르시아 속담에 총에 맞은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도 사람의 말에 맞은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다는 경구가 있지요.”

국내 아나운서 박사 1호 전영우(83)씨는 16일 60여년간 ‘말(언어)’을 다루며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이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50, 60대 이상에게 라디오 방송 명 사회자로 기억된다. 1954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재학 중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 1기 수습 아나운서 모집 공채에 합격해 방송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동아방송으로 옮겨 ‘유쾌한 응접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정점을 찍었다. 80년 언론 통폐합으로 KBS에 복귀한 그는 9시 뉴스 앵커로 활약한 뒤 83년 수원대로 옮겨 국어학자로 30년을 보냈다.

최근 ‘화법에 대하여’(소명출판사·표지)라는 회고담을 낸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어시간에 문법 위주로 배우기 때문에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연설하는 게 요즘 추세인데 지난 대선에서 웅변조로 연설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말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말소리가 분명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쉬워야 하지요. 연설을 잘하기로 유명한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등학교 졸업생 정도 수준에 맞춰서 얘기했습니다. 셋째, 이야기가 관심을 끌어야 합니다. 넷째, 재미있어야 하고요. 유머는 필수입니다. 다섯째, 이야기가 유익해야 합니다. 여섯째, 이야기에 감동이 빠지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듣고 나면 여운이 남아야 합니다.”

그는 지난 대선 TV토론을 본 결과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유승민과 심상정 후보는 음성이 좋아 호응도가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띄어 말하기, 읽기(끊어 말하기)’가 탁월했다고 분석했다. 안철수 후보는 저음으로 깔면 좋은 스타일인데 가끔 격앙돼 점수를 깎아먹었다고 분석했다.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는 또랑또랑한 발음, 깔끔한 음색, 억양의 높낮이가 분명했다. 마이크를 놓고 강단을 떠났지만 그는 천생 한 시대를 풍미한 아나운서였다.

요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번역하면서 삼복더위와 싸우고 있다는 그는 말을 잘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인격부터 돌아보라고 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 아시지요. 자연스러우면 진실이 느껴집니다. 그래야 설득할 수 있죠. 목소리만 높으면 약장수와 다를 바 없어요. 특히 지도자들은 목소리 톤을 낮추는 게 좋습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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