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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평범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인터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의 참상을 마주하고 혼란을 겪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려낸 송강호. 그는 “내가 특별히 연기를 잘했다기보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서민적인 친근감이 작용한 것 같다. 잘생긴 배우들이 택시운전사 옷 입고 앉아있으면 안 어울리지 않겠느냐”라고 웃었다. 쇼박스 제공




“아픈 현대사의 굵직한 한 페이지를, 두 시간 남짓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는 데에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 영화배우로서나 예술가로서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송강호(50)는 시대를 그려내는 탁월한 재주를 지닌 배우다. 1960∼70년대 독재정권 배경의 ‘효자동 이발사’(2004), 1980년대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2013) 등을 통해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되짚었다. ‘좌파배우’란 비아냥과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뜻밖의 방해에도, 결단코 꺾이지 않은 그의 소신은 작품 그 자체의 가치다.

“정치적인 이유로 작품을 선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단단한 눈빛으로 얘기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여파로 자기검열을 하게 됐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런 정치적 부담감이 실제 작품 선정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고 했다.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역시 “이 뜨거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뛰어들었다. 한 차례 거절했던 작품이지만, 그건 ‘과연 내가 이 작품의 진심을 부끄럽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까’란 고민 때문이었지 ‘정치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란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택시운전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극 중 송강호가 맡은 역은 힌츠페터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서울 택시기사 만섭. ‘김사복’이라는 이름만 남긴 채 자취를 감춘 실존인물을 극화한 이 캐릭터는 먹고 살기 바빴던 그 시대의 소시민을 대변한다.

여타 5·18 소재의 영화들과 달리 ‘택시운전사’는 전반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당시 참상을 떠올리게 하는 촬영 현장은 유독 고통스러웠다. “금남로 촬영 때 특히 울컥울컥하고 괴로웠어요. 사람들을 발가벗겨 트럭에 막 싣는데…. 보조연기자들이 연기하는 거지만, 어쩐지 그분들이 실제 광주 시민들처럼 보이더라고요.”

일부에선 감정을 절제한 연출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송강호는 “이 영화는 ‘80년대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며 “우리 현대사의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슬기롭고 성숙하게 그려낼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념과 사상에 얽매이기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장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도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죠. 도리를 지키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열망이 모여 결국 새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의 시국도 마찬가지고요.”

어느덧 30년 가까이 연기를 해왔다. 그 세월 동안 ‘배우의 도리’에 대한 고민은 늘 따라붙었다. “항상 딜레마가 있었어요. ‘어떤 연기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가. 그게 나의 100%인가.’ 그런데 얼마나 잘하느냐 만큼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더라고요. 최소한 내가 연기를 통해 전하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나를 기다려주는 관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는 송강호는 부지런히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촬영 중인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을 마무리 지은 이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들어갈 예정이다. 쉴 틈이 없겠다는 말에 그는 “그래도 중간에 5∼6개월씩은 쉰다. 나처럼 다작과 거리가 먼 배우도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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