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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농부 화가’ 김순복씨의 서울 나들이… ‘참기름처럼 고소한 전시회’

농부화가 김순복씨가 색연필로 농촌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 그림들. 전남 해남군 현산면 향교리 자신이 사는 농촌마을 사람들이 그림 속 주인공이다. 행촌문화재단 제공
 
최근 전남 해남 향교리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색연필로 그리다 처음으로 아크릴 그림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저기 경치 한번 보세요. 저 산 너머로 해도 뜨고 달도 뜨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집 뒤 양파 밭, 멀리 사이좋은 형제처럼 나란히 앉은 두륜산과 달마산을 가리키며 말하는 김순복(59)씨의 표정이 환했다. 충북 청주의 도시 아가씨였던 김씨는 25살에 전남 해남 총각에게 시집와 농부의 아내가 됐다. “어딜 가도 해남만한 데가 없을 걸요.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조금 나가봐요, 바다도 있지.”

김씨가 사는 곳은 해남군 현산면 향교리. ‘불 때서 밥하던 시절’에 와서 듬직한 남편과 농사지으며 5남매를 낳아 키우는 사이 미운정 고운정이 밴 삶의 터전이다. 김씨가 농촌의 일상을 알록달록 색연필에 담은 그림 90점을 들고 서울을 찾는다. 12일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시민청갤러리에서 열리는 ‘농부화가 김순복의 순 진짜 참기름처럼 고소한 그림 전시회’가 그것이다.

서울 전시를 앞둔 김씨를 해남 향교리를 찾아 최근 만났다. 낯선 손님의 등장에 마당의 개가 왕왕 짖는다. 모판을 옮기고, 배추 모종을 심고, 수확하고, 새참 먹고 낮잠 자는 모습 등 고단함 속에서도 낙천성이 흐르는 이곳 농부들의 삶이 그녀의 고운 색연필 그림으로 살아났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다 이웃들이다. 정류장에 앉아 고향에 올 자식을 기다리는 모습은 애잔하고, 공설운동장 춤 잔치에서 한판 추는 어깨춤에서는 신명이 난다.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지만 그게 맛이다. 한 명 한 명에서 성격이 드러나는데, 같이 부대낀 사람이 아니고서는 잡아낼 수 없는 특유의 몸짓이 생생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3년 전. 소녀시절 화가를 꿈꿨지만, 애 키우고 농사짓고 하면서 잊은 지 오래됐다. 엄마의 넋두리를 기억한 것일까. 친정 온 큰 딸이 생신 선물이라며 내놓은 게 75색 독일제 색연필이다.

“처음엔 달력 그림, 신문에 난 사진을 보고 베끼며 연습했지요. 그러다 우리 마을 산이며 들이 들어왔어요. 마을 사람들도 그려 넣으면 재밌겠다 싶어 하나 둘 넣기 시작했고요.”

안방 앉은뱅이책상 위 색연필과 지우개 스케치북이 눈에 띈다. 이게 작업실이다.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저녁이 작업시간이다. “피곤해서 쓰러지면 바로 잠이 들것 같은데도 색연필만 쥐면 피곤이 싹 달아나요.”

일기 쓰듯 그린 그림이 어느새 100점을 훌쩍 넘었다.

12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 혼자 수천 평 밭농사를 지으며 자식 키우는 게 얼마나 막막했던가. 세상이 온통 무채색으로 보였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삶은 벼랑 끝인데 그림의 세계는 꽃밭 같았어요. 이 꽃밭에 있고 싶었어요.”

‘농부 화가 김순복’을 발견한 이는 해남에서 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행촌문화재단 이승미 대표다. 그는 인천 아트플랫폼 관장 출신이다. 해남의 카페에서 김씨가 우연히 두고 간 그림이 눈에 번쩍 눈에 띄어 수소문했다. 이 대표는 “전문가는 흉내 낼 수 없는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자신이 관장으로 있는 해남종합병원 내 행촌미술관에서 김씨의 개인전을 가졌다. 개관전에 왔던 민중미술 작가 이종구씨는 “진짜 민중화가가 나타났다. 내가 붓을 놔야겠다”고 호평했다. 전시는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달 전남 순천의 전남도청 동부사업소에서 한달 간 전시를 연데 이어 이번에 서울로 진출했다. 75세에 마을 풍경과 사람들을 아마추어 솜씨지만 정감 있게 그리기 시작했고 뉴욕의 큐레이터에게 발탁돼 유명세를 탄 미국 ‘모지스 할머니’가 떠오르는 스토리다. 서울 전시는 25일까지.

해남=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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