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관습과 윤리를 거스른 여성, 그 일탈이 낳은 역사의 신비

유다(오른쪽)가 딤나 마을로 들어오다가 길가에 앉아 있는 창녀에게 동침을 요구하는 장면. 얼굴을 가리고 창녀 복장을 한 여자는 다름 아닌 유다의 맏며느리 다말이다. 그녀는 시아버지인 유다가 자기 마을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변장한 채 유다를 기다렸다. 다말은 유다를 단번에 알아챘지만 유다는 며느리인 줄 몰랐다. 오른쪽 그림은 유다와 다말이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또 다른 작품. 유다가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다말에게 주기로 약속하면서 그 증표로 끈 달린 도장과 지팡이를 다말에게 건네는 장면. Web Gallery of Art 제공





 
현길언 작가


성경의 매력

성경은 기독교 경전이면서 인간과 세계의 실상을 문학적 서사를 통해 형상화한, 하나님의 언어이자 인간의 언어다. 하나님으로서는 인간의 참 모습을 정직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성경은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의 삶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밝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 중 다말의 이야기에서는 사회에 형성된 도덕성보다는 가계 계승의 집념을 관철시키려는 여성 특유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같은 여성의 행위는 사회를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를 배신하는 선택이었다. 동시에 새 역사를 만들어내는 동인(動因)이 됐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깨닫게 만든다.

다말의 행위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육신의 족보에 당당하게 기록됐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난 인간의 행위를 당대의 이념이나 가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맏며느리 다말

야곱은 레아·라헬 자매를 비롯해 자매의 시녀들 사이에서 열두 아들과 외동딸을 얻었다. 그는 자식 복이 많았으나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자식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았던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결국 형제들이 공모해 요셉을 죽이려 했다.

그때 유다가 나섰다. 유다는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이다. 유다는 “요셉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버리자”고 제안한다. 이에 요셉은 죽음을 면하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넘겨진다. 이 사건 이후, 유다는 형제들로부터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살게 된다. 이어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해 아들 엘과 오난, 셀라를 낳는다(창 38장).

맏아들 엘과 결혼한 여자가 다말이다. 그런데 엘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 일찍 죽었다. 유다는 집안의 대를 이어야 했다. 그래서 유다는 당시 풍습에 따라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와 잠자리를 같이해 자식을 얻도록 했다. 오난은 이스라엘 풍습을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난은 형수와 잠자리를 같이했지만 다말이 임신하지 않도록 처신했다. 그러한 오난의 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짓이라 그 또한 죽고 만다.

둘째 아들의 죽음까지 지켜본 유다는 걱정이 컸다. 막내가 있으나 아직 나이가 어려 형수와 잠자리를 할 수 없었다. 유다는 며느리에게 막내가 장성하여 여자를 알게 되면 부르겠다며 며느리를 친정에 가 있도록 했다. 다말은 시아버지의 말을 믿고 친정으로 향했다.

몇 해 지나 유다는 상처(喪妻)의 아픔을 겪는다. 친구인 아둘람 사람 히라는 유다를 딤나로 부른다. 유다는 그곳에서 양털을 깎으며 생활하게 된다.

유다의 무관심, 다말의 계책

다말은 시아버지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가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친구로부터 시아버지가 이곳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다말은 계책을 꾸민다.

유다가 다말이 사는 마을로 들어오는 날 밤, 다말은 창녀 복장으로 위장한 채 남자들의 왕래가 많은 딤나 길 옆 에나임 문에 앉아 있었다. 마침 유다가 다말 앞을 지나가다가 창녀인 줄 알고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제안한다. 다말은 그가 유다임을 단번에 알아챘지만 유다는 그녀가 며느리인 줄 몰랐다. 유다는 이튿날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다말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그 증표로 끈 달린 도장과 지팡이를 다말에게 맡긴 뒤 동침했다.

유다는 다음날 친구를 통해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이끌고 다말을 만났던 곳으로 갔지만 그녀는 없었다. 유다는 증표로 준 물건을 찾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몇 달 뒤, 다말은 임신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다는 며느리를 화형에 처하도록 했다.

다말은 끌려가면서 갖고 있던 끈 달린 도장과 지팡이를 유다에게 보낸다. 그리고 “이 물건의 주인과 잠자리를 같이했다”고 전한다. 유다는 물건의 주인이 자신임을 알고 다말을 집으로 불러들인다. 달이 차서 다말은 쌍둥이 사내아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이후 유다는 며느리와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다말의 파격적인 행위에 탄복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지파는 대가 끊어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가계 계승 집념이 도덕률 무너뜨려

족장 시대에 근친상간은 엄격하게 규제됐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성 관계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다말은 자기 몸에서 난 자식으로 유다 집안을 계승하기 위해 당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탈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집안의 대를 잇겠다는 집념이 도덕률을 무너뜨린 것이다.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행동 양식은 다분히 상대적이다. 유다는 집안의 대를 잇는 문제에 대해 사회 관습과 제도적 틀 안에서만 모색했다. 여기서 유다의 우유부단한 면모가 드러난다. 두 아들이 죽게 되자 자칫 가문이 끊길 수 있는 처지에서 그는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반면 며느리 다말은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책임을 통감했다. 즉 유다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창녀로 변장하면서까지 시아버지와 동침하는, 반윤리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가계 계승에 대한 여성의 집념은 대단하다. 사회적 도덕률을 거스른 선택은 한 집안의 문제를 뛰어 넘었다. 다말의 행동은 관습적 차원에서는 파격이지만 또 다른 역사를 여는 동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의 신비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여성의 존재론적 본성이 역사의 동인(動因)으로

다말의 파격적인 행위는 여성의 존재론적인 본성의 단면을 드러낸다. 더불어 성경이 지닌 새로운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다말은 가계 계승을 며느리의 책임으로 인식한다. 이것은 여성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주목할 부분은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모든 가치를 뛰어넘은 다말의 일탈적 행위가 성경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혹자는 성경을 남성 위주의 세계관 속에서 이해한다. 이는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또한 인류 역사 변화의 주도자임을 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인간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체제 유지에 심혈을 기울이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끝없이 일탈과 파격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열어왔다. 이는 곧 여성의 혁명성이자 인류 역사의 실상이다.

글=현길언 작가,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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