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죽어도 계속되는 이야기… 박경리의 ‘토지’


 
최참판댁이 있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전경. '토지'의 전반부를 이끌었던 무대로 실제 존재했던 곳은 아니다. 하동군이 1990년대에 소설 속 풍경을 재현해 만들었다. 뉴시스
 
평사리 최참판댁. 필자 제공
 
2004년 SBS에서 방송된 드라마 '토지'의 한 장면(위). 원주 토지문화관. 박경리 작가가 98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거주하던 곳으로 작가들의 집필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돼 있다(아래). 필자 제공
 
박경리


일찍이 조선의 기생 황진이는 이렇게 노래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임 오신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임을 향한 애틋한 연심(戀心)이 길고 긴 시간의 허리를 잘라내 간직했다가 임 앞에서 펼치겠다는 참신한 발상을 낳았다. 그런데 이 발상에서 문득 우리는 뜻하지 않게도 소설 장르의 본질 하나를 발견한다. 소설은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다. 인간의 삶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갖은 우여곡절과 흥망성쇠를 겪는다. 소설이란 인간 삶의 면면히 생동하는 그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의 한 토막을 잘라내 펼쳐놓는 장르다. 그리고 황진이의 애틋한 시간이 그러했듯 소설이 잘라내 펼쳐놓는 그 시간은 인간의 의식과 감정과 사유가 투영된 인간적 시간이다.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소설은 그렇게 계속 쓰여질 것이다. 이런 소설의 본질에 대해 한국문학사에서 박경리만큼 자각했던 작가는 따로 없었다. 박경리는 문학으로 현실을 살았던 작가였고 소설을 삶의 본질이라는 차원에서 사유한 작가였다. 그래서 박경리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이란 삶과 생명의 문제이며, 삶이 지속되는 한 추구해야 할 무엇이지요."

그런 박경리에게, “‘토지’는 나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야기”였다. 박경리의 ‘토지’는 삶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이야기이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소설이다. ‘토지’는 1969년 6월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기 시작해 26년간의 집필 끝에 1994년 총5부 16권으로 완간된 대하소설이다. 대하소설로는 이에 앞서 일제강점기 홍명희의 ‘임꺽정’(1928∼39)이 있었으나, 해방 이후로는 ‘토지’가 최초인 셈이다. ‘토지’는 이후 여러 대하소설의 등장을 고무하고 촉발했는데, 김주영의 ‘객주’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명희의 ‘혼불’ 등이 그 사례들이다.

박경리의 ‘토지’는 그처럼 1970∼80년대에 급격히 증가했던 역사대하소설의 선두주자였다. 이 시기에 역사대하소설이 급증했던 것은 까닭이 있다. 이 시기는 긴 세월 축적된 한국근대사의 모순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민중의식의 급격한 성장은 그것을 촉발했고 그와 함께 왜곡되고 은폐된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의 요구와 열망도 생겨났다.

그런 맥락에서 갑오농민전쟁과 항일투쟁 같은 민족운동의 역사와 민중의 생활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요구도 잇따랐다. 특히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분단, 전쟁, 급격한 산업화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 100년의 굴곡을 어느 정도 조망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확보될 수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한 조건이었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표된 역사대하소설은 이러한 요구에 대한 문학적 반응이었다.

그리하여 ‘토지’는 1897년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근 오십 년에 걸친 질곡의 한국근대사와 민중의 삶의 역사를 생생한 문학적 언어로 되살려낸다. 여주인공 서희를 중심으로 구한말 최참판댁의 몰락과 간도로의 이주, 고향인 평사리로의 귀환과 복권의 이야기가 동학혁명, 일제강점, 3·1운동, 광주학생운동, 원산노동자 파업, 만주사변 등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700명이 넘는 인물들이 써나가는 이 방대한 소설은 그 자체로 소설로 쓴 역사이자 민속지(民俗誌)이며 민중생활사라 할 수 있다.

“호열자(콜레라)로 외가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딸 하나가 살아남아 집을 지켰다.” 박경리가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다. 작가는 그 이야기에서 ‘토지’ 창작의 단서를 발견한다. ‘토지’는 어렵게 살아남은 여자가 간난신고 끝에 훼손된 집을 복구하는 소설이다. ‘토지’의 서사에는 수많은 사건과 인물 들이 그려지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인물은 여주인공 ‘서희’다. 서희는 불굴의 의지로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주어진 숙명을 헤쳐 나가는 강인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서희의 캐릭터에는 작가 자신의 정념이 짙게 투영돼 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그린 단편 ‘불신시대’의 주인공 ‘진영’이 그랬듯이, 남편과 자식을 잃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꾸역꾸역 살아가야 한다. 어머니와 딸을 부양해야 하는 작가의 삶 또한 그러했다. 작가는 세상을 불신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었으며 그리하여 암흑 속에 놓인 자기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불의의 세상과 대결하는 생명의 힘에 대한 욕구는 더욱더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희의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서희의 외모와 출중한 능력에 대한 묘사가 ‘토지’ 전편에 걸쳐 과도함으로 넘쳐나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소설 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녀의 미모와 위엄에 감탄하고 기가 죽는다. 그녀를 본 조선인 형사는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에 빠져들고 뱃사공은 “감히 서희 쪽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또 누군가에게 서희는 “빛이었고 우주의 신비”이자 “관음상이요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녀는 남자 못지않은 사업 수완과 지력과 담력, 의협심과 인간미의 소유자이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 달성을 위해 돌진하는 적극성과 추진력까지 갖춘 인물이다. 마치 고전소설의 영웅과도 같은 풍모를 풍기는 서희의 캐릭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카렛 오하라의 한국적 버전이다.

‘토지’는 몰락한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그런 서희의 복수극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인물들이 펼쳐내는 개별 서사들을 엮어 간다. 감정 표현이 극단적이고 쉽게 정념에 사로잡히는, 극단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인물들의 면면이 그 서사의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의 묘사가 더해지면서 서사는 그런 상황에 놓인 인물들 간의 갈등 대립 투쟁 상승 몰락 등을 동력으로 생동감을 얻으며 움직여간다. 이 과정에서 ‘토지’가 그려내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세상 질서의 변화다. 봉건에서 근대로, 엄격한 신분제사회에서 탈신분제사회로, 농업사회에서 상업사회로, 농촌에서 도시로, 조선에서 간도로 확장되는 삶의 변화가 이 소설의 중심에 있다.

‘토지’에서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장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평사리’다. 이 소설에서 평사리로의 귀환은 그 자체로 변하지 않는 어떤 가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의식(儀式)이다. 그 가치란 무엇인가? 평사리로의 귀환은 표면적으로는 남성 중심적 가계(최씨 가문)를 복원하고 계승하는 태도와 연관된 것으로 읽힌다. 서희가 두 아들의 성씨를 그녀와 혼인한 하인 길상의 성인 김씨가 아닌 자신의 성인 최씨를 따르게 하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최씨 가문을 존속시키고 봉건적 가부장제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그리고 ‘토지’에 대한 그간의 많은 비판도 이 지점에 집중된 바 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소설에서 존속시켜야 할 그런 남성 가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붕괴돼버렸다. 그리고 서희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서희는 생각했다. 최참판댁 가문의 말로는 세 사람의 여자로 인하여 난도질을 당한 것이라고. 윤씨는 불의의 자식을 낳았고, 별당아씨는 시동생과 간통하여 달아났으며 서희 자신은 하인과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서희의 조모인 윤씨 부인은 강간당해서 혼외자식을 낳았고 모친인 별당아씨는 시동생뻘 되는 김환과 야반도주하였으며 서희 자신은 하인인 길상과 혼인했다. 최씨 가문의 정통성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허구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서희에게 가문의 존속이란 가부장제적 질서의 수호라기보다는 근원적 질서, 즉 생명의 원리를 지키는 것에 가깝다. 변하지 않는 생명의 원천으로서 ‘토지’로의 귀환인 셈이다. 따라서 평사리로의 귀환은 가부장적 가문의 복원이 아니라 유장한 생명의 근원으로의 귀환이다. 평사리는 언제나 그곳에 있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삶의 근원이다.

‘토지’의 저변을 흐르는 주제는 이 평사리라는 공간에 집약돼 있다. 평사리는 여성적인 공간이다. 서희가 마지막에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어려운 마을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대모신(大母神)으로 변모하는 것도 평사리라는 공간이 그러한 여성적 보살핌과 베풂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평사리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여성적 돌봄과 치유의 공간이며 삶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본원적인 생명의 공간이다. ‘토지’는 남성적 폭력(일제 앞잡이 조준구)에 의해 훼손되고 빼앗긴 그 본원적인 생명의 공간을 서희라는 강인한 여성의 투쟁을 통해 회복하는 이야기다. ‘토지’를 생명을 위한 여성적 투쟁의 서사극이라 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 박경리는… 근현대사 속 민중의 삶 총체적으로 담아

작가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계산'으로 등단했다. 등단 직후에는 '불신시대' '암흑시대' '영주와 고양이' 등의 단편소설을 썼는데, 그 중 '불신시대'로 58년 제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박경리의 초기 단편소설은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전쟁이 끝난 직후에 아들을 잃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전후의 훼손된 사회 현실을 전쟁미망인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담고 있다.

이후에는 김약국의 딸들(1962),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4)을 비롯해 성녀와 마녀, 가을에 온 여인, 나비와 엉겅퀴 등 20여 편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썼다.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하소설 '토지'는 69년에 집필을 시작해서 94년에야 완성된다. '토지'는 만 25년이라는 집필시간만큼이나 다양한 지면(현대문학(1부), 문학사상(2부), 주부생활(3부), 정경문화, 월간경향(4부), 문화일보(5부))에 연재됐다. 1부를 연재하던 중에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는 등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소설을 쓸 정도로 작가는 '토지' 집필에 전념했다.

'토지'는 동학 직후부터 해방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면서 한국문학의 기념비가 되었다. '토지'는 이미 연재 초기부터 추리소설적 구성과 개성 있는 인물, 빼어난 언어감각으로 평론가의 호평과 독자의 인기를 얻었다. '토지'는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79년과 84년에는 KBS, 2004년에는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기도 했으며, 청소년 소설과 만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2003년에 '토지' 이후를 다룬 '나비야 청산(靑山)가자' 연재를 시작했지만 끝맺지는 못했다. 2008년 폐암과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98년 강원도 원주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학관을 세워 현재까지 작가들의 집필실로 개방하고 있다. 토지문화재단은 2011년 한국 최초로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을 제정해서 1회 수상자인 최인훈을 시작으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메릴린 로빈슨(미국),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응구기 와 티옹오(케냐) 등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심진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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