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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중심가에 아라리오갤러리 개관한 김창일 회장 “상하이를 발판삼아 뉴욕으로 재진출할 것”

김창일 회장이 오는 10월 15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리는 아홉 번째 개인전 ‘논-논다놀아’에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제공


“아시아(중국)를 접수하고 다시 미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10년 전 임대료가 너무 비싸 뉴욕에서 눈물을 머금고 철수한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다시 갈 땐 건물을 통째로 사거나 지어서 갈 겁니다.”

‘씨킴(CI Kim)’이라는 이름의 예술가.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미술갑부’ 김창일(66) 아라리오갤러리 회장이 또다시 큰 꿈을 꾸면서 정면승부를 내걸었다. 중국 상하이를 발판삼아 뉴욕으로 다시 진출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는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신디 셔먼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3700여점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갖추고 있는 큰손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미술전문 매체 ‘아트넷’이 선정한 100대 컬렉터에 선정됐다.

김 회장은 2005년 베이징 지우창에 갤러리를 열 때 “앞으로 상하이가 아시아 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를 것”이라며 “베이징을 교두보로 삼아 미래 아시아 미술시장을 이끌어가겠다”고 공언해 주목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러 김 회장은 중국에서 외국 작가 전시를 여는 큰손으로 인정받고 있다. 1일에는 상하이 웨스트번드 구역에 1000㎡(300평) 규모의 대형 갤러리를 오픈했다. 성샨가에 아라리오갤러리를 개관한 후 3년 만에 대대적인 확장이다. 최근 한·중 관계 악화로 한국 화랑이 모두 철수한 것과는 다른 이례적인 행보다.

아라리오갤러리상하이 개관전 ‘아시아의 목소리(VOA)’에는 회화와 설치 및 영상 등 42점이 나왔다. 한형구를 비롯한 한국 작가 5명, 미야오샤오춘 등 중국 작가 9명 등 아라리오갤러리와 함께하는 아시아 22명의 작가들이 총출동했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다.

“상하이 웨스트번드는 2008년부터 상하이시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문화특구입니다. 황푸강을 따라 약 11㎞에 이르는 지역에 2019년까지 유럽과 북미 등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여기에 아라리오가 한국에선 처음으로 깃발을 꽂은 것이지요.”

국내 최초로 전속작가제를 도입한 김 회장은 한국 25명, 중국 12명의 전속작가를 두고 있다. 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미래’는 바로 전속작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전속작가를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앞으로 갤러리의 생존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잘 살아남아야 세계시장으로 갈 수 있는 법이거든요.”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의 고향은 서울 남산자락이다. 그가 충남 천안사람이 된 것은 모친 때문이다. 1978년 어머니가 운영하던 천안 버스터미널을 발판으로 승승장구해 30세 안팎쯤 (자민련 비례대표 영입 제안으로) 정계에 입문할 기회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 정치판에 나가면 이혼한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면(正面).’ 김 회장의 아호다. 그는 정면 돌파의 승부사다. 그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다. 유달리 배포가 컸던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했다. 이북 출신 부모 덕분에 경제관념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배웠다. 최근 간담회에서 김 회장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성공 비결은 무지개를 좇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부모님은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데는 아까워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자식에게는 아주 엄했습니다. 남에게 베풀 때는 절대 쩨쩨하게 굴지 말라고 했어요. 뜬구름 잡지 말고 무지개를 그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하.”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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