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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작가 “성경공부 시작하면서 내 문학은 조화를 찾았죠”

소설가 정연희 작가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음식점에서 열린 ‘바람의 날개’ 출판기념회에서 문단 60년을 돌아보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화진’ ‘순교자 주기철’ 등으로 크리스천들에게 영적인 깨달음을 전해 온 소설가 정연희(81·그루터기교회 권사) 작가가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았다. 스물이 갓 넘은 대학교 3학년 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한 차례의 공백도 없이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롭다. 올해도 3권의 책이 출간된다. 2010년 이후 발표된 9편의 작품을 묶은 ‘바람의 날개’를 최근 출간했고, 환경생태 수필집 ‘천사의 바구니’와 장편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재출간)가 출간될 예정이다.

최근 ‘바람의 날개’ 출판기념회에서 만난 정 작가는 지난 60년의 세월을 ‘목숨의 무늬’라고 표현했다. “글을 쓰는 일은 내 목숨의 무늬였습니다. 더 없이 아프고 어리석었던 한 목숨의 무늬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광맥을 찾는 작업은 내 목숨 같은 것이었습니다.”

정 작가는 자신을 키운 것은 고통이란 이름의 양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통의 동아줄’은 짐승의 우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준 ‘은총의 동아줄’이었으며 하늘로 이어진 ‘은혜의 탯줄’이었음을 전 인생을 통해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1975년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하용조 목사와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며 이전에 갖지 못했던 문학의 조화를 찾았다고 말했다.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영원함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내 소설의 재료였지요. 그러나 ‘영혼의 씨눈’이 벗겨지자 내 죄가 보였고 생명의 존귀함이 보였고 창조의 아름다움이 보였으며 이웃이 보였어요. 신앙을 가진 후 나만이 볼 수 있는 세계가 열렸습니다.”

‘영혼의 씨눈’이 떨어진 후 그가 쓴 작품들은 절절한 신앙고백이었다. 평론가들은 작가의 80년대를 주목한다. 이 시기 정 작가는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뤘다.

6·25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병든 포로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실존인물 맹의순의 이야기를 담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83년)가 시작이었다. 이후 선교 100주년을 맞아 선교사들이 만리타국에서 가지고 온 사랑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양화진’(84), 물질숭배와 도시화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난지도’(85), 복음의 그루터기로 남은 순교자의 삶을 조명한 ‘순교자 주기철’(97) 등을 발표했다. ‘난지도’는 72쇄,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100쇄를 찍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기도는 작가의 신앙고백이었다. ‘양화진’에 수록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은 작가의 신앙고백이었다.

작가는 글이 밥이 되기도 했고, 지금도 더러 인세가 나오지만 그것은 돈이 아니라 신성한 무엇 같아서 함부로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종이책을 죽이고 소설과 서사를 죽인다는 절망적인 신음이 곳곳에 들리지만 인간의 유전자에 뿌리내린 서사는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자매체 위의 가상현실에 질릴 때가 곧 닥칠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고향을 찾듯 종이책을 찾게 될 것입니다.”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요즘 이런 기도를 한다. “당신께서 보실 때에 미소 지으실 사랑의 신비와 기적을 증언하는 책 한권, 하늘나라 타임캡슐에 등재될 책 한 권이 쓰일 때까지 이 작업을 이어가게 하소서.”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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