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가계계승 욕망과 질투… 상반된 본성이 만든 역사의 변곡점

임신하지 못한 사라(오른쪽)가 남편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 자식을 잇게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National Gallery of Art·Web Gallery of Art 제공
 
사라와 하갈의 갈등 끝에 아브라함이 하갈 모자를 집에서 내쫓는 장면. 하갈의 품에서 울고 있는 이스마엘과 아브라함의 왼편에 서 있는 사라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National Gallery of Art·Web Gallery of Art 제공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쫓겨난 하갈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 천사를 만나 앞날에 대해 계시를 받는 모습. 오른편엔 기진맥진해 쓰러진 아들 이스마엘, 왼편엔 텅 빈 물통이 보인다. National Gallery of Art·Web Gallery of Art 제공
 
현길언 작가


성경의 여성들은 특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성의 전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그의 첩 하갈에 얽힌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가계 계승을 위한 사라의 집념과 하갈을 향한 질투를 통해 전혀 다른 여성성의 두 측면을 만나게 된다. 또한 사라의 몸종인 하갈도 아브라함의 자식을 낳게 되자 사라를 동등한 사랑의 경쟁자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또 다른 여성성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 인간의 논리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터 잡고 살 형편이 못 되어 여러 곳을 전전해야 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의 광야 생활이 시작됐다.

아브라함은 자손을 번성케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 이들 부부는 그 약속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폐경이 된 아내 사라의 처지를 감안할 때, 정상적으로 자식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상속자는 집안의 종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창 15:2).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15:4)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사라는 남편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 상속자가 된다면, 자기 몸종인 젊은 여자 하갈을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하게 해 자식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제안과 함께 하갈을 받아들였다(창 16:1∼2).

가계 계승을 위한 어머니의 집념

하지만 이것도 어려운 결단이었다. 사라의 계획대로 하갈은 이스마엘을 임신하게 된다. 집안의 대를 잇는 아들을 품게 되었으니 사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자식을 임신한 하갈은 신분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사라의 몸종이 아니라 아브라함 집안의 대를 잇는 자식을 낳게 될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라는 자기 몸종 하갈로부터 수모를 당한다. 동시에 사라는 남편의 사랑을 차지한 여자를 향해 질투를 숨기지 않는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허락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아브라함 부부는 이러한 초월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의 생각 수준으로 이해했지만 결국 사라에게 이삭을 낳게 해주셨다. 이렇게 되자 사라의 처지도 달라지면서 두 여자의 갈등은 심해졌다. 사라는 교만한 하갈을 몸종이 아닌 여자로서 질투한다. 종이 아들을 낳았다고, 부인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는 그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두 여자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한다. 이삭이 이스마엘과 함께 지내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사라는 하갈 모자(母子)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아브라함에게 이들 모자를 집안에서 쫓아내자고 제안한다.

아브라함은 그 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아들까지 낳았는데, 하갈 모자를 쫓아낸다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삭을 낳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스마엘로 대를 이으려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던가. 그는 사라에게 이삭이 상속자가 될 것은 당연하니 좀 양보하라고 했다. 당신이 하갈을 내 침상으로 들여보낸 거 아니냐고 설득했다. 그러나 사라의 고집은 완강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질투를 당해낼 수 없었다.

한 남자의 아내, 여자의 질투

아브라함은 물 한 병과 빵 몇 조각을 주고 하갈 모자를 광야로 내쫓았다. 얼마나 몰인정한 처사인가. 재산도 많고 종도 많이 거느리고 살았으니, 모자가 한평생 먹고 살 재산과 더불어 당장 그들의 신변을 지켜줄 종들 정도는 딸려 보내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몰인정은 전적으로 사라의 비정과 질투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인류 최초의 공처가이자 삼각관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 할 만하다. 아담도 그렇거니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여자 앞에선 무력한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두 여자 관계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떠올려볼 수 있다. 사라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현숙한 아내라기보다는 여성의 전형을 드러낸다. 그녀는 집안의 대를 잇겠다는 가계 계승의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여자의 첫째 의무는 자식을 낳아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이다.

사라는 여성으로서의 질투를 잠시 유보하고 몸종을 남편에게 허락했다. 여자로서는 어려운 결단이었으나 가계 계승을 위해선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계 계승의 욕망은 여성성의 핵심이다.

질투하는 여성의 전형도 사라와 하갈을 통해 드러난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뒤, 하나님은 약속대로 사라에게도 태의 문을 열어 이삭을 허락해주셨다. 사라로서는 하늘을 얻은 것처럼 기쁜 일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성경은 그러나 그런 내용보다는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선 사라는 몸종 하갈의 오만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제안해서 남편의 침상에 들게 했고, 자신의 소원대로 상속자가 될 사내를 낳게 했다. 사라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의도대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사라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하갈의 돌변한 태도였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자식을 임신했을 때부터 사라를 깔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식을 못 낳는 여자에 대한 우월감이었다. 자식을 낳지 못하면 어머니가 될 수 없다.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이면서 자식의 어머니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갈은 사라 앞에서 당당했던 것이다.

어머니이자 아내의 본성, 역사의 변곡점으로

이러한 하갈을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사라는 하갈을 학대했다. 집안의 대를 이으려고 남편과 동침토록 할 정도로 가계 계승의 의지를 지닌 여자의 본성도 자기를 깔보는 첩의 오만함 앞에서는 유지될 수 없었다.

사라의 질투로 이스마엘을 임신한 하갈은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창 16:6). 광야를 방황하다 브엘라해로이 샘가에서 천사를 만난다. 그곳에서 하갈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약속을 받는다. 장차 낳게 될 아들의 이름을 얻고 그 아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돌아가 여주인(사라)에게 복종하며 살라”고 전한다. 하갈은 주의 천사로부터 받은 약속을 생각하며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창 16:13).

하갈은 주의 천사의 권유대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다. 뒤이어 사라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삭을 낳게 된다. 이후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사라는 자기 몸종이 낳은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어울려 형과 동생으로 지내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더구나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 이삭과 같이 아브라함의 재산을 나누어 갖게 될 것이니 모종의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 모자를 쫓아내도록 요구한다. 아브라함도 아내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사라는 어머니로서 가계를 계승하려는 욕구와 함께 ‘사랑의 경쟁자’로서 여성이 갖는 본능적인 질투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사라에 대한 하갈의 태도 변화, 즉 아브라함의 아들을 임신하면서 드러나는 신분 변화의 욕구 또한 여자의 본성을 드러낸다. 아브라함을 둘러싼 사라와 하갈의 태도와 선택은 결국 새로운 역사를 이뤄내는 계기가 됐다.

글=현길언 작가
계간 ‘본질과 현상’ 발행·편집인
서울 충신교회 은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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