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저 별이 내 가슴에







1980년대는 불의 시대였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총칼로 권력을 잡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고 정권의 폭압적인 통치도 극으로 치달았다. 그러던 중 83년 하반기에 이르러 끊임없는 저항과 자체의 한계에 부딪힌 강압 통치를 잠시 완화하는 유화 국면이 펼쳐진다. 학원자율화 조치에 잇따른 공안사건 구속자 석방, 제적 학생과 해직 교수의 복교, 학원에 상주하던 사복경찰 철수 등의 조치가 이때 이어진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재야 민주화운동은 이 유화 공간 속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이 불타는 시대의 열기를 문학의 이름으로 짊어졌던 소설이다.

‘태백산맥’은 83년 9월부터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고 86년 제1부 ‘한의 모닥불’ 전3권이 나온 후 89년 전10권으로 완간됐다. 이 소설의 집필과 출간은 서슬 퍼런 폭압이 극에 이르던 83년에서 87년 6월 항쟁을 거쳐 한 시절의 막바지로 치달았던 89년에 이르기까지 80년대 전 시대에 걸쳐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48년부터 53년까지 민중해방투쟁의 전모를 조명한 이 소설은 그럼으로써 동시대에 펼쳐지던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당위를 소설의 언어로 정당화하고 떠받쳤다. 거꾸로 80년대 중후반의 격렬한 정세 변화와 민주화운동의 진전은 소설의 전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며 소설을 끝까지 밀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은 80년대가 쓴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태백산맥’은 그렇게 80년대 최대의 문제작이 됐다.

조정래는 이 소설에서 해방 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 폭발했던 한국사회의 계급적·민족적 모순의 근원과 그에 저항하는 민중과 지식인의 비장한 투쟁의 역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48년 10월 ‘여순사건’이 진압된 시점에서 시작해 53년 한국전쟁이 끝나기까지 전남 벌교 일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6년 간의 사건이 골격이다. 여순사건 직후 더욱 격렬해진 좌우의 극한 대립, 그 과정에서 빨갱이로 몰려 박해받고 학살된 무고한 민중들의 비극, 농지개혁을 둘러싼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과 충돌, 그것이 기폭제가 된 빨치산 투쟁과 잇따른 한국전쟁의 실상, 전후 지리산에 남겨져 토벌대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 빨치산의 운명이 그 속에서 펼쳐진다. 큰 축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친일세력과 결탁한 이승만정권과 그 비호를 받는 지주 및 우익세력에 맞서 일어난 소작농과 양심적 지식인의 투쟁이다. 여순사건과 소작농의 봉기, 빨치산 투쟁,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유혈의 역사는 그 축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되고 재해석된다. 작가는 민족사의 모순을 돌파하기 위해 싸웠던 민중과 지식인들의 좌절과 분노, 절박한 바람과 불굴의 의지를 그 안에 새겨 넣었다.

86년 ‘태백산맥’의 제1부가 세 권으로 처음 묶여 나왔을 때, 문학 독자는 물론이고 한국 지식계 전체가 뜨겁게 반응했다. 그중에서도 운동권을 포함한 대학생들의 열광은 특별했다. 몇 년에 걸쳐 다음 권을 손꼽아 기다리며 혹시나 나왔을까 매일 대학 앞 서점을 들락거리던 (지금으로선 낯선)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나의 ‘현상’이라 이를 만한 그런 열광은 ‘태백산맥’이 오랜 반공이데올로기의 지배가 만든 금기의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었던 데서 비롯됐다. 그것은 금지된 드라마였다. 해방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기간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역사서술이 아직 국가보안법과 정치적 통제로 제약받던 시절이었다. 일명 ‘자구발’(‘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발전’) 등과 함께 대학 신입생의 의식화 서적 목록 제1호 중 하나였던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 정도가 그 공백을 메워주고 있었다. ‘태백산맥’은 그 오랜 금기의 영역을 파고 들어가 분단과 전쟁을 거쳐 형성된 대한민국 정부의 기원과 그 이면의 숨겨진 역사를 조명하고 있었다. ‘태백산맥’은 그렇게 금지된 역사를 문학의 언어로 써나갔다.

더욱이 이 소설은 해당 시기 역사서술의 공백을 메우는 데서 더 나아가 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고 급진적인 역사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에 따르면 여순사건은 좌익 군인의 돌연하고 일회적인 반란 사건이 아니라 지주의 착취와 폭압에 맞서 봉기했던 동학농민전쟁에서 시작해 미군정 하의 소작투쟁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농민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 전쟁의 원인은 단순한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외세의 개입이 아니다. 그것은 48년 여순사건의 여진이 이어져 발발한 것이며 그 이면엔 농지개혁을 둘러싸고 폭발한 기층민중의 절박한 삶의 요구와 억눌린 분노가 있었다. 실제로 소설에선 여순사건이 끝나자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 다름 아닌 여순사건이라 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작가는 좌우익과 중도 지식인, 소작농과 지주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의 이력과 행로를 거미줄처럼 엮어가며 이런 새로운 역사 해석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놓는다. 흡입력 있는 전개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 염상진 염상구 김범우 하대치 외서댁 등을 비롯한 여러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생생한 형상화가 이 새로운 혁명서사의 극적 효과를 더욱 증폭한다.

‘태백산맥’은 문학의 언어로써 금지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사례였다. 그것은 빨치산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때까지 역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문학과 영화에서 빨치산은 하나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무도한 ‘빨갱이’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그렇게 오랜 동안 빨치산의 이미지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됐다. 오래 전 빨치산 부대의 잔혹한 만행을 그린 반공영화 ‘피아골’(1955)이 일부 빨치산을 (조금)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던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빨치산에 대한 그마나 조금 진전된 묘사는 남과 북 양쪽 모두에 의해 배신당하고 버려져 상처받은 채 죽어가는 이미지였으나 그 또한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회피의 산물이긴 마찬가지였다. ‘태백산맥’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1985)과 이태의 ‘남부군’(1988)이 그러했다.

‘태백산맥’의 빨치산은 반공이데올로기의 금기에 의해 덧씌워진 저 상투형들을 훌쩍 넘어선다. 염상진이 그 비약을 대표한다. 염상진은 일제강점기부터 적색농민운동을 조직하고 해방 후 조선남로당 보성군당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여순사건이 진압되자 퇴각해 일시 점령한 율어 해방구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등 부단한 혁명 과업의 완수를 향해 치달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인민군이 퇴각한 뒤 남쪽에 고립돼 지리산에서 빨치산 투쟁을 이어가다 토벌대의 추적에 쫓기자 부대원들과 함께 장렬하게 폭사한다. 작가는 죽음을 앞두고도 스스로 한 줌의 회의도 허락지 않는 혁명에 대한 그의 불굴의 신념과 강인한 열정을 부각하며 그에게 소설 전체의 파토스를 떠받치는 역할을 부여한다. 작가는 그를 통해 빨치산을 주체로 한 새로운 서사의 모델을 창조한다.

염상진이 죽고 모든 것이 끝난 후 그를 따르던 소작 빈농 출신 빨치산 하대치는 어둠 속에 타오르는 봉화의 불빛 속에서 죽어간 동지들의 함성을 듣는다. 그는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끝없는 투쟁을 다짐한다.

그는 멀고 깊은 어둠 저편에서 명멸하고 있는 무수하게 많은 별들을 우러러보았다. 가을 별들이라서 그 초롱초롱함과 맑은 반짝거림이 유난스러웠다. 그 살아서 숨쉬고 있는 별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별들이 모두 대원들의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별이 되어 어둠 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봉화가 타오르고, 함성이 울리고 있는 가슴에다 그 별들을 옮겨 심고 있었다.

그는 빛나는 별들을 가슴 속에 옮겨 심고 있었다. 그보다 오래 전 헝가리의 문예비평가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1916)의 첫 대목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창공에 빛나는 별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러나 하대치는 치명적인 패배에도 불구하고 탄식하지 않았다. 저 별빛은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쟁을 다짐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 하대치의 뜨거운 가슴 속에 옮겨와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한때 가야할 길을 비추며 하대치의 가슴에서 빛나던 저 혁명의 별빛은 결국 90년대 초반 현실사회주의 몰락으로 흔적도 없이 스러져갔다. ‘태백산맥’은 80년대 문학의 열정이 피워 올린 혁명적 서정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미래의 전망은 어느덧 차가운 환멸로 돌변했다. 그렇게 80년대는 저물었다.

조정래는 민족·민중 역사에 관심 많은 대한민국 대표 작가

작가 조정래(74)는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과 ‘선생님 기행’이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그는 83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전까지는 주로 사회비판적 시각에서 산업사회의 비정함, 반미의식, 연좌제 문제 등과 같이 왜곡된 민족사와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개인에 관한 단편소설을 썼다. 그리고 83년에 출판된 연작장편소설 ‘불놀이’는 분단을 겪는 인물들의 고단한 삶을 다루기도 했다. 83년 연재를 시작한 ‘태백산맥’은 86년에 제1부 ‘한의 모닥불’ 세 권이 출간되었는데 문단과 독서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89년에 4부를 끝으로 원고지 1만5700매로 완성된 ‘태백산맥’은 ‘작가정신의 승리’라고 불리며 분단문학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당시 300만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94년 8개의 반공단체로부터 500개가 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경찰에 끌려가 수사를 받다가 결국 사건은 검찰로 넘어간다. 2005년 ‘태백산맥’은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이후 작가는 일제 식민통치로 고통 받았던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다룬 ‘아리랑’, 59년부터 80년까지 20년 동안의 현대한국사를 다룬 ‘한강’을 집필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거듭난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20세기 한국 현대사 3부작’을 완성한다. 20년에 걸쳐 집필된 이 세 편의 대하소설은 1300만부 판매라는 한국 출판사상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다.

최근 중국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정글만리’와 우리 사회 교육의 문제를 소설화한 ‘풀꽃도 꽃이다’로 한국의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뜨거운 애정을 보여주었다.

<김영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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