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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봉사를 위한 봉사는 하지 마세요”



최경숙(68·분당 할렐루야교회) 안양 샘여성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매주 국내 의료봉사, 매달 해외 의료봉사를 떠난다. 한센환우, 탈북여성, 외국인 노동자, 쪽방촌 노숙인 그리고 부룬디 케냐 소말리아 아이티 중국 인도 필리핀 네팔 등지의 해외빈민에 이르기까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곳을 다니며 봉사하고 있다. 40년 넘도록 변함없이 해온 일이다.

‘의료봉사의 대모’로 불리는 그는 의료봉사 시작 전 봉사단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여러분 봉사를 위한 봉사는 하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분들의 생일을 만들어 줍시다. ‘오늘 하루는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구나’라고 여길 수 있도록 그런 의료봉사를 해주십시오.”

현재 NGO 굿피플의사회 회장, 고려대학교 의료봉사단장, 한국여의사회 의료봉사단장 등을 맡고 있다. 수시로 의료봉사팀을 이끌고 봉사현장으로 떠나지만 자신은 의료팀을 꾸리고 필요한 장비와 약품을 준비하는 조력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봉사를 통해 누리는 기쁨이 크다고 했다.

“봉사를 통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의사로서 최대의 기쁨이죠. 제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어요. 봉사는 제게 큰 축복입니다.”

그가 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은 1975년 고려의대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 주말 의료봉사를 다녀온 게 계기였다. 이때부터 도시빈민 저소득층 밀집지역 의료봉사를 시작해 가난과 병마가 있는 곳이라면 국내는 물론 해외재난지역, 슬럼가 등을 찾아 인술과 사랑을 베푸는 삶을 이어왔다.

그녀가 더욱 헌신된 길을 걷게 된 것은 질병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후부터였다. 1999년 여름,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2기 말이었고 상당부분 전이된 상태였다. 한쪽 유방과 함께 자궁과 난소까지 적출해야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만일 제가 새 생명을 얻게 된다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서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6개월간의 항암치료도 견뎌내 정상 판정을 받았다. 삶의 이유와 목표가 달라졌다. 가족과 생명의 소중함, 봉사의 즐거움,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요즘 그의 마음은 아프리카의 최빈국 부룬디를 향해 있다. 지난해 평소 가까이 지내는 신응남 선교사로부터 부룬디 무제(한센환우 마을)에 선교센터를 세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의료팀을 꾸리자’였다. 지난해 9월 의료팀을 이끌고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에서 자동차로 5시간거리에 있는 무제 마을로 갔다. 그곳은 ‘의료선교의 땅끝’이었다.

“진료 첫날 환자 1000여명이 몰려왔어요. 태어나서 의사를 처음 봤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진료를 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던 그들에게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밤이 깊어져도 진료는 계속 됩니다’라고 말했을 때 환호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는 의료봉사자들과 함께 한센, 에이즈, 말라리아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하나님 지금 도대체 어디 계신건가요?’라고 절규했다. 그리고 메마르고 가난한 땅 부룬디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심어지길 기도했다.

“우리들이 가진 작은 달란트(의술)를 오병이어로 바치니 주님은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어요. 그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어요. 주님이 저에게 ‘아프리카의 심장 부룬디를 예수의 심장으로 뛰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듯했어요.”

그는 부룬디에 다녀온 후 아무일 없는 듯 사는 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예배드리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4차례 부룬디 한센환우 마을에 의료봉사를 다녀왔어요. 제 남편 최병한(68·내과의사)씨도 사역에 합류했어요. 남편은 오는 7월 부룬디에 먼저 가고 저는 이번 추석연휴 때 의료봉사팀을 꾸려서 들어갈 예정입니다.”

사실 그가 한센인 선교를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다. 93년부터 한센병 환우 수용시설인 소록도와 한센장애인 재활치료시설인 여수 애양원을 정기적으로 찾아 환자들을 치료해왔다. 2001년부터는 자선음악회를 기획해 모은 기금으로 국내 환자는 물론, 동남아 한센병 환우 의료봉사사업을 다섯 차례나 전개해 국경을 초월한 인도주의를 실천해왔다. 이제 그의 한센인 사역은 부룬디로 향했다.

그는 의료봉사가 ‘봉사나 헌신’이라 불리는 것을 어색해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안하면 병이 날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봉사나 헌신’이라고 하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요.”

진료실 책상서랍엔 중국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된 전도지가 들어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전도지를 전한다. 책꽂이엔 손으로 쓴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팻말이 놓여있다. 그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제게 달라고 기도합니다. 제 자신의 계획은 없어요. 주님이 ‘경숙아 가자. 그리고 보자. 열방에 있는 내 백성을 보렴’이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의료선교 계획을 세워요.”

안양=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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