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대표 가게를 찾아서] 가난이 싫어, 평생직장 위해… 소상공인 시대 여는 사람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흥스마트허브(시화국가산업단지) 내 심장부에 위치한 시화공구(유통)상가. 1997년 2월 처음 상가분양을 시작했으나 그해 10월 불어 닥친 IMF 경제 위기의 파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거대 재벌까지 무너지는 와중에 상가에 투자할 이들은 거의 없었고 상가분양은 지지부진했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인 지난 2004년 4월에야 분양이 완료됐다. 101블록(공단1대로 244)과 401블록(공단1대로 204)의 두 지역, 3층 건물 40개동·지원상가 2개동·창고동 2개동 총 44개동에 걸쳐 연면적 18만6533㎡ 공간에 총 3000여개의 공구·동력·철재상가가 형성돼 있다.

이곳에는 ‘부자가 되겠다’거나 ‘나의 기술로 평생직장을 갖겠다’ 혹은 ‘자랑스럽게 가업을 잇겠다’ 등의 수많은 사연을 지닌 소상공인 3000여명이 꿈을 키워가고 있다. 기껏해야 서너 명의 직원들 데리고 ‘소상공인시대’를 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된 고객은 시흥스마트허브에 입주해 있는 1만1800개 업체(종사자 12만5000명)다. 이들 업체에 산업기자재용품 및 가내수공업(철강·유통 포함) 제품을 제공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며 16살 때 시골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용접 관련 업체에서 일했던 김선교(58) 세진E&G 대표는 용접, 특히 특수용접인 알곤용접의 달인이다. 그는 40여년이 넘게 일하는 동안 알곤용접은 물론 알미늄·동판·신주·철·금형·제관용접 등 용접이라는 용접은 다 섭렵했다. 그래서 그의 사업장에 대해 거래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용접에 관한한 어떠한 것도 여기에 가면 해결된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용접에다 정밀판금과 지그·경판탱크 제작 등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지난해 매출은 5억5000만원을 달성했다. 직원 1명과 둘이 만든 매출 실적이다. 15일 작업장을 찾았을 때도 김 대표는 용접에 여념이 없었다. 고(故)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을 존경한다는 그는 “예전에 ‘하루 4∼5시간 이상 자는 것도 수치다’라는 박 회장의 말에 감명 받아 5시간 이상 자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지금도 새벽 1시까지 일하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IMF 당시 국내 3대 용접 회사 중 한 곳에서 부장으로 일하면서 4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기 위해 과감히 직장을 그만뒀다. 자신의 업체를 만들어 상가에 들어온 초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현장 바닥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현재 200여개 업체와 거래하고 있는데 신뢰와 기술력이 지속적인 거래의 원동력”이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기술력’과 ‘신뢰’로 승부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30대 초반 중견기업에서 근무했던 것은 홍태현(50) 신아E&G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홍 대표는 “하지만 40대 이후에도 회사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불안했다”며 “평생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뒤 사업을 준비했다”고 소상공인이 된 배경을 밝혔다.

이후 홍 대표는 기술을 배우는 동안 전 회사에서 받던 급여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일했다. 3명이 근무하는 작은 기업에 들어가 2∼3년 동안 밤에는 대학에 다니고 낮에는 산업기계제작·기계부품가공·밀링·선반 등의 기술을 배웠다. 그는 “당시 아내가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 대표는 2001년 무일푼으로 창업했다. 기본적인 기계조차 남에게 빌려서 시작했다. 사업 초기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연매출 3억원이 넘는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마련했다.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사업장에서 업체 담당자와 협의 등을 맡고 있다는 홍 대표의 아내 김영미(50)씨는 “두 아들 성일(22·군복무)과 성진(20·대학1학년)도 고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일터에 나와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다”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경영학과 기계학을 전공한 아들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하는 부부의 얼굴에선 보람과 자부심이 엿보였다.

홍 대표는 “그냥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게 아니다”라며 “두 아들은 공부와 경험을 충분히 쌓도록 하고, 나는 사업장을 경쟁력 있게 업그레이드해서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부기업이 형제기업으로 바뀌는 셈이다.

홍 대표는 취재를 끝낸 후 사업장을 나서려는 기자를 향해 못내 아쉬운 듯 한마디를 던졌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겠느냐?”며 말문을 연 그는 “청년들이 소기업에 관심을 가지면 대한민국이 아주 잘 살 수 있다”고 역설했다. 홍 대표는 “당장 눈앞의 돈을 쫓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고 기술을 배웠으면 한다”고 청년층에 조언했다. 그는 또 “정부가 소상공인을 위해 좀 더 신경 쓰고 정책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경(54) 시화공구상가협동조합 상무이사는 “각종 규제가 완화되면서 상가 주변에 아파트형공장 등 유통·판매시설이 계속 입주해 시화공구 및 유통시설의 입주 소상공인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과잉공급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일수 상가 이사장 “관리비 절감 등 통한 조합원들의 실리에 힘쓰고 희망주는 일터만들기 최선”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갑니다. 조합원과 소통하며 오래 가겠습니다.”

1970년대 후반 직류전동기와 인연을 맺어 40여년을 기계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서일수(68) 시화공구상가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몇 년 전 60대 초반에 대학에 입학했다. 현장에서는 자타 인정 베테랑이지만 새로운 지혜를 갈구하는 용기가 이끈 길이었다. 그가 대학과정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소통을 통한 함께 잘사는 법’이라고 했다.

서 이사장은 15일 “조합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에서는 최고지만 거래업체·조합원의 원활한 소통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소통이 활발해지면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공구상가 전체가 즐겁고 활기차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상공인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통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조합원의 회의 사무실에 빔 프로젝터(beam projecter)를 설치한 것도 사무실에서 언제든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소통 외 세무 관련 업무, 미래사회 적응 프로그램 등의 교육도 구체화하고 있다. 또 조합에 환경·시설·홍보·총무분과 등을 두고 분과 위원장과 분원들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정책에 반영키로 했다.

서 이사장은 “조합은 본질적으로 시흥스마트허브 유통지원시설인 만큼 공단이 활성화돼야 우리도 일거리가 많아진다”며 “불황 시기에는 관리비 절감 등을 통해 조합원들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업무추진비를 대폭 삭감한 이유다. 아울러 그는 “조합은 회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만큼 노후화된 건물 보강·무차별적인 무허가 단속 재고·하천변 주차장 시설 구축 등을 정부와 지자체에 적극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이사장은 “이사장 이전에 나도 공구상가의 일원”이라며 “내가 일하는 일터가 좀 더 나아지도록 하는데 시간을 쪼개 봉사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인 만큼 조합발전을 위해 모두 힘을 합치자”라며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시흥=글·사진 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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