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6인 6색 ‘뱅커 열전’



은행은 돈을 맡아주고 맡아준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줘 그 이자 차액으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은행의 역할과 수익모델이 달라지고 있다. 각각의 은행이 생존 전략에는 행장(行長)의 스타일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6대 시중은행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각각 특색 있는 성격과 삶의 궤적을 가지고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은 6대 시중은행장 가운데 가장 오랜 CEO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은행 경력은 상대적으로 짧다. 삼일회계법인 부대표까지 맡고난 뒤 47세에 KB국민은행 부행장에 올랐다.

윤 회장에게는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하다)와 ‘윤주임’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광주상고 시절 외환은행에 입행해 주경야독으로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 재학 중에 공인회계사 시험과 행정고시(25회) 필기시험 차석에 합격했다. 시위 참여 경력 때문에 임용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윤주임이라는 별명은 그가 회계사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꼼꼼하고 숫자를 중시하는 탓에 붙었다. 그의 업무 스타일이 은행에서 가장 말단 직급인 ‘주임’같다는 뜻이다. 그만큼 모든 일을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출장 중에도 쉼 없이 보고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성적인 면모도 있다. 꼭 설득이 필요한 고객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낸다. 또 직원들의 경조사를 직접 챙겨 ‘상가집 단골손님’이라 불린다.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스마트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로 통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전자기기나 정보(IT)기술에 정통하고 트렌드 변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위 행장은 매년 스마트폰을 최신형으로 바꿔가며 사용할 정도로 전자기기에 능숙하다. 매일 아침 직접 신문 두 종류를 정독하며 최신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직원과의 소통도 능숙하다. 신한카드 사장으로 재직하며 서로 다른 부서나 직급의 직원들을 묶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온·오프라인 소모임을 활성화하거나 스타트업 조직문화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실적은 최고였다.

위 행장은 3년6개월간 신한카드 사장을 역임하는 동안 업계 최정상을 굳건하게 지켰다. 매출·자산·회원수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코드나인 시리즈’를 성공시킨 데다 모바일플랫폼 ‘신한FAN’도 대표 브랜드로 만들었다. 스마트한 위 행장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금융권의 평가다. 위 행장의 별명은 ‘닌텐도’다. 위 행장의 성(姓)과 닌텐도의 대표상품인 ‘닌텐도 위’(Wii)의 발음이 같기 때문인데 얼리어답터에 어울리는 별명이란 평이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강점은 섬김과 배려의 리더십이다. ‘낮은 자세로 섬김과 배려의 마음’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함 행장의 집무실에는 ‘섬김과 배려’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 은행장실이라는 표식이 전혀 없어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함 행장은 1956년 충남 부여군 은산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여군 은산면에는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때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상고를 나와 1980년부터 서울은행에서 말단행원으로 시작한 그는 주경야독하며 대학 졸업장을 땄다. 스스로를 ‘시골촌놈’이라고 낮추는 함 행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37년 은행원 생활을 영업 현장에서 보냈다. 2013년 충청사업본부장을 맡았을 때는 충청영업그룹 영업실적이 전국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은행장이 된 뒤에도 직접 영업 현장을 누빈다. 그의 친화력과 낮은 자세가 옛 하나은행과 옛 외환은행의 노조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동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우리은행 첫 민선행장인 이광구 행장은 우리은행의 숙원 민영화를 이뤄낸 공신이다. 1979년 상업은행에 입행한 이 행장은 개인영업부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리며 두각을 드러냈다. 카드전략팀 부장을 맡았을 땐 우리카드 역대 최대 히트상품으로 평가받는 ‘우리V카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정통 ‘영업통’인 이 행장은 2014년 12월 우리은행장에 취임하며 은행장 코스인 수석부행장을 거치지 않은 데다 이순우 행장에 이어 상업은행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 행장의 별명은 ‘K9’이다. 이름 ‘광’자의 영문 이니셜 K와 ‘구’자와 독음이 같은 숫자 9를 딴 별명인데 고급 자동차 브랜드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이 행장은 부행장 시절 관용차로 기아차 K9을 타기도 했다. 이런 별명과 다르게 이 행장의 업무 추진 스타일은 ‘불도저’라는 평가다. 한 가지 방향을 정하면 뒤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인 이 회장이 취임했을 때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관치금융’ 논란이 이는 와중에도 3년 임기를 2년으로 줄이는 승부수를 던지며 민영화에 올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도진스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야전사령관이다. 키 180㎝의 단단한 체구에 직설적 말투, 선이 굵은 리더십을 갖춘 김 행장은 러시아 장교 같은 이미지다. 취임 일성으로 ‘현장’을 강조했던 그는 취임 100일만에 71개 지점을 돌며 1055명의 직원을 만났다. 전국 영업점장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1000여 켤레의 구두를 선물하기도 했다. 32년 행원 생활 끝에 내부 출신 네 번째 행장자리에 오른 김 행장은 임명 제청을 받고 가장 먼저 노동조합 사무실을 받을 정도로 대화와 스킨십이 강점이다.

이경섭 NH농협은행장은 적자 수렁에서 농협은행을 구해냈다. 지난해 상반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여파로 1조3000여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느라 3200여억원의 적자를 봤지만, 하반기 극적 반전에 성공해 지난해 1100여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부장급 이상 간부 직원의 임금 10% 삭감 등 이 행장이 비상경영을 선언한 덕분이다.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 행장이 ‘직원 누구나가 주인’이라는 슬로건 아래 소통하는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에 농협은행의 부실을 털어낼 수 있었다.

글=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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