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틀에 갇힌 외교전략 누가 풀어갈꼬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뜻밖이었다. 미디어들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영·미 국민들의 선택에 이민자 유입 증가와 개방경제에 대한 불만이 공통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트럼프의 당선을 예견했던 프랑스 역사인구학자 에마뉴엘 토드는 이를 ‘글로벌화의 피로(globalization fatigue)’ 탓이라고 간파했다. 무릇 세계는 탈(脫)글로벌화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지형도 탈글로벌화 조짐이 강하다.

트럼프를 비롯해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일본의 아베 총리에 이르기까지 강성의 마초(macho) 리더십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조·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미·중 갈등과 미·일 및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 대립에 이르는 복잡한 구도 탓에 앞길이 잘 안 보인다.

게다가 트럼프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을 공언했고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추진해 왔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한다는 입장이다. 특별관세 부과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약 위반이라면 WTO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글로벌화의 혜택을 누리면서 성장해 온 한국으로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미 한국은 적잖이 지쳐 있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소녀상 철거만 외치는 일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에 불만을 품은 중국, 핵·미사일 도발의 북한 등에 휘둘리고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정부의 외교 전략이 주변국의 압박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등이 갑자기 일방적으로 결정된 게 그 증거다.

다행히 탄핵정국과 함께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자천타천의 여러 대선 예비주자들이 틀에 갇혀 있는 한국의 외교 현실을 직시하고 풀어낼 방법을 찾고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한쪽에서는 안보 최우선만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드 배치 철회,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 폐기 등을 외칠 뿐이다. 대중영합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불안하다. 주변 강대국의 프레임에 꿰맞추려는 식의 전략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해법은 결코 동맹국에 있지 않으며 막연한 희망만으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외교 전략은 신중하게 결정하되 실행에 따른 모든 책임을 감수·대응하는 단호함이 요청된다.

예컨대 대북 문제는 그간 햇볕정책도, 조건부 지원정책도 모두 실패했다. 압박·대화·협력수단을 고루 적절하게 구사하지 않은 것이 실패를 불렀다. 개성공단 폐쇄도 예외가 아니다.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는 동맹국 미국의 강한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런데 그로 인한 책임은 오직 한국이 모두 져야 한다. 그럼에도 박근혜정부는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중국을 설득하지 못했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 문제를 들어 한국을 흔드는 듯한 중국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또한 위안부 합의가 매우 부족하나마 나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지만 ‘10억엔=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아베 총리를 향해서는 강하게 비판해야 옳다. 그렇다고 합의 파기 혹은 10억엔 반환을 주장하는 것은 본질을 훼손하는 아베 총리의 문제인식과 다를 바 없다.

프레임에 갇힌 외교 전략을 풀어갈 이가 다음 정부를 맡아야 옳다. 즉물적인 대응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는 외교가 절실하다. 탈글로벌화는 쇄국·고립주의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국민주권의 회복이 초점이다. 우리의 외교 전략도 한국·한국인의 존재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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