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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직설과 적선
지하철 3호선 환승 통로에 웬 남자가 중얼거리며 서 있다. 사람들을 향해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바로 옆을 지날 때야 무슨 말인지 들을 수 있었다. “배고파요. 추워요.” 구걸하는 이다. 행색이 남루하다. 사실 나는 이런 이들에게 그다지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어서 웬만해서 지갑을 여는 일이 없다. 정해진 후원금을 제외하고는 길거리에서 적선을 하는 것은 매년 12월 처음 눈에 띄는 구세군 냄비에 1만~2만원을 넣는 연말의 작은 통과의례 정도다. 퇴근길 사람들로 붐비는 환승역에서 그를 스쳐 몇 발짝 나아가던 발길을 돌려, 그에게 만원짜리 1장...
입력:2020-01-11 04:05:02
[한마당] 미스터리 폐렴
2002년 겨울 홍콩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 탓이다. 발열, 두통, 근육통, 기침, 설사, 무력감, 호흡곤란, 폐렴 등을 일으키는 무서운 병. 질병의 진원지는 홍콩이 아니었다. 홍콩과 인접한 중국 남부의 광둥성이었다. 광둥성에서 시작한 괴질은 중국 수도 베이징을 급습해 사망자가 속출했다. 당초 중국 당국은 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괴질은 2003년 아시아를 넘어 캐나다 미국 독일 등으로 퍼지면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수개월간 30여개국에서 8000여명이 감염돼 7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로 사스(SARS&midd...
입력:2020-01-11 04:10:01
[한마당] 키사스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은 피해를 본 대로 돌려준다는 응보 원리의 원초적 형태다. lex는 법을 의미하고 talionis는 보복을 뜻하는 라틴어 talio의 소유격이다.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에 이 원리가 나타나 있다. 탈리오 법칙은 이슬람에서는 ‘키사스(Qisas)’에 해당한다.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에서는 이 원칙이 곧이곧대로 적용되기도 한다. 이란 형법에는 살인과 상해 두 종류의 키사스 범죄가 있다. 생명을 잃은 피해자의 유족은 법원 허가를 받아 살인자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 상해를 입은 경우에...
입력:2020-01-10 04:10:01
[살며 사랑하며] 기념일, 반응
이상하리만치 모든 게 안 풀리는 날이었다. 출근길부터 잘못 들어 한참 돌고, 소소한 일정들마다 어긋나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저녁쯤 되니 진이 다 빠져, 예전 같으면 그냥 웃고 넘길 일에도 씩씩대다 부루퉁해졌다. 애초 이렇게까지 힘들 일정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꼬였나 생각하다 잠들기 직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 즈음 은사님이 비명에 돌아가셨다. 우연히 시선을 돌린 TV 화면. 뉴스 속보 타이틀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울부짖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악을 썼다. 1년간 공식적인 어느 자리에서도 나는 그 일을 입에 담지 못했다. 범죄 피해 유가...
입력:2020-01-10 04:10:01
[한마당] 스웨덴의 목요 클럽
스웨덴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선진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에 육박하는 부자 나라인 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수식이 어울리듯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복지제도가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세계가 부러워할 복지국가를 이룬 밑바탕에는 높은 사회적 신뢰가 자리잡고 있다. 스웨덴이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좌우 정치세력이 사사건건 대립하고 파업이 잦을 정도로 사회 갈등이 심한 나라였지만 지속적인 소통 노력을 통해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46년 총리에 올라 23년을 재임한 타게 엘란데르(1901~1985)가 주도한 ‘목요 클럽’...
입력:2020-01-09 04:10:01
[살며 사랑하며] 운동의 이유
몇 해 전 이렇게 운동을 안 해도 괜찮은 걸까 걱정스러워 뭐라도 해보자며 고민했던 적이 있다. 후보에 올랐던 대부분의 운동을 각각의 이유로 탈락시키고 나니 남은 것은 줄넘기밖에 없었다. 줄넘기쯤이야 하고 시작한 첫날, 천 번은 거뜬히 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백 번도 하기 전에 숨이 차서 주저앉고 말았다. 살면서 운동을 열심히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매해 ‘올해는 운동을 해야지’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스포츠센터를 몇 개월씩 등록하고 나서도 며칠 다니다 나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줄넘기에서도 좌절을 경험한 그날 이후, 이제...
입력:2020-01-08 04:10:01
[한마당] 광인이론의 실제화
1980년 4월 24일, 세계 최강 미군으로서는 참혹한 날이었다. 이란 테헤란 미 대사관 등에 억류된 52명 인질 구출 작전을 제대로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실패했다. 당시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재선을 앞두고 있었고, 재임 중 인질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독수리 발톱’으로 명명된 이틀 동안의 작전 계획은 복잡하고 담대했다. 첫째날은 특수전 수송기를 타고 온 특수부대 델타포스가 테헤란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에 1집결지를 구축하고, 공해에 대기 중인 항공모함으로부터 날아온 침투 헬기로 갈아타 테헤란 근처 사막 2집결지에서 대기한다. 둘째날, 델타포스가 ...
입력:2020-01-08 04:10:01
[청사초롱] 나의 버킷리스트
“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인 흔적 같다./ 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 송판 냄새처럼 깨끗하다./ 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번진 것인지/ 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 그러니 아쉽다. 하루가, 한 주일이, 한 달이/ 헐어놓기만 하면 금세/ 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이 하얗게 바닥난 데가 결국,/ 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 여길 열고 나가? 쾅, 닫고 드러눕는 거?/ 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 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문인수, 시 ‘공백이 뚜렷하다’ 전문) 새해는 “매양 추위 ...
입력:2020-01-08 04:10:01
[이흥우 칼럼] 이제 유권자의 시간
90여일 앞둔 4월 총선, 중앙·지방정부에 이어 의회권력 탄핵 민심에 따라 재편하는 의미있는 선거 ‘동물적’ 20대 국회와 확연히 다른 21대 국회 원하면 유권자도 달라져야 총선이 목전에 다다랐다. 그 룰을 다루는 공직선거법은 동물국회를 거친 끝에 겨우 지난 연말에서야 확정됐다. 예비후보 등록이 진작 시작됐지만 내 선거구가 인구 분포 변화에 따라 조정되는 건지, 아닌 건지 아는 이가 없다. 선거법에 국회의원 선거구는 중립적인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결정해 선거일 1년 전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이 지...
입력:2020-01-08 04:05:01
[한마당] 골든글로브 거머쥔 ‘기생충’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일명 ‘제시카 송’이다. 극중 기정(박소담)이 학력을 속이고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간 부잣집의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오빠 기우(최우식)와 함께 6초간 흥얼거린 노래다. 말을 맞추기 위해 자신(제시카)의 허위 프로필을 읊조린 것이다. 관객이라면 이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박힐 수밖에 없다.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해 불러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개봉 이후 제시카 송은 현지에서...
입력:2020-01-07 04:10:01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이수성 총리의 반말 호명 기억… 김춘수의 ‘꽃’이 묘사하는 의미 이름 불러줘야 들꽃이 장미 돼… 호감 사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 20년도 훨씬 더 된 얘기다. 정치부 기자로 국무총리실을 담당하게 돼 ‘신고’를 했다. 정부 광화문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몇몇 신규 출입 기자들과 함께 이수성 당시 총리와 면담하는 상견례. 그날 점심식사 후 청사로 들어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간부 서너명과 함께 식사하고 들어오던 이 총리를 딱 마주치게 됐다. 짧은 대화 한 토막. “어어 기철이 점심 뭐 먹었나?” “아 예. ...
입력:2020-01-07 04:05:01
[돋을새김] 전광훈과 한국당
전광훈 목사(왼쪽)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 연합뉴스 “국민이 총격을 가해서 죽인다니까(…) 다른 나라 같으면 누가 저런 대통령을 살려 주겠나” “문재인은 심장마비로 죽는다” “문재인 목을 따야 한다” “문재인 저X 쳐내면 가정·직장·교회의 앞날이 열린다” “문재인 저X을 끌어내려 주시옵소서” “문재인은 하나님이 폐기처분했다” “독일 히틀러를 교훈 삼아” “빨갱이 국회의원들 다 쳐내버려야”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입력:2020-01-07 04:05:01
[살며 사랑하며] 해돋이
새해 첫날 아침, 남편과 함께 개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해돋이 명소에는 못 가도 동네 산에라도 오르자고 약속했던 터였다. 나는 인터넷으로 해가 뜨는 시간을 확인한 다음 성급히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 어둑해서 산속을 걷는 것이 으스스했다. 어디선가 갑자기 산짐승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개는 나무 위의 청솔모를 보며 짖어댔다. 나는 휴대폰 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이마에 땀이 솟아났다. 앞쪽에 산을 오르는 노부부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앞서가던 할머니가 때때로 멈춰...
입력:2020-01-06 04:10:01
[가리사니] 규제는 무조건 악이라는 ‘불편한 이분법’
규제는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약속… 최소한의 규칙 허물지 않는 개혁이어야 3% 성장을 자신했던 한국 경제가 2%도 불안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2.4% 성장을 예측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 경제가 힘들었던 건 성장 먹거리의 실종 때문이었다. 반도체 수출에만 의존한 경제는 관련 분야가 흔들리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과거에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서로의 부진을 보완했지만, 지난 몇 년간은 모두 함께 위기를 겪는 최악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
입력:2020-01-06 04:10:01
[한마당] 블랙 호크 다운
2002년 국내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1993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한 소말리아 군벌과 미군 특수부대 사이에서 실제 벌어진 전투를 소재로 만든 영화다. 모가디슈 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1000여명의 민병대와 민간인 사상자를 낸 소말리아 측 피해가 컸으나 미군도 19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다. 미군은 이 전투에서 블랙 호크 헬기를 여러 대 잃었는데 영화 제목은 여기서 따왔다. 블랙 호크는 다목적 전술공수작전을 수행하는 UH-60 헬기를 일컫는다. UH-60 블랙 호크는 미국 시코르스키사가 19...
입력:2020-01-06 04:10:01
[한반도포커스] 미·중 갈등의 세 가지 리스크
새해에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좋아지기를 누구나 바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국제환경은 더욱더 불투명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의 국제환경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미·중 강대국 갈등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은 구조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가 없게 됐다. 우선 미·중의 하이테크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압력이 더욱더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하이테크 기술을 훔친다고 보고 이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려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018년 여름 이후 미국은 자국...
입력:2020-01-06 0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