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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태용] 나는 찍는다, 고로 존재한다
요즘 시간이 나면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다.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몇 개 골목을 지나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 중 하나다. 언젠가 그 길을 모티브로 짧은 에세이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기도 하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미국 실험영화의 대부라고 소개되는 ‘요나스 메카스’ 전시와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사적이고 실험적인 영상들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지만 그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의 영화에는 반전과 스펙터클이 없다. 실험영화 특유의 충격적인 이미지도 없다. 장면은 자주 끊기고, 영...
입력:2018-02-04 18:25:01
[삶의 향기-이동훈]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정치·경제·종교적으로 억눌린 기층 민중이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5000명의 무리도 그랬다. 영적 빈곤뿐 아니라 물질적인 절대빈곤 해소가 절실함을 아신 예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해결책을 보여줬다. 예수님은 제자 빌립을 테스트하고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빌립은 갹출해서 모아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답한다. 또 다른 제자 안드레는 어린아이가 싸 온 오병이어 도...
입력:2018-02-02 18:25:01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그림책, 길을 걷다
그림책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 교사, 도서관이나 책방 사람, 학생…. 하는 일도 나이도 다양한 어른들이다. 그들은 그림책 한 권을 품에 넣고 걷기 좋은 길을 찾아 모인다. 걸으며 얘기를 나누다 적당한 자리에 둘러앉아 책 이야기로 들어간다. 책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것을 평가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이 나와 특별히 만나 파장을 일으킨 지점을 나누는 것이다. 그 나눔이 끝나면 책도 나눈다. 자신의 책을 선물하고, 남의 책을 선물로 받는다. 새로운 책이 각자에게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킬 것을 기대하면서. ‘그림...
입력:2018-02-01 17:50:01
[여의도포럼-조영태] ‘박항서 매직’을 지속시키자
승승장구하는 베트남 축구 중심에 있는 박항서 감독… 양국 관계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영향 미칠 것 정부는 베트남에 대학교육 콘텐츠 제공하고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은 사회적 책무 다해야 지난주 ‘박항서 매직’은 베트남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젊은 국가답게 국민들의 대다수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그동안 국가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박항서 감독이 팀을 맡은 지 3개월 만에 국제대회 준우승을 만들어냈으니 박 감독에 대한 국민적인 찬사와 열광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마침 나는 2015년부터 베트남 정부에 인구정책 자...
입력:2018-01-29 18:05:01
[김준동 칼럼] 올림픽史에 평창 어떻게 남을 것인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드러났고, 젊은 세대 주장도 존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남북이 하나 된다는 가치 실현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는 슈뢰더 충고 귀담아들을 만해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스포츠를 인간의 존엄성 보존과 관련된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증진하고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올림픽 헌장 중 한 구절이다. 올림픽을 여는 근본적인 이유가 평화와 인류 번영에 있다는 얘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896년 제1회 아테네 대회부터 이 원칙을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가장 심혈을 ...
입력:2018-01-30 18:35:01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윙크, 만화경
교토의 만화경 박물관에 갔다. 거울의 반사를 이용해 갖가지 색과 패턴을 보여주는, 말 그대로 만화(萬華·온갖 화려한)를 부르는 도구. 다양한 형태의 만화경 중에 긴 원통형 하나를 집어 들고 입구의 작은 구멍에 눈을 맞췄다. 누구나 만화경에 한쪽 눈을 들이밀면 몇 초라도 고요해진다. 다른 쪽 눈은 감은 채로, 윙크를 부추기는 이 구멍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오로지 1인용일 수밖에 없다. 만화경 속 세계는 극장 스크린이나 TV처럼 함께 보는 게 아니라 오롯이 혼자 누리는 세계다. 내가 보던 만화경을 다른 이에게 권할 때 할 수 있는 말은 “봐봐” 정도...
입력:2018-01-30 17:40:01
[조용래 칼럼] 평창 너머 평화공존, 비록 멀고 험해도
‘단일팀 구성=親통일론’은 단순화의 오류… 이를 비판한 이들에 대한 과도한 폄하는 잘못 짚은 것일 뿐 대회 끝나면 한반도는 다시 대립·갈등구조로 회귀할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평화공존 향한 꿈은 꺾일 수 없다 지지난 주말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과 강릉의 주요 경기장과 관련 시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가는 곳마다 관계자들은 막바지 점검과 시설 보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개막식은 다음 달 9일이지만 이미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올림픽 전용차로도 인상적이었다. 평창과 강릉 등의 경기장과 경기장을...
입력:2018-01-28 18:10:01
[한마당-김태현] 응답하라 88올림픽
1988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지구촌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펼쳐진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대회가 아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문화, 경제를 아우르고 성별, 국가, 종교, 인종을 초월하는 인류 최대의 제전이다. 올림픽을 치른 도시는 하나같이 “가장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역대 가장 위대한 대회로 꼽히는 대회는 서울올림픽이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
입력:2018-01-28 18:05:01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강릉 여행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강릉에 다녀왔다. 20대 후반에 입학한 문창과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뒤늦게 합류한 어린 친구가 있지만 비슷한 나이대와 술을 좋아한 것 말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다. 문학을 보는 시선과 삶에 대한 신념도 달랐다. 이십 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강릉 가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채팅방을 만들고 일상의 피로함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곤 하는데 이년 전부터 계획한 강릉 여행을 드디어 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강릉으로 삶의 자리를 바꾼 H형을 보러 간 것이다. 뭔가 들뜬 기분의 우리를 맞이한 것은 목발을 짚고 다리에 깁스 ...
입력:2018-01-28 18:00:01
[삶의 향기-신창호] 교회가 예배당만이어선 안 돼
미국 도시에 가보면 으레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군데 모여 있는 ‘스쿨 존’이 있다. 동네 아이들이 유치원생에서 10대 청소년이 될 때까지 바로 옆 학교로 옮겨가며 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그런데 초·중·고 사이에는 반드시 또 하나의 장소가 자리 잡고 있다. 학교보다 더 널찍한 운동장과 수영장, 체육관, 교실 등을 갖춘 ‘방과후학교 센터’다. 기독교청년회(YMCA)와 지역 개신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오전 7시가 되기 전 부모의 자동차나 스쿨버스로 등교한 아이들은 오후 2∼3시쯤 정규수업이 다 끝나면, ...
입력:2018-01-26 18:05:01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착하고 깊은 숲
제주에는 돌이 많다. 그 말은, 흙이 적다는 뜻이다. 식물이 살아갈 터전이 절대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도 제주는 푸르다. 푸른 식물들은 어떻게든 어디에든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 시멘트 바닥에 싹을 틔운 민들레에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제주에서는 가슴을 움켜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곶자왈에 가봐야 한다. 곶자왈은 돌투성이 땅에 형성된 숲이다. 나무들은 돌 위에 뿌리를 내린다. 깊게 내리지 못한 채 옆으로 뒤틀리고, 땅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간신히 돌을 붙들고 선 나무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슬아슬할까. 거센 바람이 얼마나 무서울까. ...
입력:2018-01-25 19:00:01
[한마당-김명호] 방 안의 코끼리
평범한 방이 있다. 그 방에 코끼리가 들어왔다고 치자. 황당함을 넘어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겠는가.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말이 있다. 명확하게 문제라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현상을 비유한 표현이다. 보스가 문제 제기를 싫어하거나, 정치적 위험을 초래할까 봐, 힘을 가진 이들이 손해를 볼까 봐, 반대하지만 그냥 대세라서…. 이유야 어찌 됐든 코끼리가 떡하니 방 안에 버티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존재를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다 보면 정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lsq...
입력:2018-01-25 17:55:01
[한마당-김준동] 정현의 ‘4강 신화’
테니스는 유럽의 귀족 스포츠였다. 테니스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1세기 무렵 유럽의 성직자와 귀족들이 즐기던 운동 경기 ‘라폼므’가 16세기 이후 지금의 테니스와 비슷한 ‘죄드폼’으로 발전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죄드폼은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사건 중 하나인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 맺어진 곳도 베르사유 궁전 안의 실내 테니스장이었다. 귀족들이 자신들의 클럽이나 사교 집단에서 즐기다보니 테니스는 다양한 인종과 나라에 전파되지 못했다. ...
입력:2018-01-24 18:40:01
[한마당-전정희] 성급한 여론
“원론적으로 탁치에 반대하지만 아직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문을 읽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와 같이 흥분된 방법으로 회의를 이끌어 가는 것은 미국과 군정을 적으로 몰 수 있으므로 좀 더 냉정하게 사태를 논의하자.” 1945년 12월 28일 서울 경교장에 당대의 지도자들이 모였다. 임정 세력과 국내파 민족진영 그리고 좌익 대표들이 신탁통치에 대한 긴급 현안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중도 온건 노선의 송진우(1890∼1945·독립운동가)가 이같이 말했다. 앞서 모스크바 3상회의(12월 16∼27일)에선 한국에 대해 신탁통치 문제가 논의됐다...
입력:2018-01-23 17:25:01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누구에게나 구체적인
모임의 가장 노련한 진행자는 음악이다. 나는 가끔 의도적으로 윤종신의 노래를 선택하는데, 그의 노랫말이 대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언어의 조탁 솜씨 때문에, 모두가 동시에 조용해졌다가 방금 우리가 들은 부분에 대한 상념을 나누게 된다. 상념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가 작사한 ‘상념’도 가끔 튼다. ‘나를 버리고 떠나가버려 상념 상념 상념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니 상념 상념…’ 그 노래를 처음 들어본 C는 재차 제목과 노랫말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상념이 아니네.” 그래, 그런 거다. 문맥상 상념보다는 비슷한 ...
입력:2018-01-23 18:30:01
[조용래 칼럼] 위안부 문제에서 韓·日이 놓쳐온 것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린 지난 9일,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위한 기본방향’을 발표했다. 남북 및 한·일 관계는 우리의 운명같은 것인데 이 둘이 한 날 화제에 올랐다는 점이 기묘하다. 그 둘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가 있어선지 남·북·일 3국을 둘러싼 20년 전의 전개과정이 떠오른다. 그 시작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채택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문’이었다. 공...
입력:2018-01-14 18:00:01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안녕, 팡슈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산책은 생존의 양식 같은 것이다. 거리의 간판과 소음을 따라 걸으면서 머릿속에 떠다니는 잡생각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혹은 이미지와 장면으로 만들어질 때의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제목과 첫 문장이 떠올라야 글을 시작할 수 있는 나 같은 작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여타의 사람들도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들을 만날 때가 있을 것이다. 은밀한 순간을 맞은 것처럼 그 단어를 계속 입으로 굴리다가 어느 날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한다. 미세먼지 가득한 날 오후, 환경에 저항하려는 혹은 적응하려는 심리의 발동으로 눈앞이 뿌연 거리를 걸었...
입력:2018-01-21 18:05:02
[삶의 향기-박재찬] 소확행과 크리스천
가성비 좋은 물건 사기,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친구로부터 안부전화 받기…. 지난 연말부터 카카오톡 같은 SNS 등에 돌고 있는 이른바 ‘소확행(小確幸)’ 목록 가운데 일부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의 소확행은 지난달 서울대 소비트렌드연구소가 펴낸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 꼽은 키워드 중 하나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지는 세태 속에서 소소한 기쁨이라도 맛보고 싶은 서민들의 욕구를 잘 포착한 것 같다. 소확행은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0년대 펴낸 수필집 &lsqu...
입력:2018-01-19 18:15:01
[한마당-김준동] ‘외로움 장관’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5단계론을 주장했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안전, 귀속과 사랑, 자기존중,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충족되어야 할 욕구에 위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은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된다고 했다. 이 이론은 그가 활동했던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누구나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옛말이 된 듯하다. 혼자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을 다니는 ‘혼자족’이 늘고 이들을 위한 마케팅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바야...
입력:2018-01-19 17:50:01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풀뿌리문화
동생이 쉰 중반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집 고양이는 바이올린에서 끼익 끄억 줄긋는 소리가 나면 얼굴을 찌푸리며 방을 나가버리곤 했다(우리 집 고양이는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할 때 내 발을 물어뜯곤 했다). 고양이 눈총을 받으며 굳건하게 연습하던 동생은 지역 오케스트라에 가입하더니, 작년 말 연주회를 했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이 꽃다발을 들고 콘서트홀에 모였다. 홀을 제법 가득 채운 청중들 모두 그런 가족, 친척,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단원 대부분이 아마추어인 오케스트라는 뜻밖에도 훌륭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긴장했다가 안도했다가, 민망...
입력:2018-01-18 17:50:01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먼지 조심하세요
다음 주가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믿을 만큼 해 바뀐 실감이 없다. 2018년이 새것처럼 낯설기만 한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2017년도 여전히 낯설다는 사실이다. 1월은 늘 실감이 부족한 달이다. 더 믿기 어려운 건 내후년까지의 달력이 첨부된 다이어리에서 2020년을 봤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2020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고 자란 내게 2020은 너무 우주적인 숫자다. 그 애니메이션 속에서 지구는 현재형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자원은 바닥나고, 환경은 파괴된, 돌이킬 수 없는 고향일 뿐이다. 꽤 우울한 미래를 그린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지금 보면 현실...
입력:2018-01-16 17:35:01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사라진 깃털
얼마 전 새 작업실을 얻었다. 들뜬 기분으로 작업실을 단장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옷을 걸어둘 고리를 벽에 달고 있을 때였다. 머리 뒤에 센서가 달린 것처럼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았고, 아주 잠시 동안 얼어붙고 말았다. 의자에 던져두었던 패딩이 흘러내려 전기난로에 붙어 있던 것이다. 그제야 타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둘러 사태를 수습했다. 패딩의 뒷부분이 타들어가 구멍이 뚫렸고 깃털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더 큰일로 번지기 전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또 방심하고 말았군, 이라고 자책을 하면서 정리를 했다...
입력:2018-01-14 18:25:02
[한마당-천지우] 이적의 수
1846년 여름, 일본의 천재 기사 슈사쿠가 당대의 고수 겐낭 인세키와 맞붙었다. 바둑은 백을 쥔 인세키가 유리한 형세로 흘렀다. 그러던 중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대국장에 있던 의사가 방을 나오면서 “겐낭 선생이 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사는 바둑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슈사쿠가 중앙에 127번째 수를 뒀을 때 겐낭의 양쪽 귀가 빨개지자 마음이 크게 동요한 것으로 봤다. 의사의 예측대로 결국 슈사쿠가 이겼다. 겐낭의 귀가 빨개진 수, 즉 ‘이적(耳赤)의 수’는 이후 바둑사에서 묘수 중의 묘수,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결정적인 수를 일컫는 말이 ...
입력:2018-01-14 18:00:01
[삶의 향기-김나래] 완벽한 날들, 작은 습관 하나
여행을 가면 그 동네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씩 사 온다. 여행지에서 고른 책은 바쁜 일상 속에서 ‘필요’에 따라 사들이는 책과는 거리가 있다. 평소 안 읽던 장르의 책을 과감히 선택하거나, 책방 주인의 취향을 전적으로 수용할 때도 많다. 고정된 취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책 고르기 패턴에 작은 균열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소소한 일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들은 여행지에서 읽히지 않으면, 집에 와선 이내 방치되는 운명에 처한다. 지난해 강원도 속초의 작은 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데려온 책들도 그랬다. 그나마 이 책은 운이 좋았다....
입력:2018-01-12 18:00:01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산들바람과 칼바람
며칠째 제주에 바람이 거세다. 배도 운항 중지, 비행기도 타기 어렵다. 광주에 갔던 사촌 일가족은 이틀째 발이 묶여 있다. 나는 내일 아침 서울에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제대로 뜰지 모르겠다.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8년 전 브라질 아동청소년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해의 일이 떠오른다. 나는 한국 어린이 책에 관해 발표하기로 하고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다. 집을 떠나 리우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30시간. 파리 공항에서 환승 대기 5시간. 동행도 없었던지라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어쩌자고 책을 안 챙겼던 나는 할 수 ...
입력:2018-01-11 17: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