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영 선교사 96세로 소천 해방후 첫 한국 선교사

고 최찬영 선교사

‘해방 후 첫 한국 선교사’ ‘성경반포 세계 챔피언’으로 알려진 최찬영 선교사가 20일 96세를 일기로 LA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소천했다.
 
최 선교사는 국제선교단체에서 아시안 최초로 태국과 라오스 성서공회 대표, 세계성서공회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를 지내는 등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난 최 선교사는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해 간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월남해 감리교신학교에 다니다1948년 장로회신학교에 재입학했다. 
 
6·25전쟁 중엔 통역장교와 군목으로 사역했다. 1955년 영락교회의  후원과 장로교총회 선교부 파송을 받았고, 1856년 6월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의 선교사로 태국에 도착했다.
 
태국과 라오스 성서공회를 거쳐 1978년부터 1992년까지 세계성서공회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로 일하며 약 15억권의 성서를 배포하는 데 기여했다. 
 
중국 남경에 애덕기금회를 통해 세계 최대의 성경인쇄공장을 세워 성경을 현지에서 2억권 이상 인쇄하며 중국이 성경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는 나라가 되게 했다. 
 
은퇴 후엔 풀러신학교에서 5년간 연봉 1달러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고, 2009년 LA또감사선교교회에서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아 부산에서 선교사들을 돌봤다.
 
2013년 건강이 나빠진 아내 김광명 선교사(의사)를 위해 자녀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 와 병약한 아내를 돌봤다.  
 
이후 LA 킹슬리메노의 은퇴자 마을에 살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선교를 위해 드리자는 ‘황금기 선교사 운동(Golden age missionary movement)’을 SON Ministries 의 GMAN사역을 통해서 시작했다.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제자였던 SON Ministries 대표 김정한 선교사와 함께 2017년부터 이 운동을 시작해 지난해까지 100여명의 황금기 선교사를 임명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선교사 동원 활동을 이어갔다.
 
장례는 글랜데일 포레스트 론에서 조촐하게 치루어질 예정이며 일정은 미정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사무엘(의사)·데니(은퇴)씨와 딸 헬렌(은퇴)·미란(의사)씨가 있다. 
 
유정원 기자 news@kukmin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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