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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당선 확정... 20년만의 한인 입성 쾌거

김창준 의원 이후 20년만에 한인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한인 2세 앤디 김이 지난 8일 뉴저지주 벌링턴에서 일부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 향후 의정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앤디 김(36·민주) 후보가 현직을 누르고 뉴저지의 첫 아시안 연방 하원으로 당선됐다고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이 14일 일제히 보도했다.
 
한인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한 것은 김창준(공화) 전 의원 이후로 20년만에 있는 한인 이민사의 쾌거이다.
 
주류 언론에 따르면 AP통신은 백인 일색이고 한인 주민은 약 300명에 불과한 연방하원 뉴저지 3지구 선거에 출마한 앤디 김 후보가 14일 오후 3시7분(태평양 시각) 현재 15만510표(49.9%)를 획득, 14만7,036표(48.8%)를 얻은 탐 맥아더 연방 하원의원(58·공화)을 3,474표(1.1%포인트) 차로 리드해 당선을 확정지었다고 보도했다.
 
개표 초반 0.9% 포인트 차로 상대를 추격하던 김 후보는 진보 성향의 벌링턴카운티에서 2만5,000표, 보수 성향인 오션카운티에서 2만1,000표 등의 우편투표(mail-in ballots)를 개표하면서 리드를 잡았다. 뉴저지 주는 선거일 당일까지의 소인이 찍인 우편투표가 그후 48시간 안에 선거관리국에 도착하면 유효로 인정한다.
 
3지구를 구성하는 이들 2개 카운티에는 아직 잠정투표(provisional ballots) 6,700여표가 남아 있으나 이로 인해 전세가 역전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데이빗 페트레우스 장군과 악수하고 있는 앤디 김 연방하원 당선자. [앤디 김 후보 선거 웹사이트]

한국에서 뉴저지로 이주한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소아마비를 겪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의료서비스를 누릴 보편적 권리를 지지해 왔다.

김 후보는 출마 정견발표 비디오에서 “내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출마할 줄은 나도 몰랐다”며 “그러나 내가 속한 지구의 현역 의원이 수많은 미국민으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빼앗는 데 앞장서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연방하원 뉴저지 3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앤디 김은 “우리 가족은 무일푼에다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로 이민길에 올랐지만, 뉴저지의 공교육 시스템이 내게 성공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는 과거의 가난을 딛고 박사가 되어 암과 알츠하이머 치료에 평생을 바치셨고, 어머니는 간호사가 되어 뉴저지의 수많은 사람을 도왔다”고 자신의 경력에서 밝혔다. 그의 아버지 김정한씨는 고아 출신이지만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유전공학 박사가 됐다.
 
가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당선자. [앤디 김 페이스북]
 
뉴저지에서 고교를 졸업한 앤디 김은 학생들이 학업과 농장 일을 병행하는 가주의 딥스프링스 칼리지(비숍 인근 빅파인 소재)를 거쳐 시카고대 정외학과를 졸업했다.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동 전문가로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몸담았다.
 
2009년 9월 이라크 전문가로서 국무부에 첫발을 디딘 뒤 201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의 전략 참모를 지냈다. 2013년부터 2015년 2월까지는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각각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특히 2013년에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 전문가로서 오바마 행정부의 IS에 대한 폭격과 인도주의 지원을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앤디 김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평화는 나의 최우선 순위이고, 의회에 들어가면 그 이슈에서 노력할 것"이라며 "외교정책 이슈에서 의회 리더가 되고 싶다"라고 의정활동 계획을 밝혔다.
 
김장섭 기자 fish153@kukmin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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