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경제인사이드] 가계부채 시한폭탄… '한국 신용' 조마조마





매일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허구한 날 '등급' 성적표가 나온다. 평가받는 학생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가깝게는 대통령 파면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중국의 사드 보복에서부터 조금 멀게는 김정일 사망, 외환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국내 언론은 '국가신용등급' 소식을 빼놓지 않고 보도한다. 어떤 성적이기에 그토록 중요한 건지 설명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 성적표에 나타난 글자와 숫자의 조합은 무얼 의미하나. 이 등급에 따라 국가, 기업, 국민의 삶은 흔들릴 수 있을까.
 
나라 보기를 기업처럼
 
성적을 매기는 ‘선생님’은 이른바 ‘세계 3대 신용평가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피치 3곳이다. 각각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세 회사는 세계 신용평가시장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들이 매기는 등급은 우리나라 국채에 붙는 가산금리를 결정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정부가 꾸는 돈에 이자가 얼마나 붙을지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돈을 떼먹지 않고 빚을 잘 갚을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라고 돌려 설명할 수도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에 매기는 신용등급이 회사채 금리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당장 정부의 재정에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한다.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때 이자를 비싸게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는 건 정부뿐만이 아니다. 그 국가의 기업과 개인 등 경제주체들도 해외에서 돈을 빌리는 게 한층 어려워진다. 정도가 심할 경우 한 국가와 그 국가의 기업, 국민이 국제 금융사회에서 일종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반대로 등급이 올라가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믿고 맡길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국가신용등급을 얘기할 때마다 함께 등장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일종의 ‘보증수수료’다. CDS는 부도가 발생해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으로 부도 위험만 따로 떼어내 사고판다. CDS 프리미엄은 가지고 있던 국채가 국가 부도로 휴지조각이 됐을 때 보상책임을 지는 대신 받는 대가다. 등급이 떨어지면 대가로 받는 돈이 많아지고 등급이 오르면 대가가 줄어든다.
 
우리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신용평가사에 수시로 찾아가 국내 상황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성적을 조금이라도 잘 받기 위해 학생들이 교무실이나 교수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인 지난 16일 S&P와 피치 임원을 만나 우리 수출이 늘고 있음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경 쓸 일 많은 신흥국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영향을 미치는 건 경제상황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안정적이지 못한 나라일수록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 쿠데타 등의 극단적인 리스크까지도 봐야 한다. 한국이 안고 있는 대북 리스크와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사회분규 등도 따져볼 요소가 된다. 경제 외적인 부분이 국가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선진국은 변수가 적다. 국가시스템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고려할 요소가 고용과 소득 등 거시경제 지표에 한정된다. 국가에 따라서는 이마저도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든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미국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은 경기 회복에 돈을 쓰느라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상위인 AAA등급에서 겨우 한 단계 떨어진 AA+로 내렸다. 정치·군사적으로 최강국인 데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발행하는 미국이 ‘부도’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봐서다.
 
국가에 신용등급을 매기는 방식은 신용평가사마다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용평가사 3곳이 각 국가에 부여하는 등급이 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용평가사가 ‘눈치 보기’를 하는 건 아니다. 유태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2일 “회사마다 평가방법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는 조금씩 다르다”며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방법론보다는 판단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등급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은 내신으로 따지면 ‘수우미양가’ 중에서 ‘수’와 ‘우’를 오가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 S&P로부터 AA등급을 획득한 뒤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최상위 등급인 AAA는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금융선진국 차지다. 한국이 받은 AA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AA+에는 핀란드와 미국, 오스트리아가 있다. 무디스가 매긴 신용등급에서도 한국은 세 번째인 Aa2를 받은 상태다. 피치가 한국에 부여한 AA- 등급도 네 번째 단계로서 신용상태가 우수함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받은 신용등급은 역대 최고 수준에 가깝다.
 
‘성적’이 가장 나빴을 때는 외환위기다. S&P는 1997년 12월 11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같은 달 23일에는 그보다 아래인 B+까지 낮췄다. 두 등급 모두 ‘투자주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에 피치도 한국의 등급을 투자주의 등급인 B-까지 내렸다. 3대 신용평가사 중 무디스 정도만 ‘투자적격’ 등급의 마지막 계단인 Baa3에서 한국을 더 내리지 않았다. 당시는 임기 말이던 김영삼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이었다. 우리나라가 세 회사 모두로부터 외환위기 이전 수준의 신용등급을 되찾은 건 약 15년이 지난 2012년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둘러싸고 신용평가사들이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고 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우리나라를 평가할 때 들어갈 만한 요소는 가계부채 위험”이라며 “부실화될 경우 금융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역시 신흥국의 고질적인 ‘외환 위험’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항목에 진입할 만하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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