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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니’는 우리와 서로의 거울이 되자


문은희 소장은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의 ‘우먼 칸타타’ 제목이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어렸을 때 큰오빠(문익환 목사)가 바흐의 칸타타를 많이 들려줬다. 노래도 잘 불렀던
오빠가 생각난다”고 그는 말했다. 김보연 인턴기자
 

절박한 심정을 가진 수많은 ‘니’들이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를 노크한다. ‘니’는 어머니 언니 할머니 아주머니 등 여성을 가리키는 이름씨의 끝말로 한국알트루사에선 여성을 이렇게 부른다. 그런 ‘니’들의 마음을 아는 듯 한국알트루사는 의외의 장소에 숨어 있었다. 서울 종로구 계동길의 한적한 골목에서 39개 계단 꼭대기에 위치한 한국알트루사 건물은 소박한 한옥에 온기가 느껴졌다. 지난 6일 이곳에서 문은희(78) 상담소장을 만났다. 나무로 된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자 ‘니’들의 웃음소리가 반겼다.
 
마음 치유자로 삶의 방향 전환
 
알트루사는 애타주의(Altruism)를 바탕으로 한 국제 여성봉사 단체로 1917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알트루사는 83년 창립했다. 문 소장은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사회’를 꿈꾸며 99년 여성상담소를 개소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건 무엇을 해내고 돈을 잘 벌고 직장에서 지위가 올라가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인간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의 있게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 때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무의촌 의사가 되려고 연세대 의대에 진학했다. 본과 2학년 때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고 진로를 바꿨다. “우리나라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계기가 됐어요. 교육·심리학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의대를 그만두고 교육학과로 옮겨 졸업한 그는 대학원에서 학습심리를 전공했고 미국 예일대에서 목회상담을 공부했다. 연세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영국 글래스고대에서 우울증 연구로 나이 쉰을 넘어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 소장은 예약자에 한해 매주 월·수요일 1대1 개인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격주 수요일엔 집단상담도 실시한다. 최근에 만난 ‘니’들의 사연을 들려줬다.
 
“얼마 전 네 명을 상담했는데 모두 이혼한 상태였어요. 더 기막힌 건 두 명이 30대였는데 두 달 정도 살고 이혼했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남편들이 괴물은 아니었어요. 그들은 아예 남편을 이해할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시어머니가 반찬을 해다 주면 현관에서 물건만 받고 돌려보낸다는 한 여성 목사의 사례도 안타까웠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뭔가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목사님에게 물었죠. ‘시어머니도 이웃이거든요. 시어머니를 목사님 자신과 같이 사랑하면 현관에서 그렇게 돌려보낼 수 있겠어요.’ 남편도 이웃입니다.”
 
대가족 속에서 관계의 소중함 깨우쳐
 
문 소장은 북간도 독립운동과 기독교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의 5남매 중 막내딸이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문익환 목사가 큰오빠로 무려 스물한 살 차이가 난다. “어머니가 저를 46세에 낳으셨어요. 둘째 오빠(문동환 목사)와도 열여덟 살이나 차이 나죠. 제가 일곱 살 때 큰조카가 태어났으니까요. 3대가 한 집에서 살았답니다.”
 
대가족 속에서 그가 배운 건 관계의 소중함이다. “아버지는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자성의 시간을 갖게 했어요. 상대방에게 뭐라 하기 전에 나부터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 덕분에 문 소장은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키웠다.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며 어린 두 동생을 챙긴 언니에게선 헌신, 배려도 배웠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의 혼란, 6·25전쟁까지 힘든 성장기를 보냈지만 문 소장이 떠올리는 그때 그 시절은 평안했다. “46년에 입학해 초등학교만 5곳을 옮겨 다녔는데도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이 저를 잘 보호해주신 덕분입니다. 평안하게 잘 살아온 거 같아요.”
 
함께하는 우리, 서로의 거울이 돼야
 
문 소장은 ‘평신도 공동체’ 예람교회에 다닌다. 서울 강남구 대한성서공회 건물 한 층을 빌려 예배를 드린다. 사회학계 원로인 남편 박영신 전 연세대 교수가 2001년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했다. 지금은 박 목사를 포함한 세 명의 목사가 공동목회를 하고 있다.
 
문 소장은 ‘니’들을 상담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기대한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이렇게 살아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그동안 만난 ‘니’들을 소중한 이웃이라 불렀다. “정말 다양한 ‘니’들을 만났고 고맙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제게 더 고맙다고 해요. 사실 찾아와준 이들이 더 고맙죠. 찾아온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성의 있게 인생을 보는 이들이거든요.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니깐 여기까지 오는 겁니다. 잘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그들이 소중한 이웃인 거죠.”
 
이웃과 함께하기를 실천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건강해진다.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결국 착한 사회도 만들 수 있다. “남편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말해보세요.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해결하자.’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 돼야 합니다.”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는 개인심리상담 외에 집단상담 프로그램인 ‘정신건강 상담공부’를 진행하고 있다. 뜨개·노래·오케스트라 모임 등을 통해 건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청소년을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큰언니운동’도 펼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엔 어린이·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해 함께 어울려 지내는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계간지 ‘니’도 발행한다. 한국알트루사의 모든 사업은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된다(02-762-3977).
 
글=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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