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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건강] ‘페이스 오프’도 멀잖았다


안면 이식 장면이 나오는 1997년 영화 '페이스 오프'의 광고 카피를 그래픽화했다.
영화와 달리 실제론 뇌사자의 얼굴을 기증받아 수술이 이뤄진다.




1년 6개월 전 사고로 왼쪽 팔을 잃고 장애의 고통을 겪어온 32세 남성이 40대 남성 뇌사자로부터 새 팔을 얻었다. 대구 W병원과 영남대병원 의료진은 두 사람의 팔 혈관과 근육 뼈 신경을 정교하게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수술 20여일을 넘긴 환자는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는 등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다만 염려했던 초기 (급성)면역거부 반응이 나타나 최종 성공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의료진 설명이다.
 
지난 2일 국내에서 최초의 팔 이식 수술이 이뤄지면서 현행 장기 이식법상 이식 대상 장기에 포함돼 있지않은 수부(손·팔·어깨), 안면(얼굴) 등 ‘복합조직 이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번 팔 이식으로 우리나라도 늦었지만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팔 이식 가능 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비슷한 처지의 팔·손 결손 환자들이 평생 장애의 굴레에서 벗어날 희망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를 계기로 복합조직 이식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 뒷받침되면 국내 첫 안면 이식도 2∼3년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첫 팔 이식 환자의 수술 후 상태를 의료진이 살펴보는 장면. 대구시 제공






 
“팔 이식, 3∼6개월 지켜봐야”
 
대구 달서구에 사는 라모(51)씨는 첫 팔 이식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봤다. 라씨는 2년전 직장에서 금속 프레스 작업 도중 오른쪽 다섯손가락을 포함해 손 절반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뭔가를 잡거나 들지 못하고 지퍼를 올릴 수도 없는 등 생활의 불편은 물론 주변의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 치료받던 W병원으로부터 팔 이식 제안을 받았다. 수지접합 전문인 W병원은 팔 이식 대기자가 200여명에 달한다. “수술해도 평생 면역 억제약을 먹어야 하고 잘못되면 붙인 팔을 다시 떼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손 없는 불편한 삶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대기자로 등록했다.
 
지난 1일 저녁 병원으로부터 “유가족이 팔 기증에 동의한 뇌사자가 나왔다. 나이 혈액형 신체 크기 등이 맞는데 이식 수술 의향이 있느냐”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라씨는 “그날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남의 팔이긴 해도 내 것처럼 쓸 수 있다고 하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더 적합한 수혜자(32세 남성)를 찾았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고 좌절했다. 라씨는 “또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라씨처럼 각종 사고와 재해, 화상 등으로 상지절단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잠재적인 팔·손 이식 대상이다. 두 팔을 손목 이상 부위에서 잃거나(1급), 두 손의 모든 손가락을 잃거나 한팔을 팔꿈치 이상 부위에서 잃은(2급) 이들이다. 보건복지부 통계포털에 따르면 2010년 기준 1·2급 상지절단 장애 등록자는 7375명이며 이후 더 증가했을 수 있다.
 
다만 실제 이식 받는 조건은 좀 더 제한적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뇌사 기증자와 나이대가 비슷하고 성별, 혈액형, 팔의 좌우 위치가 일치해야 한다. 또 너무 어리거나 고령이 아닌 18∼65세가 우선 대상이다. 평생 면역 억제제를 먹어야 하는 만큼 정신적으로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팔·손 이식은 간 신장 등 단일 장기와 달리 뼈 신경 혈관 근육 피부 힘줄 같은 여러 조직을 복합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수술에는 수부외과, 정형·성형외과 등 10여개 진료과가 참여해 10시간 이상 진행된다. 1998년 프랑스에서 팔 이식이 처음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20여개 병원에서 100건 이상 이뤄졌다. 수술 성공의 관건은 급·만성 면역 거부 반응(피부괴사, 감염, 암·당뇨병 발병 등)의 극복에 달려 있는데, 성공률은 90% 이상인 걸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대한수부외과학회 팔이식 위원장인 은석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20일 “수술 후 급성 면역 거부반응은 몇달 간격으로 나타나며 이때 면역 억제제의 용량 조절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면서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성공으로 본다”면서 “대개 3∼6개월 지나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면역 거부 반응은 10년이 지나서 발생하기도 한다.
 
은 교수는 “팔을 이식받으면 신발 끈을 묶거나 음식을 먹는 등 웬만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면서 “일부 사용되는 의수(인공팔·손)는 너무 무겁고 비싼 데다 아직은 기능 면에서 실제 이식된 팔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안면 이식도 곧 가능
 
안면 이식은 팔·손 이식보다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수부의 경우 면역거부 반응이 생기면 붙인 팔을 떼내면 그만이지만 얼굴의 경우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실제 2005년 개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한 프랑스 여성은 세계 최초의 안면(피부 입술 코 턱) 이식을 받은 뒤 10여년간 ‘제2의 삶’을 살았지만 지난해 면역거부 반응으로 사망했다. 안면 이식은 얼굴 일부 혹은 전면(머리부터 턱까지)을 포함해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30여명에게 이뤄졌다. 대상자는 동물 공격이나 총상 외상 화상 희귀유전병 등으로 얼굴이 망가진 이들이다.
 
미국은 전쟁으로 얼굴 총상을 입은 군인의 안면 이식을 위해 대학병원에 연간 50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뇌사자의 얼굴 기증을 받는 ‘제2인생 프로젝트(second life project)’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 안면 이식이 이뤄진다면 1∼3급 안면 장애인이 대상이 될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1급(안면부 중복 장애), 2급(안면 90% 이상 변형 혹은 60% 변형 및 코 형태 3분의 2 이상 없음), 3급(안면 75% 이상 변형 혹은 50% 이상 변형 및 코 3분의 2 이상 없음) 안면장애 등록 인원은 1422명에 달한다.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최태현 교수는 “우리나라는 신경섬유종이나 동·정맥 기형 등 얼굴이 망가지는 희귀 질환자들이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실제 몇년전 10대 후반의 신경섬유종 환자에게 안면 이식을 권유했지만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는 부담감에 결국 고사했다”고 말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홍종원 교수는 2010년과 14년 두차례 국내 최초의 ‘안면 이식’을 보건당국에 신의료기술로 신청했지만 불발됐다. 해외 수술 사례가 많지 않은 데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홍 교수는 “안면 이식은 의학 기술이나 면역 억제 치료 측면에서 이미 완성단계에 와 있다. 법·제도적 개선만 따라주면 이르면 2∼3년내에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의료계 일각에선 건강상 위험과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술을 권유해야 하는지에 문제 제기가 있다. 또 다른 사람의 외모로 살아야 하는데 따르는 정체성 혼란이나 윤리적 문제도 넘어야 할 과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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