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있는 삶’ 족쇄 채우는 포괄임금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A씨와 동료들은 최근 회사로부터 야근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고용노동부가 이달부터 정보기술(IT)업종 100여곳을 대상으로 장시간 근로 등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 점검에 나선다는 게 이유다. 근로자 입장에선 반길 일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차기 게임 출시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와서다. 회사에서 출시 일정을 조정해주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A씨는 “포괄임금제 계약 때문에 추가 인건비가 들지 않는 회사 입장에선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프로젝트 일정을 맞추라고 하는 게 일상다반사”라며 “기한을 맞추려면 일찍 퇴근해도 집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부 게임업체 종사자의 과로사로 촉발된 IT업계의 장시간 노동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가 비정상적인 장시간 근로를 바로잡겠다고 나섰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근로자와 연장근로를 포함한 포괄임금제로 연봉계약을 체결하는 관행이 유지되는 한 단속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IT업계 현장점검은 오는 13일부터 본격 시작한다. 시간 외 수당 지급 여부나 근로시간 한도를 위반하는지 등이 점검 대상이다. 특히 게임업계의 장시간 근로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게임업계의 장시간 근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임개발자연대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의뢰·조사한 ‘2016 게임산업종사자 노동환경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게임업계 종사자 중 주당 52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이들은 전체 응답자의 20%를 차지했다. 5명 중 1명이 법정 근로시간을 12시간 초과한 셈이다. 한 달 평균 1회 이상 휴일에 근무한다는 응답자도 43%에 달했다.
 
게임업계의 장시간 노동이 관행으로 굳어진 주 원인으로 종사자들은 포괄연봉제를 꼽는다. 연봉계약 때 시간 외 근로수당을 미리 책정하다보니 회사 입장에선 별도 수당을 추가 지급할 의무가 없다. 고용부가 시간 외 수당 지급 여부를 살펴봤자 제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포괄연봉제를 없애야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회사에서 야근을 근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단속보다는 현장 목소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역시 포괄임금제를 없애야만 병폐가 사라진다고 보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현행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를 계산하지 않고 공짜노동을 쓰는 수단”이라며 “원칙적으로 포괄임금 계약을 금지하도록 입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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