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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도전 끝 깨달음 “도전하면 젊어져…”



항공기 정비 감찰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커머셜 부동산 에이전트, 그리고 골프티칭프로까지… 다른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하나의 전문직 커리어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끊임없이 삶의 모습을 바꿔온 사람이 있다. 바로 GMC 리얼티 어드바이서스 수석 어드바이서 브라이언 김 씨다. 항공기 전문가로 미국 유학을 시작한 김 씨는 봉제공장의 임금을 자동으로 계산 할 수 있게 하는 피스 워크 임금 자동화 시스템을 비롯해 은행 계좌 관리 시스템등을 개발해 벤처기업 창업가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또 다시 커머셜 전문 부동산 에이전트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삶, 변화의 시작

브라이언 김 씨의 이런 변화무쌍한 이민의 삶은 33살 미국 유학을 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항공대학교를 나오고 공군장교로 제대한 후 항공전문가로 차분히 커리어를 쌓아 오던 김 씨는 항공분야에서 최고의 학문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온 노스롭대학에 유학을 단행했다. 그 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다. 브라이언 김 씨의 말이다. “군에서 정비를 마무리한 항공기를 시험비 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감사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관련부서의 책임자로 군 생활을 했었죠. 그리고 제대 후 전공을 살려 더 뜻있는 일을 해보자 하는 마음에 미국 유학을 마음먹 었고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당시 항공업계에서 그 대학에 입학한 한인은 내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김 씨의 꿈은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공부를 마친 후 주류기업에 진출하기 위해선 체류신분이 문제였다. 첨단 분야이면서 군사사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시민권이 없으면 취직이나 더 이상의 연구가 어려웠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집사람이 첫 아이를 임신하고 당장 생계를 위해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었죠. 그러다 선택한 것이 애플컴퓨터사의 지역 세일즈 매니저로 일을 한 거 였습니다.”

지인의 아이디어가 새 틀

그렇게 시작된 브라이언 김 씨의 컴퓨터 관련업계의 일은 컴퓨터를 납품하던 거래처 사장의 한 마디 권유로 확장의 기회를 잡는다. 많은 한인들이 일하고 있는 자바시장에 봉제업계의 한 사장이 자동 임금계산 시스템을 만들어 납품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 봉제공장은 노동법 분쟁의 소지가 많은 ‘피스워크’ 시스템으로 임금이 계산됐다. 한 사람이 작업대에서 몇 벌의 작업을 수행했느냐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는 방식이다. 즉 단추를 다는 사람이 몇 벌의 옷에 단추를 달았느냐에 따라 임금이 주어 진다. “당시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겐 주말이 따로 없었습니다. 주중에 생산된 양에 따라 누가 몇 벌을 만들어 냈는지 등을 일일이 계산해야 했죠.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 많이 했다 적게 했다 갈등도 많았죠.” 김 씨는 이런 상황에서 제품에 바 코드를 삽입해 누가 몇 벌을 만들었 는지를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계산 되게 했다. 당연 분쟁도 줄어들게 됐 고 임금을 계산해 줘야 하는 실무자 들이 주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자동화 쉬운 말 아냐

브라이언 김 씨는 이를 기반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봉제공장은 물론 은행이나 각 업계에서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현장 목소리를 듣고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업체다. 이때가 1999년 그의 나이 46세였다. 김 씨의 말이다. “처음 기대 이상 의 성과를 얻고 난 후 이런 시스템을 각 업계에 적용하면 큰 힘이 되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는 물론 시스템을 도입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 후 브라이언 김 씨는 전문가들을 구했다. 프로그램 제작은 물론 세일즈까지 전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김 씨에 게 또 다른 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인사회 정서상 다른 회사에서 도입한 시스템은 아무리 좋아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에 수표를 입금하게 되면 입금이 처리되는 것과 동시에 그 이미지가 저장돼 연말 세금보고 등에 쉽게 사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었습니다. 당시 은행업계의 자동화가 별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인 은행에서 이를 정착시키기에는 쉽지 않았죠.”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업이 채 자리를 잡기 전 직원의 배신이 이뤄졌 다. 영주권까지 서포트 해 준 직원이 영주권을 거머쥐자 돌연 사직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스템을 만들어 판매하고 나섰다. 김 씨는 하도 억울해 그 직원에 대한 영주권 취소 방안을 고민했다. “변호사를 만나 상담을 해 보니 영주권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호사 왈 ‘스텐포트까지 나온 젊은 한인을 이대로 죽일 생각이냐, 하루만 더 생 각해 봐라’고 말이죠. 밤새 고민 끝 에 억울한 것은 있어도 용서해야겠 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경쟁구도와 자금사정에 밀려 결국은 회사 문을 닫아야 했죠.”

컴퓨터에서 골프로

브라이언 김 씨는 당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회사의 문을 닫아야 하느냐와 한 젊은 이의 삶을 닫아야 하느냐에 고민이었다. 결국 김 씨는 자신의 손해를 택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물러났다.
그 다음에 시작 한 것이 부동산 에이전트다. 컴퓨터 시스템 구축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장이나 창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다니던 교회의 한 지인으로부터 생계를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해 보라며 커머셜 부동산 중 개업을 권유받았다. “당시 그 친구는 부동산 브로커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들고 과거에 배워왔던 프로그램 운영능력을 이용해 거의 정확한 수입과 지출을 상정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도 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내 나이 50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재산을 투자해 펼쳐 둔 사업을 접으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랠 방법으로 골프에 전념했다. 운동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과 당시 감정적인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는 이유가 맞물렸다. 또 고객을 만나 자연스럽게 비즈니스를 하자면 어느 정도 수준의 골프실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배운 골프가 지금은 브라이언 김 씨의 또 다른 커리어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됐다.

스팍과의 인연

‘골프 춤추듯이 처라’ 브라이언 김 씨를 말하는 또 하나의 대명사다. 지 난해 영국의 티칭 프로인 브라이언 스팍의 책을 번역해 출판한 책 제목 이기도 하다. 한국의 골프 블로거들 이나 한인 골프 애호가들에게는 이미 한 번쯤 입에 오르내린 말이다. 한번 관심을 갖게 되면 어느 정도 까지는 그 분야의 일을 하고야 마는 성격에 골프는 김 씨에게 안성맞춤의 운동이었다. 꾸준한 연습은 물론 따로 분석하고 공부해야 하는 일이 그의 성격에는 맞아 떨어졌다. “유투브를 보면서 우연히 접한 스팍의 티칭방법은 충격 그 자체였습 니다. 지금까지 배운 골프 스윙법은 프로 선수들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자신의 몸에 맞는 스윙법을 찾아 춤추듯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김 씨는 그가 받은 충격을 확인하고 싶어 브라이언 스팍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티칭 프로 자격증을 받아 오면 그 후에 지도해 주겠다는 조건부 답장이 왔다. 그때 부터 김 씨에게는 또 하나의 목적이 생겼다. 그리고 59세의 나이에 골프 티칭 프로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영국으로 떠나 브라이언 스팍을 만났다. 그와의 짧은 만남에 깊은 인상을 받은 스팍은 김 씨가 자신의 책을 번역해 출판 할 수 있도록 허락 했다. “현재는 한인 타운의 은행장들과 말하면 알 수 있는 업체의 대표 등 몇 명만을 대상으로 골프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업상 골프를 쳐야 하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고 시간은 없고 하는 분들을 위해 단시간에 실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지도하는 거죠. 한국에 포털 사이트에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불과 일 년 여 만에 12만 명 이상 접속을 기록했습 니다.”

신앙, 도전 그리고 음악

“도전은 삶을 젊게 만들어 줍니다. 적어도 내가 체험한 순간들입니다. 이민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삶이죠. 자신의 목표가 실패할 때 너무 그 안에만 가둬져 있으면 다음을 바라보기 쉽지 않습니다. 다시 도전해야죠.” 브라이언 김 씨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배 이민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갈등의 순간 속에서의 선택과 집중, 이것이 그가 만들어 온 다양한 커리어를 뒷받침 해주는 믿음이다. 브라이언 김 씨는 얼마 전 시니어 찬양단을 구성해 교회 신앙수련회를 섬기기도 했다. 항공대학교 재학 시절 학교 그룹사운드 ‘활주로’에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도전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수요일 집회를 시니어 찬양단이 인도했다. “신앙은 이민생활에서 기본입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죠.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새로운 도전을 배울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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