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19일] 생명의 떡



찬송 :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36장(통 493)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6장 26~35절


말씀 : 종교학자들이 주술과 종교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종입니다. 주술은 특정한 의식과 행위를 통해서 신을 조종하는 것이고, 목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것입니다. 주술의 대표적 예는 알라딘에 나오는 램프 요정 ‘지니’입니다. 캠프를 문지르며 지니를 불러냅니다. 그 사람에게 선한 의도 또는 악한 의도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종교의 시작은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큰 존재,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는 절대자가 있는데, 절대자의 뜻에 맞춰 나를 복종하는 것이 종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속 종교학자들도 이런 식으로 종교를 설명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주술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통해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기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놀랍고 신비로운 일’을 뜻하고 표적은 ‘예수님의 신성과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표적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타내는 예수님의 신성과 영광이 중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기사와 표적이 비슷해 보이지만 표적의 결과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이 왔을 때 예수님은 광야에서 보리 떡 다섯 개로 5000여명을 먹이셨습니다. 유월절, 광야, 떡, 기적. 이 조합은 유대인들에게 오래전 출애굽 사건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율법이 약속한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 18:15)가 나타났으니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욕망을 위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요 6:35)이라고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자들은 죽었지만 생명의 떡을 먹는 자들은 영생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입니다.(요 6:29)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선물로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곧 나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의는 나의 의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영광은 나의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떡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연합하여 그분의 모든 것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고 말씀합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우리에게는 떡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떡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떡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과 연합해 그분의 생명, 그분의 의, 그분의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무엇보다 예수님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기도 : 긍휼함이 많으신 하나님,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의와 생명 안에 거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문대원 대구동신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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