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 건너 거라사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귀신 들려 무덤가에서 울부짖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자마자 나온 첫마디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물으셨고 그는 군대 귀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무저갱에 넣지 말아 달라며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를 혼란스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불신 세상에 사로잡힌 자가 믿음의 길에 들어서면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생활 가치관이 이전과 전혀 다른 길이기에 이전에 관행적으로 해오던 우상 숭배, 점 보는 것, 제사 문제 등의 문제로 인해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옛 생활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신앙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귀신들렸던 이 거라사인에게도 혼란이 왔는데 그 혼란은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혼란을 일으키시고 새 질서를 따르게 하십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밑바닥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뽑아야 합니다. 그러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사탄의 역사는 파괴적입니다. 더러운 군대 귀신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자 2000마리의 돼지 떼가 바다를 향해 내리달아 몰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12~13절). 귀신이 빠져나간 그 사람은 멀쩡히 나았고, 귀신이 들어간 돼지 떼는 몰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요 10:10) 예수님은 고치셨고 귀신은 파괴했습니다. 예수께서 일으킨 혼란은 주인을 바꾸는 과정에서 오는 혼란이었습니다.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데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혼란이 올지라도 그것은 곧 ‘살리는’ 혼란이요 ‘축복’의 혼란이지만, 사탄이 주는 혼란은 죽이는 것이요 파괴하는 혼란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이 주신 혼란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고 대청소하는 혼란이기에 우리 인생을 환하고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15절)

주님이 주시는 혼란은 대청소하는 과정에서 온 혼란이기에 이 사람은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옷을 단정히 입게 됐습니다. 전에는 추악한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단정한 모습이 됐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됐고 새사람이 됐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했습니다(18절).

새 주인이 바뀌니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사람이 됐습니다. 이젠 무덤 사이에서 울부짖을 일이 없고 쇠사슬에 매일 이유도 없이 완벽한 새사람이 됐고, 새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는 시체의 동산을 떠나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옮겨갔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축복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물음은 귀신들린 자의 소리입니다. 주인을 바꾸기를 거부하는 귀신들린 자의 항변입니다. 일시적인 혼란이 올지라도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잠시 겪는 혼란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인생을 바꿔 놓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거부하지 마시고 새 주인을 맞이합시다.

김봉준 목사(아홉길사랑교회)

◇아홉길사랑교회는 1964년에 창립해 올해로 창립 59년째가 되는 서울시 구로구의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성도 95%가 교회 생활에 행복해하는, 가난한 마음에 부유한 믿음을 가진 신앙공동체입니다. 담임인 김봉준 목사는 건강한 교회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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