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날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250년 전인 1773년 1월 1일, 영국 올니 시장 마을의 한 교회. 이 교회 성도들은 신년을 맞아 새로운 찬송을 불렀다. 찬송은 죄악 속에 있던 인간을 구원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내용이었다. 새 찬송은 세월이 지나면서 영국 전역으로 퍼졌고 어느덧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교회 사이에 확산됐다. 처음엔 서부 개척지 부흥을 위한 노래로, 나중엔 흑인 교회의 영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20세기 찬송가의 표준이 됐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찬송이 됐다. 존 뉴턴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한국교회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305장)이다.

최근 미국 복음연합(TGC)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관련해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소개한 글이 실렸다. 우선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원래 찬송가 제목이 아니었다. ‘신앙의 회고와 기대(Faith’s Review and Expectation)’가 최초 제목이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을 묵상하기 위해 쓰였다 한다.

뉴턴은 노예무역선 선장이었다. 1748년 자신의 배가 폭풍우로 좌초되려 하자 간절히 기도했다 한다. 이후 기적적으로 폭풍우에서 벗어나면서 살았고 그후 성공회 사제로서 제2의 인생을 산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로 시작하는 1절은 흑인 노예무역에 관여한 것을 회개하면서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의 마음을 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역설이 담긴 찬양이기도 하다. 전직 노예선 선장이었던 목사가 쓴 찬송가가 미국 흑인들의 영가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 찬송이 대단한 것은 이런 현실과 상관없이 무수히 많은 흑인 노예가 자신들의 비참한 일상 속에서 이 노랫말에 의지했고 희망이 사라질 때도 불렀다는 점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오랫동안 흑인 교회에서 그들의 복음성가로 애창됐고 ‘찬송가의 여왕’으로 불렸던 마할리아 잭슨,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 ‘여자 파바로티’로 불리던 제시 노먼 등이 부르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TGC에 따르면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가사는 다윗 왕의 말을 의역한 것이라고 한다. 뉴턴은 1773년 새해 첫날 예배를 위해 이 찬송을 쓰면서 구약성경 역대상 17장 16~17절을 설교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해당 성경 구절은 다윗의 감사로, 다윗은 그의 가계와 왕국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경이로움으로 응답했다. 1절 가사는 여기서 비롯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원 곡조는 모른다. 지금 세계인이 부르는 멜로디는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 작곡가 에드윈 엑셀이 남부 전래민요 가락을 편곡해 붙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초기 악보가 일부 발견되긴 했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곡조와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대부분 한국교회는 지난달 31일 밤 12시 무렵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교회는 많지 않았을 것 같다. 밤 12시 전에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301장)을 부르고 밤 12시 이후엔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550장)을 통상 부르기 때문이다. 오늘부터라도 매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보면 어떨까. 하루하루 찬송을 부르면서 그날을 성찰하고 내일을 열어가기 위한 영적 수련으로 말이다.

뉴턴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외에도 ‘지난 이레 동안에’(44장)와 ‘시온성과 같은 교회’(210장)의 가사를 썼다. 그에게 찬송 작사는 신앙 루틴의 일부였다. 중요한 순간에 잠시 멈춰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았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기대했다. 그는 1773년 1월 1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전해진다. “주님, 당신의 은총으로 저를 항상 기다리소서. 저에게 변화가 올 때까지요.” 뉴턴의 가사를 되새기면서 오늘 우리의 하루도 놀라운 은혜로 충만하기를 소원한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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