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패딩과 헌금



‘기독교 색채는 드러내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성탄절을 앞두고 한 기독교 단체가 서울 도심에서 캠페인을 진행하기 전 취재진에게 요청한 사항이다.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캠페인이니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는 설명을 부연했다.

이 단체의 당부는 최근 교회나 선교단체를 이끄는 사역자들을 만날 때도 심심치 않게 듣는 얘기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대놓고 교회가, 기독교 단체가 한다는 걸 알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는 성경 속 말씀을 실천하는 거라 해석할 수도 있었다.

속내를 살펴보면 이들의 당부엔 성경 말씀의 실천과 함께 하소연이 내포돼 있었다. 교회라는 타이틀이 주는 부담이었다. “교회가 선한 일을 해도 색안경을 끼고 봤는데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졌다”는 한 교회 목회자의 한숨 섞인 말에 설명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최근 한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글과 이 글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이채롭다. 이 글은 보육원에 수백만원어치의 유명 브랜드 패딩 점퍼가 든 쇼핑백과 케이크 등을 전달했다는 ‘기부 플렉스 부부’ 내용이다. 플렉스(Flex)라는 단어는 최근 자신의 소비를 자랑할 때 사용되고 있다. 부부의 선행을 소개하는 일부 기사엔 이런 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들은) 기독교인이지만 헌금을 교회에 하지 않고 1년간 저축했다가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한다”였다.

좋은 일을 한 교회나 기독교의 기사엔 내용과 상관없이 악성 댓글이 달렸다면 부부의 게시글과 관련한 기사엔 선한 댓글이 달렸다. 대중의 시선이 그들의 선행보다 ‘헌금을 교회에 하지 않았다’는 데 방점이 찍히며 악플을 선플로 전환시킨 게 아닐까 싶었다. 앞서 말한 기독교 단체의 캠페인 기사도 찾아봤다. 기독교 색채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았더니 수백 개의 선한 댓글과 공감을 뜻하는 ‘좋아요’ 이모티콘이 달렸다.

그러니 부부의 이야기가 교회에는 쓰게 다가왔을 수 있겠다. 이미 교회는 헌금의 많은 부분을 구제와 기부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일보 더미션이 진행한 연간기획 ‘세상 속으로’도 교회의 공공선을 이야기했다. 교회들은 지역 주민을 위해 주차장을 개방하고, 취약계층이 마음 편히 음식을 가져가도록 냉장고도 설치했다. 성탄절 기간엔 교회와 성도가 헌혈하고 도시락을 나누며 연탄을 배달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꼭 성탄절이 아니라도 김장 시즌이면 김치를 만들어 나누고, 명절이면 유독 외로움이 커지는 이들과 떡국·송편을 나눠 먹었다. 일상 중에도 섬김은 계속됐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는 코로나 기간 20여개 지역교회를 지원하면서 지원금의 사용처를 명확히 했다. 교회에 쓰지 말고 지역 사회와 지역 주민을 위해 써야 한다는 전제였다. 지원금을 받은 교회들은 독거 어르신의 빨래를 해주고 반찬을 나눴다. 코로나 기간엔 섬김의 범위가 더 커졌다.

이렇게 교회가 지역 사회와 소외계층을 돕는 데 사용한 돈은 모두 헌금이다. 부부의 플렉스 비용도 어쩌면 헌금이 될 뻔했고 그렇게 소외계층에게 흘러갔을 수 있다. 그러니 교회를 통하기만 하면 선한 일도 악플이 달리는 게 교회 입장에선 억울할 법하다.

혹자는 원인을 교회에서 찾을 때도 있다. 예수님의 ‘오른손과 왼손’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니 교회가 선한 일을 알리는 데 유독 인색했다는 얘기다. 이런 해석을 덧붙이는 목사도 있다. 오른손은 행동, 왼손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행동으로 보여준 선한 일을 자기 마음에 담아두면 어느 순간 자만이 될 수 있다는 풀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기부 플렉스가 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 명료하다. 섬김과 기부를 세상에 ‘자랑’하는 플렉스다. 왼손은 모르지만 세상은 알게 해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확장시키는 그런 플렉스.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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