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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신념과 아집



“기꺼이 패배할 용의가 있는 (싸움의) 대상, 그것이 당신의 신념이다. 그걸 찾지 못했다면 정치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9·11 테러 20주년 행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본격적인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었다.

그의 말은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닿아 있다. 바이든은 “내가 29살 풋내기로 처음 선거에 이기자 모든 사람이 ‘비결이 뭐냐’고 묻더라”며 이런 말을 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치적 신념을 위해 싸웠더니 결과도 좋았더란 말이다. 아프간 철군은 옳은 결정이며, 자신은 지지율 하락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에둘러 하려던 것이었다. 바이든은 당시 미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가 42%로 하락하며 처음 지지율 데드크로스를 경험했지만, 발언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그로부터 10개월여가 지난 지금 바이든 지지율은 31%까지 떨어졌고, 부정 평가는 60%로 치솟았다. 당황한 기색도 역력하다. 요즘 백악관에서 바이든이 화를 내는 모습이 부쩍 잦아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은 인플레이션이다. 바이든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집착하면서 전문가들의 물가상승 우려를 회피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만 강조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뒷전으로 미뤘다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심어줬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바이든이 건전한 비판에 귀를 닫았을 때부터 균열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념 갈등이 극에 달한 정치적 현실에서 신념과 아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지금의 인플레이션을 ‘푸틴의 물가 인상’이라고 부르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반등은 없다. 대신 지지층 결집을 위한 얕은수를 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패배한 대통령의 거짓말을 믿은 미친 군중’ ‘중세의 지옥’ 등 거친 언어를 사용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적을 부각해 지지층 결집을 이루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향해 대본에 없는 강성 발언을 자주 하고, 참모들은 이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모습도 자주 연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런 참모들에게 “내가 대통령인데 왜 당신들이 내 말을 주워 담아서 진정성 없는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성을 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낮은 지지율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증거다. 문제의 원인을 인정하지 않으니 대응이 뒤죽박죽이다. 민주당의 중간선거 전망은 절망적이다. 선거 분석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은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할 확률이 83%라고 예측했다. 상원은 그나마 민주당이 해볼 만한 싸움으로 평가됐는데, 그 이유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밀고 있는 질 낮은 후보들 때문이다. 약한 야당에 기대는 게 여당의 유일한 희망이 된 셈이다. 민주당 지지자 75%가 바이든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긍정 평가한 사람들은 ‘소신’에 높은 점수를 줬는데, 반대편에서는 이를 ‘독단적’이라고 여겼다. 후자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으니 지지율이 낮다. 이를 만회하려고 얕은수를 쓰면 결과가 어떤지를 미국이 보여주고 있다. 인사 문제 등 여권이 안고 있는 문제를 보면, 윤 대통령이 기꺼이 지지율 하락을 감내하며 지키려는 신념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린다.

전웅빈 위싱턴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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