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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中 때아닌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 논쟁

마카오 주민들이 지난달 20일 유적지인 성 바오로 성당 인근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중국에선 최근 뒤늦게 코로나19 백신 의무 접종 논쟁이 일고 있다. 또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요하고 이동 통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에서 뒤늦게 코로나19 백신 의무 접종 논쟁이 일고 있다. 베이징시가 공공장소에 출입하려면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가 반발 여론에 어물쩍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혼선을 자초한 결과다. 중국은 전체 인구의 약 90%가 부스터샷 접종까지 완료한 상태다. 베이징시의 새 방역 조치를 두고 처음에는 하나마나한 뒷북 정책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후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요하고 이동 통제 수단으로 삼는 데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백신 접종 의무화’ 발표했다가 번복

문제의 발단은 지난 6일 베이징시 위생건강위원회의 브리핑이었다. 리앙시 위건위 부주임은 오는 11일부터 교육기관과 도서관, 체육관, 공연장 등 공공장소를 방문하려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 감염 위험이 높은 고령자들도 가능한 한 빨리 백신을 맞으라고 당부했다. ‘백신 접종에 부적합한 사람은 예외’라는 설명이 붙었지만 사실상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리 부주임은 “어렵게 얻은 전염병 예방 통제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시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누적 접종 건수는 6254만3000건이다. 베이징시 인구 2190만명 중 대다수가 이미 부스터샷까지 맞았다는 의미다. 중국 전체로 보면 누적 접종 횟수는 34억515만8000건에 이른다. 중국 위생건강위원회는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전체 인구의 88.64%가 부스터샷 접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방역 만리장성’을 구축한다는 목표 하에 정부가 백신 접종을 적극 독려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은 컸다. 일단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침 외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여기저기서 혼선이 불거졌다. 초등학교 저학년도 맞아야 학교에 갈 수 있는지, 1차 접종만 해도 공공장소에 들어갈 수 있는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 교민들 사이에선 외국산 백신을 접종하고 중국에 입국한 경우 중국산 백신을 다시 접종해야 하는지, 외국산 백신 접종 기록을 인정받으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문의가 빗발쳤다.

베이징시는 또 백신 접종에 부적합한 사람에 한해 증명서 제출 예외를 인정했는데, 이 경우 의료기관에서 부적합하다는 증명서를 발급 받아 등록해야 방역 신분증인 젠캉바오에 ‘백신 접종 부적합자’라는 표시가 뜬다. 중국 네티즌들은 백신 접종 부적합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면제 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접종 강제라고 지적했다.

반발이 거세게 일자 베이징시는 익명의 방역 당국 관계자를 내세워 진화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베이징일보 인터뷰에서 “국무원이 발행한 코로나19 방역 지침은 사전 동의와 자발적인 참여 하에 백신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베이징시 시민들은 체온 측정과 72시간 내 음성 확인서가 있으면 공공장소에 정상적으로 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어도 공공장소에 갈 수 있다는 것인지 여전히 불명확한 데다 익명의 관계자 발언을 당국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 SNS에는 “불확실한 답변으로 혼란만 가중시켰다”거나 “상부 지시가 공식적으로 철회되지 않는다면 각 기관과 시설에서는 관련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건강시보는 베이징시가 11일부터 백신을 접종해야 공공장소에 출입할 수 있는 방역 정책을 시행한다고 보도했다.

“中 전역서 의무 접종 확산 가능성”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9월 “백신 미접종자의 공공시설 이용을 통제하는 것은 백신 접종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위건위도 지난달 말 발표한 코로나19 방역 방안 최신판에서 백신 접종은 각자의 사정과 동의, 자율 원칙에 따른다며 백신 접종을 강요하는 행위를 엄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신 접종을 강요하지 말라는 중앙정부 지침에도 이를 의무화하는 도시가 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 해당 지역 방역 담당자를 문책 대상 1호로 삼는 중국 정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중앙정부가 아무리 방역과 경제 활동 정상화를 동시에 강조해도 현장에선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과도한 조치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베이징시의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 정책도 향후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라는 중관춘의 일부 오피스 빌딩에는 백신 미접종자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통지문이 붙었다. 중쑤성 쑤저우시는 시 전역에 다시 백신 접종소를 열고 “백신 접종은 당신과 가족, 나아가 전 사회에 대한 책임”이라며 “군중의 면역 장벽을 구축하자”며 독려에 나섰다. 톈진시와 푸젠성의 일부 도시는 이미 코로나19 음성 확인서와 함께 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공공장소에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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