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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는 생각의 힘 키우는 공간



존 카우치는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라는 책에서 근대적 교육이 20세기 산업화의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비숙련 노동자의 지속적 공급을 위한 표준교육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락했다고 고발한다. 그리고 이런 획일적 내용의 교육 방식에 최적화된 공간이 지금의 학교 건축이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교도소, 군대 막사를 원형으로 한 근대 학교의 건축 유형이 13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 교육에 적합할 리가 없으니 교육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당연히 시급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향후 5년 동안 18조5000억원을 투자해 준공 후 40년 이상 경과된 2835동의 학교를 개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행정적 추진력을 갖기 위해 목표 시점과 물량을 정해둔 것이라 이해하지만 계획 달성을 지상 과제로 해서 과거의 오류가 되풀이돼선 안되겠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미래에는 오프라인 교육 공간, 즉 학교가 없어질 것이라는 추측은 팬데믹 시대를 맞아 상당히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는 시대에 봉준호 감독은 극장이라는 공간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파워풀한 사운드, 화면의 크기, 집단으로 본다는 것도 있지만 제일 강력한 지점은 보는 사람이 멈추거나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갖는 아우라는 무엇일까. 나는 또래들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다양성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열정, 우정, 이런 것들이 상호작용하고 상승 효과를 일으켜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 그 공간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친구나 선생님들과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살아가는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살아가는 힘에는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적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내면의 힘을 길러나가야 하는 부분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는 지금과 같이 획일적 교육하에 한 가지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 성향과 관심사 및 장래 희망에 대해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꽃 피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일이 돼야 하고, 학교 건축은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삶의 공간으로 계획돼야 한다.

학교는 인재 양성소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인생의 중요한 한 시기를 살아가는 장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의 질문들이다. 그 질문들에 대해 교육 3주체(학생·학부모·교사)와 지역사회, 그리고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배려하는 게 필요하다. 과거 방식으로 미래의 학교를 구현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린과 스마트는 미래학교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 또한 잊지 말자.

김정임 건축가 (서로아키텍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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