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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예배 생명성 경험하는 선택·참여의 플랫폼 준비해야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지난해 4월 27일 경기도 용인 교회 예배당에서 열린 ‘코로나19 이후 직면할 위기 분석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한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드디어 이번 주부터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게 됐다. 물론 다른 대중시설과 달리 교회 내 식당 운영 등에 대한 제재가 있어서 여전히 교회에 대한 불평등이라고 하는 불만의 소리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불만에 충분히 동의하면서도 교회 안에서의 식사를 통해 감염이 확산될까 하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11월 7일 주일에 얼마나 성도들이 모여들어 예배가 회복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예배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로데오 게임을 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우리 안에 현장예배에 대한 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로데오 게임에서 아무리 카우보이가 안 떨어지려고 해도 결국은 떨어진다. 얼마나 오래 버티며, 또 얼마나 기술적으로 떨어지느냐가 중요하지, 어설프게 저항하다 잘못 떨어지면 소에 밟히거나 뿔에 받혀 중상을 입기도 한다.

정부의 방역 조치에 저항하고 공격하는 분들도 결국은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았다. 또 아무리 현장예배를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더 큰 걱정이 하나 있다. 막상 예배가 회복됐지만 관성의 법칙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혹시나 교회 오는 것을 어색해하고 두려워해서 온라인예배를 드리기를 좋아하는 관성 말이다.

흔히 코로나19가 비대면 사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그 앞에 ‘선택적’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 선택적 비대면 혹은 선택적 대면이라고 말이다. 예컨대 교회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학교는 가고 학원은 가는데 교회 나오기를 꺼렸다. 장년 성도 같은 경우도 백화점은 가고 마켓은 가면서 교회 오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필수 생활시설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어떻게 콘도와 문화공연은 자유롭게 가면서 교회 오는 것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선택적 대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과감하게 선택적 대면 환경을 만들어줘야 했다. 당연히 현장예배를 극대화하고 강조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정말 하이브리드 처치를 준비하고 플랫폼 처치를 구축해야 했다. 예배 인원 제한 속에서도 예배를 여러 번 나누어서 드릴 수 있지 않았는가.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교황 클레멘트 6세는 공간의 권위를 지키고 믿음으로 흑사병을 이기자고 하면서 성도들을 무조건 성당으로 모이라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변화의 흐름을 직감하고 발상을 전환했다. 그는 미리 구빈원을 만들어 봉사했고 제네바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쿼런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래서 노약자를 비롯, 감염에 노출이 쉬운 사람일수록 절대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하고 대신 성직자들이 찾아가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칼뱅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장 6절을 보면 평상시는 반드시 정한 장소인 교회에서 현장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비상시에는 장소를 절대화하지 말고 집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미디어의 역사는 몇 단계로 발전해 왔다. 현대에 와서는 영상이 중심이 됐다. 그래서 영상을 잘 사용하는 교회는 감동과 느낌이 달랐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소셜미디어와 메타버스 기술까지 사용되고 있다. 소셜미디어나 메타버스는 한마디로 참여와 공유의 시대를 만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온라인 처치를 이루지 못하면 교회는 선교와 전도 전략에서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상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 온라인을 통해 예배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그 플랫폼의 요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참여와 체험이다. 즉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예배의 플랫폼에 참여하도록 하고 복음의 능력과 예배의 생명성, 하나님 임재의 신비감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참여하게 되고 복음과 예배, 하나님 임재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딱 막는 콘텐츠를 찾는 시대와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볼 때 예배의 한 방향만 주장하는 목회는, 막상 예배의 자유라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회복 탄력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참여와 체험, 소통과 경험이라는 플랫폼 처치를 이룬 교회는 예배 회복 탄력성이 엄청 빠르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김난도 교수의 ‘2022 소비 트렌드’에 의하면 “2022년도는 코로나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복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교회도 코로나 이전으로 복귀가 아니라 복구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거룩한 플랫폼 처치를 이뤄야 한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출석하지 않는 성도들과 이리저리 떠도는 노마드 신자들을 향해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예배를 스스로 선택하고 참여하게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스위스 신앙고백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 선포된 말씀, 그리고 보이는 말씀으로 구분했다. 그 보이는 말씀은 바로 성만찬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포되는 말씀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고 실감 나게 체험하게 하는 말씀은 성만찬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복음의 떡과 잔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고 예배의 떡과 잔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현장예배가 빨리 회복되고 교회는 더 든든하게 세워질 것이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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